러시아 흙수저가 뉴욕 금수저 됐다? '발칙한' 비밀
[장혜령 기자]
▲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스틸컷 |
ⓒ IMDb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나 만들기>는 영화 같은 실화다. 넷플릭스가 한화 약 4억 원을 주고 애나 소로킨의 인생을 통째로 사서 만든 이야기다. 가짜 인생으로 망했는데 오히려 돈을 벌게 해주는 아이러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유명해지길 원했던 애나는 결과적으로 소원을 이룬 셈이다. 대학 강연, 리얼리티 쇼 등 출연 요청이 끊이지 않는 신데렐라이기 때문이다. 거짓말로 자신까지 속였던 애나가 만들어낸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결국 '돈'이 되었다.
애나 소로킨의 실체는 이랬다. 입만 열면 부자 아버지를 방패 삼았지만 실제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였고,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였다. 평소 내성적이며 조용했고 스타일링에 관심 많았던 아이였다. 패션 스쿨 중퇴와 패션 잡지사 인턴 경력이 전부였지만 뉴욕으로 건너오며 성공하기로 작심한 듯 보인다.
러시아 출신의 독일 이민자였던 애나는 '소로킨'을 버리고 '델비'로 다시 태어났다. 독일 재벌 상속녀 신분으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살아갔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 낸, 진짜보다 진짜 같은 가짜. 완벽한 껍데기에 깜박 속은 엘리트, 상류층, 재벌, 인플루언서는 허영, 허위, 허상에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결국 애나는 이들을 상대로 거액을 사취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스틸컷 |
ⓒ IMDb |
<애나 만들기>는 결과부터 시작해 4년간의 행적을 좇아가는 구성이다. 이민자, 인종, 여성, 빈부를 향한 불평등의 목소리도 담고 있다. 애나의 잘못뿐만 아니라 돈으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여러 인물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려 의도했다. 애나가 구속되었을 때 사실을 숨기려 했던 사람이 있었다. 고상한체하는 스노비즘이 들키자 분노보다 수치심이 앞서던 거다.
첫 화부터 화려한 행적과 주변 인물이 엮이게 된 이유를 전달한다. 돈이 모여들고 흘러들어 쌓이는 뉴욕의 맨해튼. 자칭 독일 상속녀라 떠들고 다니는 젊은 여성이 핫하게 떠오른다. 신탁자금을 담보로 했고, 검증되지 않은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실이 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패션 센스, 명석한 두뇌, 화려한 언변, 빠른 태세 전환, 눈치도 타고났다. 무엇보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할 수 있는 재능도 겸비했다.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졌다는 사람들이 애나(줄리안 가너)에게 빠져들었고 매혹되어갔다. 21세기의 최대 발명품인 SNS를 이용해 인플루언서가 되어갔다.
재판받으며 대중 앞에서 걸친 스타일링은 패션쇼를 방불케 했다. 애나의 패션 센스를 담은 SNS 계정까지 생겨나 인기를 끌었다. 다음 재판에 어떤 스타일로 나타날지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사가 되어갔다. 착용 제품은 불티나게 팔렸고, 소비 마케팅으로 이어졌다.
필자도 사기꾼이라는 선입견을 품고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진짜 상속녀일지 모른다는 믿음이 생겨 버렸다. 대출 심사만 통과하면 되었던 마지막 한 방이 결국은 불발탄이었지만. 진짜 ADF(애나 델비 재단)가 만들어졌다면 어땠을지 생각했다. 애나를 거짓말쟁이라고만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스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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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는 기자 비비안이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취재했던 기자와 변호사의 복잡한 심경이 드러난다. 직업 본분과 사적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이 꽤 긴데 시청자의 호불호를 불렀다.
두 사람은 양가적 감정으로 치닫는다. 직업적으로 순수하게 대한 것은 아니었다. 잘못된 방법이지만 스스로 일어서려던 흙수저의 발버둥에 자기 일부를 투영했고, 이해와 연민을 품게 된다. 직업윤리를 넘어섰고 더 가까워질수록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자 비비안(안나 클럼스키)은 재기의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친구의 승진에 이용당해 얻은 나쁜 기자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 상사가 된 친구가 시키는 미투 취재를 거절하고 싶었다. 여성 기자가 쓴 미투 기사는 이슈몰이와 돈벌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또다시 이용당하다가 좌천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무너진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애나의 단독 인터뷰가 필요했다. 임신으로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비비안은 분노로 시작된 열정과 집착의 결과를 담아 기사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재판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서서히 탐탁지 않은 마음이 커져간다. 비비안은 애나의 진짜 가족을 찾아 독일에 다녀온 후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변호사 토드(아리안 모아예드)는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은근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맨땅에 헤딩하며 투잡에 쓰리잡을 해야 했던 자신과 비교도 안 되는 금수저 아내. 이에 버금가는 성공한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저 그런 사건만 전전하다 드디어 애나 사건을 맡은 토드. 뻔한 양형보다는 재판받을 수 있게 애나를 설득하기에 이른다. 오랜만에 죽은 줄만 알았던 야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자신감도 커졌다. 이번 기회에 멋진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 싶었다.
▲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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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를 평가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나르시시즘, 리플리증후군, 관종, 가스라이터, 소시오패스 등.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입체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재계 인사, 뉴요커, 친구, 기자, 변호사, 검사는 애나를 이용해 출세(이익)를 바랐고, 목적을 달성한 사람들이다. 이 소름 끼치는 결과는 애나를 그저 희대의 사기꾼으로만 정의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애나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인 걸까. 물론 범죄 혐의를 부인하거나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건 아니지만 ADF를 향한 확신은 진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멸시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패기, 돈이 모이는 곳을 영악하게 파고든 근거 없는 자신감, 기획 아이디어를 과감히 진행하는 추진력은 대단했다.
안타까운 것은 사기꾼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애나와 닮은 인물은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때마다 현혹되거나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틈틈이 내면을 단단하게 할 필요가 있다.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가야만 한다. 나란 존재는 무엇인지, 나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란다. 결점투성이인 나를 가장 많이 좋아해 줄 사람이 오직 나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면 다시 한번 떠올려 봐도 좋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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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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