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첫날 아침, 개찰구부터 문제가 생겼다

유종선 2023. 4. 1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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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러 가다 생긴 일

N년차 드라마 피디이자 아빠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함께 22일 간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그 기록을 담은 여행 에세이입니다. <편집자말>

[유종선 기자]

▲ 인천공항 설치미술의 반사면으로
ⓒ 유종선
출국을 하기 위해 은행에서 환전하던 날은 이 친구에게는 첩보 영화적 순간이었다. 계속 봉투를 확인하며 환전 과정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우주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모아준 세뱃돈을 과감히 투척했다. 자기도 여행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며. 따라 가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여행이라는 자존심이 창창했다. 그리고 남은 현금을 잘 챙겨서 돌아왔을 때 써야 한다고 내게 당부했다. 아들아, 여행 책을 참 열심히 읽었구나.
첫 숙소는 한인 민박으로 
 
▲ 비행기의 석양 바르셀로나에 내리기 직전 비행기에서 보는 석양을 찍고 있다.
ⓒ 유종선
드디어 출발 당일, 소년의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펄쩍펄쩍 뛰는 아이를 씻기고 공항버스를 기다린다. 우주는 공항으로 가는 버스의 창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공항에서 사진을 찍는다. 비행기를 탄다. 비행기가 이륙한다. 이 모든 과정의 기쁨을 나도 같이 한다. 그러다 그 기쁨에 말려서 내가 먼저 지친다.

우주는 긴 비행을 몇 권의 책과 잠으로 제법 잘 버텼다. 그것만으로도 대견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해가 지고 있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카탈루냐 광장에 도착했을 땐 캄캄한 밤이었다. 우주는 흥분했지만 나는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절대 아이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 소매치기를 조심하자, 첫 숙소를 이 거대한 캐리어 두 개와 백팩을 들고 잘 찾을 수 있을까.

다행히 첫 숙소는 걱정만큼 멀지 않았다. 밤에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의 당혹감을 덜기 위해 일부러 한인 민박을 구했다. 아무래도 외지에서 한국인이 한국말로 맞이해주면 안심이 되기 마련이니까. 실제로 그렇긴 했다.

그러나 이 곳은 단체 민박이 아니라 방 하나만을 빌려주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주인 분이 맞이해주는 순간을 지나면 다시 한국 사람을 만날 일이 없는 곳이었다. 정보라도 좀 주워듣고 싶었는데, 숙소 이용법에 대한 설명이 바람처럼 이어지고 주인 분은 친절한 미소와 함께 홀연히 떠났다. 다시 나와 우주 둘만 남았다.

아이와 여행을 한다는 것은 밥 먹이는 걸 꽤 신경 써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주인 분께 물어봤던 마트를 찾아 오늘 저녁과 며칠 간의 아침 식사가 될 만한 식량을 구했다. 아이와 여행을 다니는 동안 혹시 모르니 술은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떠난 터였으나 마트에 놓인 캔맥주의 유혹은 강렬했다.

우주와 나는 우유와 맥주로 첫 숙소에서 신나는 건배를 하고 여행 첫 날을 기약했다. 아들과 같이 침대에 누웠다. 단 둘이, 기대에 들떠. 첫날 오전엔 4시간 가량의 가우디 투어가 예약되어 있었다. 그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을 내일 보는 거야!

문제가 생겼다
 
▲ 바르셀로나의 첫 아침 구글맵으로 길을 찾고 있다
ⓒ 유종선
첫날 아침은 얼마나 희망찼던가. 어린이와 시작하는 모험의 날은 얼마나 설렜던가. 집결 장소는 숙소에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 가지 않은 곳이었다. 바르셀로나답지 않게 날은 춥고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아무것도 상관 없었다. 이국적인 거리 풍경만으로 아들과 나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으니까.

우주에겐 또 하나의 흥분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스마트폰 사용을 허락 받은 일이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여행에 한하여 아이 손에 스마트폰을 들려주었다. 우주는 구글맵의 세계에 푹 빠진 터였다. 우린 어렵지 않게 지하철 역에 도착했고 심지어 10회권 티켓을 구매하는 장면을 촬영하기까지 했다.

우주가 먼저 개찰구를 통과해 들어갔다. 바르셀로나 지하철은 개찰구에 문이 있어 열리고 닫혔다. 마침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도 표를 넣었다. 그런데 나는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시 표를 넣었는데 에러 소리만 요란하고 문이 열리질 않았다. 우주는 나를 기다려야 하는지 들어오는 지하철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지 헛갈리는 표정이었다. 표를 넣지 않는 한 되돌아 나올 수도 없는 모양이었다.

무려 10회권 티켓인데, 돈 아까운 건 둘째 치고 뭐가 잘못된 거지? 다시 사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는데. Liceu역이었고, 안내원이나 안내 부스가 없는 간소한 역이었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단 얘기다. 개찰구 문을 가운데 두고 아들과 나는 떨어져버렸다.

절대 아빠랑 떨어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도대체 아빠란 사람이 뭘 하는 거야. 지하철은 도착했고 우주가 정신이 팔리자 나는 소리를 질렀다. '거기서 꼼짝 말고 있어 아빠가 표 새로 사올게!' 그리고 지하철에서는 사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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