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재테크]금리 고점 온다…장기채 투자 타이밍
“투자 서두르기보다 당분간 관망” 조언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어진 세계적 긴축이 곧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오를 대로 오른 시중금리가 조만간 정점을 찍고 횡보하거나 내리막으로 돌아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경기 침체 우려와 금융권 불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경기 불확실성 요인이 여전해 증시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유효한 투자전략은 무엇일까. 답은 시장에 있다. 눈치 빠른 '큰 손'들은 이미 연초부터 채권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특히 금리가 떨어질수록 더 큰 매매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10년물 이상 장기채 투자가 인기다.
1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장외거래시장에서 개인 투자자가 사들인 잔존 만기 10년 이상 채권 순매수액은 2조2526억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 5767억원에서 단숨에 4배 가까이로 폭증했다. 지난해 동기(4819억원) 대비로는 약 4.7배로 불어난 규모다. 연초만 해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계기로 최종금리에 도달한 후 연내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기대감이 나왔던 만큼 시중의 투자자금이 급격히 채권시장으로 쏠린 결과로 풀이된다. 과거 채권 투자는 이른바 '큰 손'들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있었지만, 이제 1000원 단위 소액으로도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어 점차 대중화되는 추세다.
고용·물가 등 미국의 경기지표가 생각보다 강세를 보이면서 Fed의 최종금리 도달 시점이 연초 기대보다는 다소 늦춰지긴 했지만, 채권투자 열기는 4월에도 이어지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서만 10여일 만에 2500억원치 장기채(잔존 만기 10년 이상)를 사들였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둔화, 예상치 못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등으로 Fed의 긴축 기조가 완화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전날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했다.
금리 인하 국면을 앞두고 장기채 투자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금리가 떨어질수록 채권 가격은 더 크게 오른다는 뜻이다. 김용선 대신증권 수원WM센터장은 "지금 시장 상황에서 투자하기에는 장기 국채가 최적"이라며 "10년물 또는 20년물 장기 국채를 현 금리 수준에서 매수하고 1년 후 (금리가) 0.5%포인트만 내려도 (채권 가격 상승으로) 연이율로는 두 자릿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표면금리가 1%대로 낮게 발행된 장기채라면 투자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 3.5%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1월(4.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준금리를 0.5%에서 현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불과 1년 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미 발행된 채권의 표면금리와 시장금리의 차이가 어느 때보다 크다. 두 금리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채권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잔존 만기가 긴 장기채는 단기채에 비해 금리 하락에 따른 변동폭이 더 크고, 이에 따른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기한이 길다는 점에서 투자가치가 올라간다.
채권 투자의 매력은 '절세'에도 있다. 채권 투자수익에 대한 과세는 '표면금리'를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실제 2019년에 발행된 20년물 국채(19-6)는 전날 기준 장내에서 3.205% 금리 수준에 거래됐는데, 표면금리는 1.125%에 불과하다. 16년 남은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평균 수익률은 3.7%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김용선 센터장은 "발행 당시 가격을 1만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금리 인상으로 가격이 7300원대로 떨어져 있다"면서 "만약 1년 후 금리가 0.5%포인트 떨어지면, 매도 단가는 8200원대로 올라가 투자손익이 발생하는데 세금은 표면금리에 따른 이자수익에 대해서만 내면 되니까 실질적 비과세로 자본차익이 더욱 커진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카드사 등이 발행하는 여신전문금융채(여전채)도 표면금리가 1~2%대로 낮다는 점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개인이 순매수한 채권 총액은 8조6554억원으로, 이 중 기타 금융채(여전채)가 2조5966억원을 차지했다. 국채(3조487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순매수액으로, 회사채(2조956억원)를 뛰어넘는 규모였다.
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큰 손' 개미들이 재빨리 채권을 사들였다지만, 시장에서는 긴축 종료 시점에 대한 의구심이 아직 남은 상태다. 또 금리 인상을 멈춘다 하더라도 이후 구체적 인하 시점이 언제일지에 대해서도 불확실성이 크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4%대 초반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확실하게 '안정됐다'고 말할 수 있는 2%대에 진입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이 사라지지 않은 부동산 시장도 변수다. 이에 시장 전문가들은 투자를 서두르기보다는 당분간 관망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내놓기도 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공공요금 인상 등에 따른 물가 상승 우려로 (국내 기준금리) 연내 인하는 어렵다고 판단하는 가운데, 국고 금리와 기준금리가 역전되면서 역캐리에 대한 부담도 존재한다"라며 "설령 연내 금리 인하를 고려해도 시장이 생각하고 있는 금리 인하 시기는 연말로 앞으로 9개월가량의 역캐리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라 국고 금리가 큰 폭 하락하지 않는다면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SVB 파산 이후 한국 채권시장에 대거 유입된 외국인 입장에서도 차익실현 욕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지금 당장 서두르기보다는 국고 3년 금리가 3.6%를 상회한 이후 비중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1년 이내 통화정책 완화 기대는 3.25%까지 낮추는 정도"라며 "당장 1분기 내 인하가 아니라면 국고 3년물 3.2% 이하는 역캐리로 불편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경기 둔화 기조가 좀 더 구체화되면 2년 내 2.75%까지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믿음이 강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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