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강력범죄자 신분보호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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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배포한 신상공개 사진 속 이경우, 황대환, 연지호는 흔한 이웃 청년의 얼굴이었다.
신상공개 대상은 살인·인신매매·강도·성폭행 등으로 특정강력범죄법에 한정돼 있다.
지난달 초 인천경찰청은 2007년 벌어진 2인조 택시강도살인사건 범인 중 한 명을 16년 만에 검거하고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었는데, 결론은 비공개였다.
경찰은 강력범 신상공개를 마지못해 등 떠밀리듯 하지 말고, 공익에 필요하면 먼저 나서서 일관되게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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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관심 있어야 등 떠밀리듯 진행
경찰이 배포한 신상공개 사진 속 이경우, 황대환, 연지호는 흔한 이웃 청년의 얼굴이었다. 강남 청부납치살인 주범 이경우는 넥타이 신사복에 가르마를 단정히 탄 화이트칼라 인상이었다. 나흘 뒤 검찰 송치 때 포토라인에 선 이들의 실물과 사진은 딴판이었다.
이들만이 아니다. 강력사건 범인 검거시 검경이 공개하는 사진상의 피의자들은 예외 없이 실물과 ‘다른 사람들’이다. 단정한 매무새로 입꼬리를 올리고 찍는 증명사진은 강력범죄자의 이미지를 희석한다. 이 때문에 이경우 일당이 경찰에 압송됐을 때 머그샷을 공개해야 한다 아니다는 논쟁이 또 나왔다. 2003년 경찰이 강력범죄 피의자 인권 보호를 명분으로 내부 규정을 신상 비공개로 바꾼 뒤 20년간 흉악범 검거시마다 등장한 논란이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2010년 제한적인 신상공개를 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가 완화됐지만, 경찰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신상공개 대상은 살인·인신매매·강도·성폭행 등으로 특정강력범죄법에 한정돼 있다. 201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5년간 국내에서 이 죄목으로 검거된 피의자 중 신상이 공개된 비율은 0.09%이다. 강남 납치살해범들이 이 비율에 해당한다. 이 기간 특정강력범죄 2만8822건이 발생했는데 경찰은 이 중 49건에 대해서만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었고, 그나마 반절 가까이 기각돼 최종 공개는 28건에 그쳤다.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들의 죄목은 전원 살인이거나 미성년자 성범죄이다. 다른 강력범죄로 신상이 공개된 범죄자는 아예 없다. 한국은 이제 사람을 죽이거나 미성년자 성 착취만 하지 않으면, 어떤 흉악범죄를 저질러도 수사기관이 얼굴을 가려 주는 ‘강력범죄자 신분보호 국가’가 됐다.
신상공개위원회는 세상이 경악하는 사건이 터져야 한 번씩 열린다. 수사기관은 국민 시선이 쳐다보지 않는 범죄자의 신상공개에 소극적이다. 지난달 초 인천경찰청은 2007년 벌어진 2인조 택시강도살인사건 범인 중 한 명을 16년 만에 검거하고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었는데, 결론은 비공개였다. "두 달 먼저 검거된 공범(당시 신상 비공개)과의 형평성"이 이유였다. 신상공개위가 피의자 변호인이냐는 말이 나왔지만, 오래전 대중의 기억에서 잊혔던 사건이어서 이 비공개는 지역 언론에 한 줄 보도되고 지나갔다.
우리나라에선 온라인 기사의 댓글이 많이 달린 사건일수록 피의자 신상공개도 많이 이뤄진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발간한 논문의 분석 결과다. 범죄의 흉악성보다 ‘세간의 관심’을 살피는 신상공개는 '경찰의 수사 홍보 마케팅’에 다를 바 없다. 강남 청부납치살해범들이 이 논문을 읽는다면 스스로를 언론 보도 때문에 얼굴이 팔린 '운 나쁜 0.09%'라고 여길 판이다. 이래서는 신상공개가 재범 방지 등의 효과를 낼 수 없다.
경찰은 강력범 신상공개를 마지못해 등 떠밀리듯 하지 말고, 공익에 필요하면 먼저 나서서 일관되게 진행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경찰 내부 지침에 슬쩍 떠밀어 놓은 신상공개 운용 규정을 법령에 명기해야 한다. 피의자 인권 침해 소지가 없도록 수사기관의 신상공개 권한 행사 범위와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동혁 사회부장
이동혁 사회부장 d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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