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깨끗하게 캠핑하시길…기막힌 해안절벽, 추자도 '나발론'

손민호 2023. 4.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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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Wild Korea① 추자도 캠핑&트레킹


제주도 부속 섬 추자도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용둠벙 간이 야영장의 밤. 야영장은 저물 무렵에 황홀한 빛을 뿜는다.
제주도 부속 섬 추자도는 캠핑과 트레킹으로 즐길 때 진가가 드러나는 섬이다. 나발론 절벽 아래의 용둠벙 간이 야영장은 오성급 캠프사이트다. 오션 뷰는 기본이고 잔디가 깔려 아늑하다. 이곳에 베이스 캠프를 마련하고 ‘나발론 하늘길’과 제주올레 추자도 코스를 걸어 보자. 수려한 절벽, 옥빛 해안, 정겨운 마을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추자도 트레킹은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추자도 최고 절경, 나발론 절벽


드론으로 촬영한 추자도 최고 명소 나발론 절벽. 발밑으로 아찔한 벼랑이 펼쳐진다. 비현실적 풍광으로 인해 마치 백척간두 위에 선 듯한 느낌이 든다.
전남 진도항에서 탄 산타모니카호는 불과 45분 만에 제주도 추자항에 닿았다. 추자도는 제주도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 뒤 제주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게 일반적인 여정이다. 진도를 출발점으로 한 건, 캠핑 장비 실은 차를 가져가기 위해서다. 하루 일찍 진도에 내려와 운림산방에서 소치 허련을 만났고, 맛있는 진도 백반을 세 끼나 먹었다.

추자항에 내리니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기분이다. 배가 가득한 항구와 다닥다닥 붙은 가게가 어우러진 모습이 정겹다. 먼저 후포해변 안쪽에 자리한 용둠벙 간이 야영장에 베이스 캠프를 마련했다. 텐트 치고 개운하게 제주 막걸리를 한잔하니, 추자도에 들어온 게 실감 난다. 추자도를 제대로 보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추자도 최고 절경인 나발론 절벽에 ‘나발로 하늘길’이 나 있고, ‘추자도 올레’라 불리는 제주올레 18-1코스와 18-2코스가 섬 구석구석 이어진다.

나발론 절벽의 정자에서 바라본 추자항. 항구를 따라 둥그렇게 형성된 마을이 정겹다.

야영장에서 훤히 보이는 용둠벙 전망대에 올랐다. 나발론 절벽 북쪽 끝에 자리한 둠벙은 바닷물이 고인 웅덩이다. 이곳 용굴에 사는 이무기가 추자도의 흩어진 섬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용으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10분쯤 올라 전망대에 서면, 마치 한라산의 병풍바위 같은 나발론 절벽이 펼쳐진다. 많은 섬을 가 봤어도 이처럼 압도적인 해안 절벽은 본 적이 없다. 영화 ‘나발론 요새’에서 따온 이름은 낚시꾼들이 부르던 말이다. 절벽은 엄청나게 높아 보이지만, 꼭대기인 큰 산의 해발고도는 불과 142m다.

용둠벙에서 나발론 하늘길 이정표를 따라 설렁설렁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두어 번 숨을 고르면 정자가 들어선 나발론 절벽 위에 선다. 정자 아래로 추자항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항구를 따라 둥그렇게 마을이 형성됐다. 정자 반대편 절벽으로 조심조심 다가가 까마득한 옥빛 바다를 내려다보자 오금이 저린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니, 마치 백척간두에 선 기분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발밑이 백척간두가 아닐까. 잠시 상념에 젖었다가 거센 바람에 뺨을 맞고 정신을 차린다.

정자에서 급경사 계단을 내려오면 ‘참린이 추자도’란 조형물이 보인다. 예전에는 전남 영광 법성포 일대가 대표적인 조기 산지였지만, 지금은 추자도 근해에서 조기가 많이 잡힌다. 추자도에서는 사철 굴비 정식을 맛볼 수 있다. 코끼리 옆모습 같은 코끼리바위를 거쳐 구불구불 능선을 오르내리면 추자도 등대에 닿는다. 용둠벙에서 등대까지가 나바론 하늘길이다. 마치 용을 타고 바다를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추자도등대에서 바라본 하추자도 일출. 오른쪽 끝 바위가 사자바위로 불리는 수덕도다.

등대에서 마을로 내려와 활어회를 포장했다. 야영장 타프 아래에서 시나브로 어두워지는 나발론 절벽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활어회 먹는 맛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방어와 참돔 등으로 구성된 모둠회는 혀에 닿자 녹아버렸다. 스멀스멀 야영장으로 다가오는 어둠에 편안하게 몸을 맡겼다.


제주올레가 추자도에 준 선물


제주올레 18-2코스 황금산 아래 전망대에서 바라본 하추자도 서쪽 해안. 왼쪽 바위섬이 섬생이다.
추자도 올레는 제주올레가 추자도에 준 선물이자, 추자도가 올레꾼에게 주는 축복이다. 추자도 올레 두 개 코스 중에서 18-1코스는 주로 추자도의 동북쪽 해안을 따라 나 있고, 18-2코스는 주로 추자도의 서남쪽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최근에 조성된 18-2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대왕산 황금길~목리슈퍼 약 2㎞ 구간이다. 대왕산 능선에서 바라본 하추자도의 서쪽 해안은 마치 나발론 절벽을 축소해 놓은 듯한 절경이다.

18-1코스를 걷다가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황사영 백서사건’과 연관된 ‘눈물의 십자가’다. 올레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데, 안내판이 없어 올레꾼 대부분이 그냥 지나친다. 예초리 기정길 교차로(사거리)에서 오른쪽(동쪽)으로 200m쯤 가면 넓은 주차장이 나오는데, 주차장에서 이어진 나무 계단을 오르면 해안에 자리한 눈물의 십자가에 닿는다.

하추자도 ‘눈물의 십자가’ 앞에 바구니에 담긴 황경한 조형물이 있다. 황사영의 아들인 황경한은 두 살 때 유배길의 어머니 정난주가 추자도에 놓고 떠나 어부의 손에서 자랐다. 지금도 황경한의 자손이 추자도에 살고 있다.

커다란 십자가 옆으로 바구니에 담긴 아기 황경한의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조카 정난주(1773~1838)는 남편 황사영(1775~1801)이 백서 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뒤 두 살배기 아들 경한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된다. 제주도로 가는 배가 추자도 예초리에 잠시 머물 때 정난주는 아들을 바위 위에 놓고 떠난다. 아기라도 살리겠다는 어미의 결단이었다. 젖먹이를 때놓고 떠난 어미의 마음은 얼마나 비통했을까. 다행히 아이는 추자도 어부 오씨의 손에 자랐다. 하추자도에는 아직도 황경한의 후손이 살고 있다고 한다.

추자도의 두 번째 밤은 맑았다. 랜턴을 켜고 용둠벙 전망대에 올랐다. 나발론 절벽 위의 추자도 등대는 연신 빛을 쏘았고, 밤하늘은 무수한 별을 뿌렸다. 별을 헤아리며 추자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 여행정보

전남 진도 진도항과 제주도 추자항을 운행하는 씨월드고속훼리의 산타모니카호.

씨월드고속훼리의 산타모니카호(차량 선적 가능)가 진도항~추자항 노선을 운항한다. 진도항에서 오전 8시 운행하며, 소요 시간은 45분이다. 성인 이코노미석 요금 3만8700원(평일, 유류할증료 별도). 소형 차량 10만940원(평일). 추자항에서는 오후 6시 45분 배가 출발한다. 용둠벙 간이 야영장은 나발론 절벽 절개지에 있다. 소형 텐트 약 15개 동이 들어설 공간이 있다. 사용료는 없다. 부디 깨끗하게 사용하기를 당부한다. 쓰레기가 넘치면 야영장이 폐쇄될 수 있다. 나발론 하늘길은 용둠벙 주차장~정자~추자도 등대, 약 2㎞ 거리로 1시간 30분쯤 걸린다. 난이도는 중급이며 안전시설을 잘 갖춰 위험하지 않다. 종착점인 추자도 등대에서 올레 18-1코스를 만난다. 이후 올레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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