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 한번 하시라"말에 고민한다…與 흔든 전광훈 뒤 이 숫자
집권 여당 국민의힘이 ‘전광훈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 자유한국당 시절 이른바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강성 보수층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전후로 당무에 개입하는 듯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여기에 일부 지도부가 호응하면서다.
김기현 대표는 11일 페이스북에 “자랑스러운 84만 책임당원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 국민의힘을 우리 당 당원도 아닌 전광훈 목사와 결부시켜, 마치 공동체인 양 호도하며 악의적 공세를 취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전 목사는 다른 정당을 창당하여 그 정당을 실제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사람이 우리 당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이냐”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전 목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당과 결부시켜 당과 당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체의 언행에 대해 당 대표로서 엄중히 경고한다”고 했다.
김 대표가 경고의 대상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여권에선 “홍준표 대구시장을 겨냥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홍 시장은 최근 전 목사를 고리로 “도대체 무슨 약점을 잡힌 거냐”며 김 대표를 꾸준히 비판하고 있다. 김 대표가 글을 올리기 직전에도 홍 시장은 페이스북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에는 (전 목사가) 180석 만들어 주겠다고 했는데 폭망했다. 김기현 대표에게는 200석 만들어 준다고 한다”며 “그런데도 그 사람이 우리 당원도 아니라고 소극적인 부인만 하며 눈치나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의 글이 올라온 뒤에도 홍 시장은 “말 몇 마디로 흐지부지 하지 말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라. 그래야 당 대표로서 영(令)이 살아난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여당의 대표와 대선 주자급의 이 같은 공방의 배경에는 김재원 최고위원의 잇따른 실언이 깔려 있다. 전당대회 일주일 전인 지난달 1일 전 목사가 주도한 광화문 집회에 가서 “최고위원이 되면 전광훈 목사를 잘 모시고 함께 가겠다”고 말했던 김 최고위원은 실제 전당대회 때 최다 득표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이후 나흘 만인 지난달 12일 사랑제일교회 예배에 참석해 “5·18 정신의 헌법 수록에 반대한다”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을 일으킨 뒤 지난달 25일 미국에 가선 “전광훈 목사가 우파 통일을 했다”는 식으로 말해 재차 풍파를 일으켰다.
당 안팎에서 “전광훈과 절연해야 한다”거나 “김재원을 징계해야 한다”며 불만이 폭발한 상황에서 지난 10일 전 목사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정치인은 반드시 종교인의 감시가 필요하다. (국민의힘은) 전광훈 목사의 통제를 받으라”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한 명의 종교인, 그것도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2019년 10월)라는 상식 밖 언사를 하는 전 목사에게 총선을 1년 앞둔 여당이 휘둘리는 이유에 대해 당내에선 “전광훈의 조직력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선거를 앞두고) 전 목사로부터 광화문에 와서 연설 한 번 하시라는 제안을 받은 적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전 목사를 둘러싼 논란을 의식해 거절했지만 “한 표가 소중한데 그 유혹을 이기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당내 인사는 “전 목사가 주최하는 장외 집회에서 정치인이 연설을 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귀띔했다.
실제 전 목사의 유튜브 채널 ‘너알아TV’의 구독자는 46만명이다. 그가 창당한 자유통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2021년 보고한 당원 숫자도 약 14만8000명이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광화문 집회는 매번 경찰 추산 3~4만명이 모인다. 여권 인사는 “그만큼 사람을 모을 수 있는 현역 정치인이 몇이나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들 대부분은 선거 때 국민의힘에 표를 주는 유권자라는 게 여권의 분석이다. 경북 지역 의원은 “우리 당을 찍는 유권자 중 10% 정도는 전 목사와 비슷한 태극기 성향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조직력을 무기로 전 목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 점령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전 목사는 틈날 때마 “내가 가입시킨 당원만해도 수 만 명”이라며 공공연히 말했다. 실제 각 당협엔 ‘추천인 전광훈’이 적힌 입당 원서가 수백부씩 쏟아지기도 했다. 당내에선 “전 목사가 입당시킨 당원이 최대 7만명”이란 말도 나오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선 실제 인원을 대략 1만명 이하 수준으로 보고 있다.
논란이 거듭되자 국민의힘은 올해 중순 당무감사에서 전 목사 관련 이중당적자를 찾아 조치하겠다는 방침이다. 당 고위 관계자는 “가입 원서 ‘추천인’ 이름에 ‘전광훈’을 기입한 당원이 약 5000명 수준으로 파악된다”며 “먼저 이들에 대해 이중당적 여부를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추천인을 적지 않은 전광훈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김다영·전민구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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