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대박'은 잊어라…K방산 위협한다, 日의 중고무기 수출 [Focus 인사이드]
비살상용 장비로 시작하는 일본의 대외 안보 원조
5일 일본 정부가 다른 나라가 국방력 강화를 위해 일본제 장비 구입할 때 예산을 지원하는 ‘정부 안전보장 능력 강화 지원 OSA(Overseas Security Assistance)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일본 외무성은 OSA가 무기 수출 3원칙에 따라 수혜국이 다른 나라와 분쟁에 사용할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 구매에는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원 대상은 해상 감시용 위성 통신 및 무선 시스템이 포함될 것이고, 필리핀ㆍ말레이시아ㆍ방글라데시ㆍ피지가 대상일 가능성이 높다.
비록 비살상 감시용 장비지만, OSA 자체가 그동안 일본 정부가 엄격하게 지켜온 군사적 목적의 국제 원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가 있다. 그동안 일본은 개발도상국들에 댐ㆍ교량 등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를 통해 해안경비대용 경무장 경비함 건조를 지원해왔다.
일본 정부가 예산을 대고, 일본 조선소에서 건조하여 납품하는 방식이다. 시모노세키의 미쓰비시 중공업 조선소에서 필리핀 해안경비대가 주문한 길이 97m인 다목적 경비함 MRRV 두 척을 건조했는데, 베트남도 비슷한 방식으로 경비함을 지원받았다. 일본은 자국에서 건조한 경비함에 무장을 탑재하지 않고 지원하고, 현지에서 무장을 탑재했다.
연말까지 개정될 무기수출 3원칙
하지만, 앞으로도 일본 외무성이 발표한 대로 비살상용 장비만 OSA를 통해 지원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일본 정부는 무기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 일부 제약을 완화했던 무기 수출 3원칙을 연말까지 개정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2014년 인명구조, 운송, 경계 및 감시활동, 지뢰 제거 등에 사용될 장비의 수출을 허용했지만, 최근 수출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가미급 호위함 등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에 공격 능력을 갖춘 장비도 포함되도록 개정이 필요하다.
일본이 무기 수출 3원칙을 개정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영국ㆍ이탈리아와 공동 개발에 합의한 6세대 전투기 글로벌 전투항공 프로그램(GCAP)이 있다. 일본은 GCAP의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공격용 무기 수출이 금지된 현재의 3원칙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무기 수출 3원칙을 개정한다고 하더라도 일본제 무기 자체가 높은 도입가 등으로 인해 해외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런 문제의 대안으로는 새로 제작한 무기가 아닌 중고 무기를 저렴하게 파는 방법이 있다.
대대적 장비와 병력 감축 선언
지난해 말, 일본 방위성은 대규모 장비 퇴역 및 교체 계획을 발표했다. 육상자위대의 AH-1과 AH-64 공격헬기는 무인공격기로 대체하고, OH-1 정찰헬기는 무인정찰기로 대체된다. 90식 전차는 10식 전차로, FH-90 견인포는 19식 155㎜ 차륜형 자주포로 바뀐다. 퇴역으로 남는 예산과 인력은 미사일 전력 강화에 사용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해상자위대는 쿠로베급 훈련 지원함, 하야부사급 미사일 고속정, 스가시미야급 소해함을, 항공자위대는 20㎜ 발칸, RF-4E/EJ 정찰기를 퇴역시킬 예정이다. 해상자위대는 P-1 해상초계기를 70대 도입 계획에서 61대로, SH-60K 대잠헬기도 84대 도입 계획에서 75대만 도입하기로 했다. 줄어드는 해상초계기로 인한 감시 공백을 없애기 위해 미국 제너럴아토믹스 에어로노티컬 시스템(GA-ASI)의 MQ-9B 시가디언 무인정찰기를 들여와 시험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의 기존 장비 퇴역과 무인시스템의 대체는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편제 변경의 의미도 있지만, 일본이 겪고 있는 인구 감소와 그에 따른 모병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면도 있다. 이 외에도 5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늘릴 방위비의 효율성도 감안했다.
중고 장비 수출 추진 중인 일본
일본은 이렇게 퇴역한 장비 가운데 일부를 해외에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 2017년 일본 정부는 2017년 재난 대응과 정보 수집을 위해 다른 나라에 중고 장비를 제공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고, 인도ㆍ베트남ㆍ필리핀 등 아시아 6개국과 관련 장비 이전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공격용 무기는 제외됐다.
지난해 11월 일본 매체들은 외국에 공급이 금지된 중고 자위대 무기를 해외에 제공하기 위해 조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중고 무기 이전 조건 완화도 연말까지 이루어질 무기 수출 3원칙 개정의 틀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부 중고 무기는 일본이 원한다고 수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AH-1과 AH-64 같은 미국제 장비의 경우 일본에서 라이선스 생산을 했다고 하더라도 미국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판매나 이전이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견제에 도움이 된다면 자위대 퇴역 무기의 이전이나 판매를 거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위대에서 퇴역할 장비에 관심을 보이는 국가도 나타났다. 2월 초, 필리핀 현지 매체는 필리핀 정부가 일본 육상자위대에서 퇴역할 AH-1 공격헬기 도입에 관심을 보인다고 보도했다. 2016년에는 베트남 정부가 일본에서 퇴역할 P-3 해상초계기에 관심을 보인다는 보도도 있었다.
가성비 외 안보 정책도 따지는 방산수출
일본 정부가 중고 무기의 해외 판매나 이전을 추진하고, OSA를 발표한 것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한 조치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 문제는 이런 방식을 통해 해외 무기 수출의 발판을 마련할 경우 우리 방산 수출과도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주요 방산 수출시장이고, 일본이 도전한들 시장 경쟁에서 큰 의미를 가지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코로나 대유행 이후 돈줄이 마른 이 지역 국가들은 무기 도입에 쓸 돈이 아쉬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OSA 제공 발표는 일본제 무기의 동남아 진출의 마중물이 될 가능성이 크고, 장기적으로 일본제 무기의 추가 수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일본의 최근 움직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반권위주의‘ 진영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키울 기반을 마련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군사 전략, 방위산업 수출, 그리고 지역 안보 정세 등 다양한 방면에서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무기 수출은 성능과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노르웨이군 평가에서 레오파드2 전차보다 뛰어난 평가를 받은 K2 전차가 정작 선정되지 않은 사례에서 보듯 정치 및 외교적 측면이 강한 것이 무기 수출이다. 우리 정부는 폴란드에서 대박을 맞은 축제 분위기에서 벗어나 작은 시장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세계는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권위주의 국가 블록과 비권위주의 국가 블록 사이의 냉전에 접어들었다. 중국이라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권위주의 세력에 맞서려는 이 지역 국가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명확한 분석과 전략이 필요하다.
최현호 밀리돔 대표ㆍ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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