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위성정당 한번 더? 그들의 싸움이 시작됐다
바꿔도 결과는 크게 달라져
정치 불신 초래한 현행 선거법
다시 바꿔야 하는데
그럴듯한 명분 앞세우면서도
속마음은 기득권 지킬 생각뿐
총선을 1년 앞둔 여의도의 최대 화제는 선거제 개편이다. 선거제는 치트키와 같다. 약간 바꿔도 정치 지형은 크게 달라진다. 과거에는 학자들이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당의 전략가들이 선거에 활용하는 정도였지만 21대 총선 이후 유권자의 관심도 커졌다. 선거제는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결정한다(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유권자는 자신이 행사한 표의 가치가 대한민국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는 믿음을 갖고 투표소에 간다. 하지만 각 정당이 받은 지지표의 총합과 확보한 의석수는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본질적 한계다. 선거제는 그걸 보정한다. 거꾸로 말하면 선거제를 바꾸면 지지표에 변동이 없어도 의석수를 늘릴 수 있다.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이를 강렬하게 체험했다.
우리는 1988년 개헌 이후 2020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때까지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지역대표와 전국 단위 병립형 비례대표를 동시에 뽑는 선거제를 유지했다. 말은 복잡한데 내용은 간단하다. 선거구에서 한 표라도 많이 얻어 당선된 지역구 의원과 각 정당이 결정한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를 구성한다는 뜻이다. 국회는 지역대표가 중심이다. 비례대표는 지역·직역별 및 성별의 편중을 해소하는 장치다. 비례대표로 의원이 돼도 지역구를 확보하려고 경쟁하는 구조다. 우리가 의회민주주의의 모범으로 생각하는 영국과 미국은 비례대표가 없다.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이 의원이라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논리를 유지한다. 하지만 단점이 많다. 그래서 노무현정부에서부터 승자독식에 따른 양극화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논의됐다. 지역대표로 의회를 구성하되 선거 결과의 왜곡을 막기 위해 비례대표를 강화했고, 70년 넘게 목적에 부합하게 작동한 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막장 드라마는 모든 선거제 개편 논의를 코미디로 만들었다. 선거법과 공수처법이 동시에 패스트트랙에 올라 통과될 때까지 동물국회의 참상이 낱낱이 생중계됐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합의 없이 바뀐 선거법에 맞서겠다며 등장한 위성정당에 더불어민주당이 백기 투항한 것이다. 그 순간 학계와 시민단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가세해 진지하게 연구했던 수많은 선거제 개선안은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그렇게 바꾸면 의원수가 얼마나 늘어나는가”라는 냉소적 질문에 먼저 답해야 했다. 지난 10일 국회 전원위원회에 토론자로 나선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다원주의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위성정당을 만들 때 민주당 사무총장이었다. 차라리 “사정이 있었다”는 말을 한 번 더 하는 게 설득력이 있었을지 모른다.
여야 모두 선거법 개정 없이 22대 총선을 치를 수 없다. 절차는 기형적이고 내용은 어중간한데다 입법 의도를 무력화시킬 수단까지 확보된 제도다. 우여곡절을 거쳐 선거법 개정 법정시한을 넘겨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3개 개편안을 논의할 전원위가 열렸지만 여기서 결론이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거의 유일한 돌파구였던 의원 정수 확대는 논의 자체가 봉쇄됐고, 여야는 현실성 없는 정원 축소론을 놓고 싸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제안에 가장 가까운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를 밀고 있고, 민주당은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바란다. 하지만 셈법이 너무 뻔해 상대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결국 전원위가 끝난 뒤 협상단을 만들어 지금의 양당체제를 최대한 바꾸지 않으면서도 개혁을 했다는 생색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서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19년 만에 열린 전원위는 지리한 정쟁의 시작이 될 뿐이다.
지금 국회에서 진행되는 선거제 개편은 순서가 틀렸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특정 선거제를 선택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아직 객관식 문제의 정답을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목표와 지향점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과연 40%가 넘는 사표가 발생해 표심을 왜곡하는 현행 선거제를 바꿀 생각이 있는가. 비례대표를 확대해 극단적 대결을 유발하는 양당체제에서 벗어나고, 제3 세력이 공존하는 토대를 만들자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당연한 질문이지만 답이 필요하다. 말로는 그렇다는데 행동은 전혀 다르다. 유권자의 냉소와 불신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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