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경의 오아시스] 나도 장애인이다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빌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아이들을 위한 장애인학교를 설립하게 해 달라고 지역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비는 사진은 우리가 과연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되묻게 하는 사건이었다. 최근 도심 내 노인요양시설 설립을 놓고도 주민들의 반대에 곤혹스럽다는 이야기가 간혹 흘러나온다. 첨단산업이 발전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돼 드디어 우리도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공동체 의식은 오히려 퇴색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장애인학교나 요양시설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재산목록 1위인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인학교나 요양시설 설립을 반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 전제가 수반돼야 한다. 즉 본인 또는 가족은 절대 장애인이나 노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우리나라 등록장애인 수는 2021년 기준 265만명이다. 이 중 후천적 원인이 90%가 넘는 지체장애인이 120만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발달장애처럼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살아가면서 교통사고, 질병 등으로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시각장애인 발생 원인을 살펴보면 질환이 53.6%, 사고가 35.8%로 약 90%가 후천적 원인이다. 60대 이상 장애인 수는 전체 장애인의 64%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나이가 들면서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장애인 대부분도 젊은 시절 두 다리로 힘껏 뛰어다니던 사람이었다. 바로 가족이요 동료였다. 달리 말하면 나도 장애인이 돼 휠체어 신세를 질 수도 있었겠지만 운 좋게도 두 다리로 서 있을 뿐이다.
한국인 최초의 시각장애인 교수인 고 이익섭 연세대 교수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자기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미국은 장애인 천국으로 장애인에 대한 지원과 사람들의 인식이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인이 착해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에서 자신을 희생한 수많은 상이용사가 돌아왔을 때 그들을 차별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나 대신 전쟁터에 나가 싸우고 온 군인들을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생기면서 장애인에 관한 인식이 변화했다.
오늘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내가 장애인이 된다면 어떨까. 사고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행이 불편해져 장애인과 다름없게 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누구나 언젠가 장애인이 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장애인의 삶이 어디 신체적 불편만 있으랴. 근로능력 상실 혹은 소득활동 장애로 소득이 감소하게 되면 본인과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는 현실에 맞닥뜨려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에 대비해 장애인연금(저소득층 중증장애인), 장애수당(경증장애인), 국민연금의 장애연금 등 다양한 공적 지원책이 있다지만 실제 상실된 소득을 보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유명무실한 장애인보험상품을 개선하거나 신탁제도 등이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산업의 적극적 지원과 참여가 필요하다. 장애인 문제를 개인이나 국가의 책임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업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모든 경제주체가 협력해 해결해 나가야 할 과업이다.
나도 장애인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쉬운 문제들을 우리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기에 아직도 2% 부족한 선진국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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