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고 1인 가구와 명소 나들이… 주민센터 “교회, 복지 파트너”
생산의 과정을 여러 전문적인 부문으로 나누어 분담하여 일을 완성하는 노동 형태. ‘협업’의 사전적 정의다. 생산과 노동의 측면에선 ‘일의 완성’이 목적이 되지만 그 시선을 지역 복지로 옮겨보면 어떨까. 바로 ‘생명의 안전망’이 목적이 된다. 공공기관과 시민단체, 종교시설 등 지역마다 가동되고 있는 자원들이 촘촘하게 네트워크를 구축할 때 그 안전망은 더 견고해진다. 생명과 복지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각 주체의 협업이 필요한 이유다.
오만종 서울 오빌교회 목사에겐 ‘부캐’(원래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가 여러 개다. 성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지사협) 민간위원장, 강동문화재단 이사, 서울시 ‘살사(살자 사랑하자) 프로젝트’ 협력기관장 등 나열된 직함만 봐도 목회와 지역 복지의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0일 오 목사와 함께 성내1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이은주 동장의 첫 마디는 “우리 동네에 목사님이 계셔서 든든하다”였다.
이 동장이 느낀 든든함의 본질은 협력을 통한 사각지대 보완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각지대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발굴하는 단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상자에게 어떤 서비스가 제공되는 게 효과적일지 기획하고 복지를 시행하는 과정 전반을 아우른다. 이 동장은 “예산을 집행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되는 주민센터는 일반적으로 주민이 필요로 하는 물품과 재정을 먼저 고민하게 되는데, 목사님은 정서적 지원까지 아우르는 복지를 제안해주신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지원, 영양 식품 전달을 골자로 이뤄지던 한부모가정 복지 사업이 지난해 변곡점을 맞은 것도 이 같은 설명이 반영된 결과다. 오 목사가 9년째 활동하고 있는 지사협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오 목사는 “개척 초기부터 교회 공간을 활용해 만들었던 ‘작은 도서관’ 사역에 착안해 아이들에게 선물만 줄 게 아니라 책 읽어주는 시간을 마련해보자고 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다. 지난해 성탄절엔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캔들’을 함께 만들며 잃어가던 가족의 온기를 선물했다.
지역 내 소외계층을 위한 영양 공급 지원 사업도 교회와의 협력을 통해 확장됐다. 주민센터에서 매주 한 차례 도시락을 전달한다는 소식에 인근 교회 청년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청년 딜리버’란 이름으로 매주 40가정에 직접 도시락과 반찬, 간식을 배달하며 말벗이 돼준다. 이 동장은 “배달에 소요되는 인력도 중요하지만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정서적 유대 관계가 생긴다는 게 더 큰 힘”이라며 웃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도 이 같은 협력 모델이 지역 복지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있었다. 이 지역엔 최근 몇 년 사이 50대 이상 1인가구가 부쩍 늘었다. 이들을 위한 복지 대책을 고민하는 과정에도 정서적 유대 관계 회복이라는 솔루션이 접목됐다.
지난 12일 만난 왕정숙 공릉2동 복지1팀장은 “심리적 위축으로 인해 평소 외출 빈도가 낮은 이들에게 ‘이웃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인생 한 컷’이란 이름으로 지역 명소 나들이를 계획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참가자들의 얼굴에 전에 없던 미소가 번지는 모습을 보고 복지엔 행정적 전문성보다 도와야 하는 이들을 향한 ‘감수성’이 우선임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왕 팀장이 말하는 최고 복지 파트너는 이날 주민센터를 함께 방문한 표세철 주양교회 목사다. 그는 공릉동 종교협의회 소속 목회자이자 주민센터 복지위원으로 10년 이상 활동해 온 민간 전문가다. 매주 수요일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회복지단체인 노원푸드뱅크 마켓을 방문해 지역 내 제과점에서 기부한 각종 빵과 케이크 등을 수령해 주민센터를 찾는다.
봄비치곤 강한 빗줄기가 내렸던 이날도 표 목사는 승합차를 몰고 나섰다. 궂은 날씨에도 그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평소엔 50개들이 빵 상자가 2~3개 정도 들어오는데 오늘은 5개가 들어왔어요. 매주 금요일이면 홀몸 어르신들께 반찬을 배달하는데 이번 주엔 부활절을 맞아 계란까지 준비했으니 더 풍성하겠네요. 하하.”
표 목사는 “교회는 긍휼과 섬김이 ‘기본 세팅’ 돼 있는 공동체”라며 “지역 복지를 위해 공공기관, 시민단체가 협업 자원으로 최적의 동반자인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기독교 교세가 줄면서 작은 교회들이 힘을 모아 교동협의회 활동을 하던 모습도 위축됐다”며 “이럴 때일수록 지역 중·대형교회가 거점이 되어 작은 교회의 이웃 섬김 활동을 지원한다면 효과적인 사회 안전망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지역 내 복지 분야엔 최근 몇 년 사이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주민주도형 돌봄 서비스다. 노원구는 2020년부터 동네 주민이 직접 돌봄을 제공하는 ‘똑똑똑 돌봄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노원구 선정 돌봄 대상자는 장애인, 한부모가정, 중장년 1인가구 등 7104명이다. 동별로 10명 내외의 단원이 활동한다. 왕 팀장은 “지역에 관한 관심과 섬김 정신이 높은 크리스천이 동참한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도 행정기관과 종교단체, 기업 등이 이인삼각처럼 함께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서울시는 복지공무원들이 우리동네돌봄단 서울형긴급복지 등 외로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진행한 ‘위기 가구 발굴을 위한 종교단체 공모 사업’의 성과가 상반기 중에라도 나오면 하반기에 확대할 계획도 있다”면서 “지역사회에서 어려운 이들에게 손을 선뜻 내밀어주는 종교단체는 공무원이 할 수 없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다양한 방식의 협업을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최기영 서윤경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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