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2023. 4. 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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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지나는 동안 봄꽃은 빠르게 피었다 지고 포도나무에는 슬그머니 새순이 돋아났다. 매화나무에 열매가 맺히는지 날마다 들여다본다. 숨바꼭질하듯 가지에 몸을 숨긴 채 새살거리는 직박구리의 지저귐을 즐겁게 듣는다. 비비추 잎에 내려앉는 햇빛이 찬란하다. 사순절이 지났다 하여 마음이 한갓지지는 않다. 아침마다 미세먼지에 갇힌 도시를 우울하게 바라보며 청명한 하늘을 그리워한다. 농가월령가는 청명과 곡우 사이의 정경을 이렇게 노래한다. “범나비는 꽃을 찾아 분분히 날고 기니, 미물도 제 때를 만나 스스로 즐기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어지러운 인간 세태와 무관하게 자기들의 시간을 한껏 살아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자연 세계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사람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굉음으로 귀가 먹먹하다. 우크라이나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세계인의 관심이 멀어지는 동안에도 수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있다. 자연재해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후 재앙이 시시각각 우리 삶의 토대를 뒤흔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적 주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문제의 크기에 압도당하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애덤 매케이 감독이 2021년 제작한 영화 ‘돈 룩 업’은 이런 세태를 섬뜩하게 폭로한다. 커다란 혜성 하나가 지구와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천문학자들이 책임 있는 이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만 정치인과 경제인들은 아무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사태가 자기에게 미칠 유불리만을 계산한다. 일반인들 역시 자신들의 일상을 뒤흔들 소식에 귀를 닫는다. 일상의 흐름에 몸을 맡긴 이들은 나른한 무력감 속에서 자족하거나 불퉁댈 뿐이다. 불신앙이란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굴복하는 것이 아닐까.

예언자들은 절망의 땅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사야는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하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심어주지만 보짱이 센 사람들은 절망조차 희망의 디딤돌로 삼는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자질을 말하며 모든 희망의 좌절조차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인’의 자리에 ‘신앙인’을 대입해도 결론은 다르지 않다. 세상이 아무리 암담해 보여도 그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려는 이들이 필요한 때다.

많은 이에게 삶의 영감을 주는 미국의 교육학자 파커 팔머는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이라는 책에서 자기 삶의 비밀 한자락을 펼쳐 보여준다. 그는 분주한 일상에 지칠 때마다 바운더리 워터스를 찾곤 한다. 야생 딸기의 맛, 햇빛에 말라가는 소나무 향기, 해안을 철썩이는 바닷물 소리를 즐길 수 있는 그곳에 머물다 돌아오면 자신의 불완전함마저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9년 7월에 불어온 허리케인은 바운더리 워터스를 참혹하게 파괴했다. 20여분간 휘몰아친 허리케인은 약 2000만 그루의 나무를 쓰러뜨렸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예년과 다름없이 순례 여행을 떠난 그는 소용돌이가 휩쓸고 지나간 처참한 광경을 보며 가슴이 찢기는 듯한 아픔을 느꼈고, 다시 그곳을 찾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몇 해 후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그는 자연이 어떻게 참화(慘禍)를 이용하여 새롭게 성장하는지, 느리지만 어떻게 꾸준히 그 상처를 치유하는지 보고 놀랐다.

파커 팔머는 그 광경을 통해 놀라운 진실을 깨달았다. 삶의 온전함은 완전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짐을 삶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는 자각이었다. 실패와 고통을 우리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심연의 가장자리로 떠밀려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 검질김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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