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원응두 (25) 70세 생일 맞아 제주대학병원에 시신 기증하기로 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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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0세가 되던 날이었다.
나는 이미 제주대학병원에 시신을 기증하기로 작정하고 서약서를 작성했다.
가족 동의 없이는 시신을 기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들에게 차분하게 시신을 기증하게 된 사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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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유골을 병원에 실험용으로 기증
기증사유 설명하고 가족들 동의 받아
2004년 70세가 되던 날이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고희(古稀)를 축하해줬다. 모든 식구가 집에 모여 큰아들 원희종 제주하영교회 목사의 인도로 감사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치고 나는 자식들에게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종이 한 장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시신 기증 동의서였다. 나는 이미 제주대학병원에 시신을 기증하기로 작정하고 서약서를 작성했다. 가족들의 동의만 남겨두고 있었다. 나는 죽은 후 신체와 유골을 해부 실험용으로 기증하기로 서약했다. 제주대학에는 100번째로 기증하는 것이다. 후세들의 의학 연구를 위해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 서약은 가족들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가족 동의 없이는 시신을 기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두 아들의 동의를 받기 위해 가족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가족들은 모두 깜짝 놀랐고 누구도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차분하게 시신을 기증하게 된 사유를 설명했다. 가족들은 모두 말없이 들었다. 드디어 두 아들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동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기분이 묘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홀가분하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나 역시 시신 기증을 결정하고 서약서를 쓰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고민도 많았다. 그러나 이미 정한 것,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동의서에 도장을 찍는 두 아들의 마음과 가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울컥했다.
나는 수없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움 없이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어느 날 성경을 읽는 중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는 말씀이 마음에 닿았다. 문득 우리 모든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죽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식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봤다.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열매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아무리 공을 들여 자녀들을 길러도 인도하시는 이는 분명히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내가 원한다고 다 내 뜻대로 자녀들을 키울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자식들에게 줄 것은 별로 없음을 나는 잘 안다. 물려 줄 돈도 없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물려 줄 것이 없다. 다만 유일하게 물려 줄 수 있는 건 믿음과 신앙뿐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밖에 없다. 아마 자식들도 큰 기대를 안 할 것이다. 물려줄 세상 유산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럴 것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들에게 좋은 것, 많은 것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내가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이웃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가정의 가훈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이다.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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