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국빈 방미와 한국 외교의 향배
대통령의 국빈 방미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은 대통령 임기 중 한두 차례 국빈 방문을 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에 이어 초청받았으니, 대미 의전 외교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올해는 동맹 70주년이고 윤석열 정부가 동맹 강화에 적극적이므로, 양국이 최고 격식을 갖춘 정상회담을 해 공조의 틀을 짜자는 데 뜻을 모았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회담은 정부의 외교 방향을 규정하는 중요한 전기가 될 공산이 크다. 회담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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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맹 70주년 국빈 방미 계기로
미국, 중·러 견제 강화 주문할 듯
동맹 강화하며 중·러 관계 풀어 갈
통합된 한국형 좌표 전략 내놔야
」
먼저 양측의 입장부터 살펴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주 관심사는 국제규범에 도전하는 중국·러시아·북한 등에 대한 대처다. 특히 미·중, 미·러 대립 와중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이후 중·러가 밀착하여 진영대립이 심화하자 미국은 서방진영의 결속에 주력해 왔다. 이 맥락에서 미국은 주요 동맹이자 산업국인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해 왔다. 마침 윤석열 정부가 취임 초부터 대미 공조와 자유 수호를 위한 국제연대를 강조하자 미국은 반색하고 다양한 주문을 내놓았다. 미국의 입장에서 그간의 공조를 평가한다면,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우나 중러 문제에 대해서는 기대 이하라고 볼 것이다. 한국이 중·러의 반발과 여론을 의식해 가치외교 레토릭을 행동으로 뒷받침하는 데 주저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을 겨냥한 안보협력이나 인권 분야에서 그랬다. 우크라이나 지원 분야에서도 비슷했다. 그러므로 미국은 이번에 중·러와 관련된 한국의 ‘전향적’ 선회를 끌어내려고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게는 취임 초 정상외교를 통해 나라와 정부의 위상을 대내외에 높이는 일이 우선적 관심사일 것이다. 대통령의 방일과 방미, G7 정상회의가 이를 위한 일련의 외교 행보라고 할 수 있다. 유일 동맹인 미국과의 협력을 심화하여 외교 입지를 강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점증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한미 억제력을 확실히 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중·러 관련 미국의 주문에 어디까지 부응하느냐도 현안이다. 미국이 자국 중심주의 성향을 보이는 공급망 재편 등의 경제안보 이슈도 쟁점이다. 한국은 불리한 처우에 대해 수정을 요구해왔다. 회담을 예측해 본다면, 우리의 위상과 입지 제고는 미국의 국빈 초청과 환대에 힘입어 대체로 확보될 것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공조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확장억제의 진전도 예상된다. 여기까지는 미국이 한국에 내주는 카드이다. 대신 미국은 중·러 견제에 한국이 더 참여할 것을 주문할 터인데, 한국이 어느 정도로 응할지가 주요 관찰점이라고 할 것이다. 이와 연계된 문제가 공급망과 한미일 군사협력인데, 이 또한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회담 결과가 미지수인 만큼 국내여론의 반응도 미지수다. 다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여야대립이 극심한 데다, 대통령의 방일 이후 외교에 대한 여론이 나빠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러한 여론은 방미에도 투영되기 쉽다. 대일 외교와 대미 외교가 동전의 앞 뒷면이고, 대통령의 징용해법도 성공적인 방미와 무관치 않다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미국의 도청 건도 악재다. 자칫 부정적인 여론이 이어질 수 있다.
주변국의 반응을 추정해보면 일본은 환영하고, 북한은 크게 반발할 것이다. 북한 도발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중·러는 회담 결과에 따라 강도를 달리하며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특히 중국은 현 정부의 대미 경사에 대해 구두 경고를 해왔으나, 대응 강도를 높여 갈 개연성이 있다.
사정이 이러니, 정부 앞의 정책적 도전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최선의 대처를 하려면 중·러 관련 미국의 주문에 어느 정도 호응할지를 포함해 미·중, 미·러 사이에서 우리가 설 좌표와 나갈 방향부터 잘 잡아야 한다. 한·미,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면서도, 중·러에 대한 외교는 어떻게 하겠다는 한국형 전략이 있어야 한다. 중·러 외교가 동맹외교의 뒤처리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고, 미·중·러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통합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사실 역대 정부는 미·중, 미·러 사이에서 통합된 전략 없이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며 사안 별로 임시방편으로 일관했다. 지금 정부는 동맹 강화라는 점에서 종래보다 명료한 입장이나, 중·러에 대한 정책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물론 미·일 등 서방과 중·러 간의 진영대립이 냉전시기처럼 심화하는 지금, 한국은 서방과 보조를 맞추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4강에 둘러싸인 분단 상황과 북한의 핵 위협 하에서 비핵 평화 번영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한국 외교가 동맹에 몰입하고 말 수도 없다. 중·러에 대한 외교 공간을 열어 두어야 한다.
한국외교가 어디로 향할지는 이번 회담 결과를 보아야 한다. 정부가 이번에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러와의 관계를 풀어나갈 통합된 전략을 보여주면 좋겠다. 그리하여 국빈 방문을 끌어내는 의전 역량에 더하여 정책 역량도 과시하기 바란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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