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 쇼' 뺨친 '후쿠시마 쇼'…野 반일, 日 혐한 닮았다 [서승욱의 시시각각]
'허무 개그'로 끝난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福島) 원전 오염수 대책단' 소속 의원들의 일본 방문을 보니 9년 전 험난했던 출장 길이 떠올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3주년을 앞뒀던 2014년 2월 말이었다. 도쿄특파원이던 필자는 선배 특파원, 카메라 기자 두 명과 함께 후쿠시마로 취재를 떠났다. 단순한 원전 주변 르포가 아니라 '후쿠시마 제1원전 앞 바다에서 물고기 잡기' 미션에 도전했다. 저인망 소형 어선을 타고 원전 100m 앞 바다까지 접근해 방사능 수치를 확인하는 게 첫날 미션, 생선을 직접 잡아 방사능 기준치 초과 여부를 따져보는 게 둘째 날 미션이었다. 실제 취재는 2박3일이었지만, 준비엔 무려 세 달이 걸렸다.
한국 취재팀에 인색한 일본 현지 사정을 고려하면 기획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하지만 끈질긴 설득과 준비가 결실을 맺었다. 원전 주변 이와키(磐城)시 어업협동조합과 일본 해상보안청으로부터 어선을 타고 원전에 접근하는 허가를 따내는 데 두 달이 소요됐다. 어선 섭외, 생선의 검사 샘플을 만드는 수산시험장과의 협의, 최종 판정을 내리는 농업종합센터의 전문가 섭외 등도 쉽지 않았다. 거친 바닷바람·물보라와 싸웠던 극한의 취재였지만 보람은 있었다. 원전 제방 옆 콘크리트 구조물에 방사능 측정기를 대자 기준치의 110배가 넘는다는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원전 20㎞ 밖에서 잡아올린 농어에선 기준치의 두 배가 넘는 세슘이 검출됐다. 후쿠시마 앞바다의 비극이 이어지고 있음을 실감나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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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당 의원들 후쿠시마 억지 방문
12년 전 일본 의원 울릉도행 닮아
반일과 혐한의 공생이 가장 위험
」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느린 나라다. 외국인이 새로 휴대전화를 개통하려면 길게는 4시간 이상 대리점에 머물러야 한다.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문이 열릴까 말까다. 그러나 언론사 취재 준비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해야 마땅한 민주당 의원들의 출장은 막무가내 그 자체였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임원진은 만나지도 못했다.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서한만 직원에게 전달했을 뿐이다. 원전 방문도 당연히 불발됐다. 한두 달 전에 신청해도 될까 말까인데 "며칠 전에 요청했는데 거부당했다"고 했다. 의원들이 후쿠시마 현지에서 면담한 이는 지방의원 1명과 주민 1명, 진료소 원장 1명 등 모두 3명에 불과했다. 이들이 개최한 주민 간담회에 참석한 주민은 단 한 명이었다. 현지 추천을 받아 방문한 진료소도 하필이면 일본 정부가 '극좌 과격파'의 거점으로 의심하는 곳이었다.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대망신이었다. 일본의 국회의원들까지도 이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견학 수준의 일정에다 누가 봐도 빈손이었지만 민주당 4인방은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를 일본 사회에 전달한 게 성과"라고 우기며 정신 승리에 몰두하고 있다. 하긴 많은 국민이 의심하는 대로 '국내용 반일 퍼포먼스'가 실제 목적이었다면 사전 준비나 일정 따위가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다.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그들의 관심은 어차피 한국 국내의 반일 무드 고조에 맞춰져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12년 전 비슷한 장면을 김포공항에서 목격했다. 독도 영유권 문제로 울릉도를 방문하겠다며 입국한 자민당 우익 3인방이 우리 정부의 입국 거부 조치로 9시간 동안 공항에 머물다 돌아갔다. 막무가내 입국과 빈손 귀국이 이번 민주당의 방일과 꼭 닮아 있다. '김포공항 쇼'의 주인공인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의 목적 역시 일본 국내 정치였다. 그들은 이런 혐한 퍼포먼스 경력을 우익 세력들에게 어필하는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한국 내의 맹목적 반일 감정과 일본 내 혐한 세력의 위험한 공생·결탁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걱정거리다. 2011년 김포공항과 2023년의 후쿠시마는 비극적인 데칼코마니의 생생한 현장이다.
서승욱 논설위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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