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저출산 극복? 아동·가족 지원부터 늘려야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1930~2014) 교수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 이론을 기반으로 인간 행동과 사회 현상을 분석했다. 특히 가족 형성과 가족 내부의 의사결정 문제에 대한 경제학 이론이 대표적인 업적으로 남아있다. 베커 교수는 “출산은 이를 선택했을 때 발생할 경제적 비용과 편익(또는 효용)의 크기를 고려한 개인의 합리적 의사결정의 결과”라고 봤다.
그의 이론을 따라가 보면 여성의 경제 활동이 증가하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출산으로 인한 기회비용이 커지므로 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작아지게 된다. 이때 기회비용은 양육에 의한 경력 단절 등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의미하며, 양육비 등 직접 비용도 출산에서 비롯되므로 넓은 의미에서 기회비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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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P 대비 OECD 평균 못 미쳐
양육·교육비 부담이 주요 원인
아이 키우는 행복 느끼게 해야
」
모든 개인의 선택을 베커 교수의 모형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가 제시한 직관은 저출산 문제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틀을 제공한다.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여성 교육과 경제 활동의 기회, 그리고 전문직 진출은 점차 확대돼왔다. 그 과정에서 출산의 기회비용이 높아졌고, 이는 80년대 이후 지속한 출산율 하락과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더 활발한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출산의 기회비용을 현저히 낮추지 못하면 저출산 문제 극복은 요원해질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출산 기피 이유를 묻는 각종 여론 조사에서 양육과 교육비 부담, 그리고 출산으로 인한 사회생활 지장 및 경력 단절은 대표적인 이유로 꼽힌다. 따라서 이런 정책 수요에 정부 대책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출산의 기회비용과 직접 관련된 정부 지원을 살펴보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보육료 지원, 돌봄 교사 인건비 지원, 돌봄 시설 인프라 확충, 생애 초기 각종 수당, 육아 휴직 같은 일·양육 병행 지원 등의 예산을 모두 합하면 2022년 기준으로 약 20조원이나 된다. 연간 20만 명의 아이가 태어나고 5세까지 지원이 집중된다고 가정하면, 아이 한 명당 연간 2000만원 상당의 정부 지원이 직·간접적으로 제공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지원에도 출산율이 속절없이 떨어지는 것은 출산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만큼 정부 지원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한국의 202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아동·가족 지출은 1.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3%보다 부족하다. 아이 수가 줄면서 아이의 사회적 가치는 급등했지만, 그 가치에 버금가는 사회적 투자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투자 부족은 재정 지출의 부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양육 병행 지원 제도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달라진 양육과 돌봄 방식 수요에 정책이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출산의 기회비용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에 대한 보완도 시급하다.
지속적인 출산율 하락은 비용적 접근만으로는 저출산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비용-편익 틀을 적용해보면 출산이 합리적 선택이 되기 위한 또 다른 방안은 출산의 편익을 높이는 것이다. ‘2022년 한국의 사회지표’ 조사에 따르면 결혼 적령기인 20~30대 중 절반 이상은 자녀가 꼭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했고 이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청년들이 인식하는 출산의 편익이 이렇게 낮아진다면, 앞으로 적극적인 비용 지원 정책을 펼쳐도 효과가 없을 공산이 크다.
출산의 편익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얻는 행복이다. 정부 정책으로 아이 키우는 행복을 높이는 것은 비용 지원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출산 편익의 하락은 고도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초경쟁 사회, 계층 갈등, 가족 친화적이지 못한 기업문화 등 사회 구조적 요인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구조적 요인이 장시간에 걸쳐 일상에 고착하면서 아이 키우는 행복을 경험하거나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출산이 합리적 선택이 되려면, 출산의 기회비용을 낮추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되 사회구조를 바꾸는 진지한 논의와 실천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 그 목표는 단순히 출산율 증가가 아니라 아이와 가족, 그리고 공동체 가치의 회복이어야 한다. 이는 정부는 물론 기업·언론 등 우리 사회가 다 함께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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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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