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소아과 대란의 역설, 소아과 의사가 넘쳐난다
공공의료 둘러싼 이념 대립하기도
의료 접근성·진료비 해석 제각각
상대 진영 유리하면 통계도 불신
'소아과 대란' 의사 수 문제인가
진영 논리 내려놓고 해법 찾아야
"주체사상도 고등과학기술은 예외다. "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의 특강을 비롯해 외국인 교수가 100% 영어로 강의하는 북한 유일의 국제 사립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학. 이 대학 건립(2010년 개교)부터 운영을 주도해온 재미 공학자 박찬모(87) 평양과기대 명예총장이 올 초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주체사상을 종교처럼 떠받드는 북한조차 최고의 이공계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라면 이데올로기는 한 수 접는다니 놀라웠다.
━
"정부를 믿든지 내 말을 믿든지"
문재인 케어 설계자였던 김윤 교수는 전국을 55개 중진료권으로 나눴을 때 17개(31%)가 의료취약지이고, 우리 국민 7명 중 1명(14%)은 위중한 입원 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없는 의료취약지에 산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의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국내 의사 수 자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턱없이 부족하지만 특히 지방에 300병상 이상의 큰 종합병원이 없어 의사 부족이 심화했고, 그 결과 국민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못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스레 의사 정원 증대와 지방 공공병원 확대라는 두 축의 해법이 나온다.
그런데 지난 정부에서 역시 김용익 라인이 원장으로 있던 국내 공공의료 컨트롤타워인 국립중앙의료원(NMC)이 매년 발표하는 '공공보건의료 통계집'을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빅5 같은 상급종합병원에 180분 아내 접근이 불가능한 인구 비율은 전국 평균 9.7%에 불과하다. 그나마 섬 제주(100%)와 산간 지역이 많은 강원(43.2%)이 평균을 높였을 뿐 전남(11.4%)과 경북(7.3%)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0%에 가깝다. 종합병원에 90분 내 접근 불가능한 인구는 1.6%이고,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으로 좁혀도 5.7%에 불과하다.
이 간극에 대해 김 교수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이런 답이 나왔다.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지만 정부 통계가 내 연구보다 신뢰도가 높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를 믿든지 내 말을 믿든지, 그건 위원님 선택인 거죠. "
전국을 55개 중진료권으로 나누는 김 교수의 지난해 1월 연구 발표도 국민건강보험공단(정부) 용역이었다.
5만명 부족 vs 의사 과잉
지금 대한민국은 소아진료 인프라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소아청소년과(소청과)는 2023년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레지던트) 정원(207명)에 한참 못 미치는 모집률(15.9%, 33명 지원)을 보여 전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불과 5년 전인 2018년엔 정원 넘게 충원됐고, 2019년엔 충원율이 90%에 달했다. 그런데 올해는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을 제외하면 세브란스병원(11명 정원에 0명)을 비롯해 대부분의 병원에 단 1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당직을 설 전공의를 채우지 못하다 보니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은 한때 입원 진료를 중단하기도 했다.
당장 아이가 아파도 갈 병원이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걱정이 쏟아졌다. 의사가 부족하니 18년째 3000명 수준인 전국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진 배경이다. 세간엔 의사 부족과 소아과 의사 부족 논의가 뒤섞여 오간다. 우선 전체 의사 수 얘기부터 해보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신영석 박사팀은 지난해 말 2035년 기준으로 소청과를 비롯해 전체 의사 수가 수요보다 2만 7000명 부족하다는 숫자를 제시했다. 김윤 교수는 최근 한 칼럼에서 "2035년까지 의사 5만명이 더 필요한데 인구 감소로 줄어드는 의사 수요는 1만명에 불과하다"며 보사연보다 부족한 의사 수가 더 크다는 주장을 내놨다. 대체 5만명의 근거는 뭘까. 김 교수는 일단 한 발 뺐다. "전체 인구 1인당 진료비와 노인 인구 1인당 진료비를 단순 계산한 것인데, 5만이라는 절대 숫자는 중요한 게 아니다"며 "인구 감소 효과보다 노인 인구 증가 효과가 크다는 게 초점"이라고 설명했다.
보사연과 김 교수 주장에 대해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보사연 연구는 의사의 연간 근무일 수를 현실보다 작게 잡아 의사 수요가 더 높게 나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당장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2038년에야 배출된다는 점에서 당장 실효가 의심스럽다, 그때쯤 되면 우리나라 인구 감소 현상이 더 심해진다, 이렇게 되면 의사 과잉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소아과 의사 부족'이라는 착시
전공의 충격에 이어 개원의 모임인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이 지난달 진료수가 인상을 요구하며 "소청과 간판을 내리겠다"며 폐과 선언을 한 게 소아진료 붕괴 공포를 더 했다. 그렇다면 소아과 전문의 수로만 좁혀 보면 어떨까.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각종 통계를 보면 소아과 의사 역시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넘친다. 저출산 여파로 출생인구가 10년 만에 거의 반 토막 났지만 같은 기간(2012~2022년 6월) 소청과 전문의는 거꾸로 28%나 늘었다. 그런데 전국 소청과 의원은 거꾸로 61개(2017~2022)가 줄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 현황에 일부 답이 있다. 어렵게 전문의 자격을 따고도 전문과목 표시 없이 일반의로 개원하는 숫자를 말하는 것인데, 소청과 비중이 최근 크게 늘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의 '2020 전국의사조사'를 봐도 소청과는 전문의 취득 후 진료과목이 불일치하는 비율이 7.8%로 높았다. 유독 소청과의 은퇴가 빠른 것도 또 다른 요인이다. 65세 이상 전문의 46.2%가 활동을 안 하는데, 특히 소청과는 절반 이상(51.1%)이 일을 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현직 의사는 소아과를 포기하고 미래 의사는 소아과를 외면한다"고 입 모아 이야기하는 소아과 의사들 주장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의사 정원을 늘려도 소아과 의사는 늘지 않을 거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반면 임현택 회장은 교묘한 통계 왜곡이라고 반박한다. "복지부 발표는 심평원 급여통계와 달리 부풀려졌다, 게다가 김 교수는 코로나 19로 2020년 진료비가 급감했는데 의도적으로 이 숫자를 감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소청과 의원의 요양급여비용(진료비)은 2019년 8005억원에서 2020년 4648억으로 급감했다.
양측의 공방을 보고 있자니 문득 『마크 트웨인 자서전』에서 마크 트웨인이 영국 작가 벤저민 디즈레일리를 인용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
안혜리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포르노 거물' 이미지 지웠다…EPL에 수천억 쏟아붓는 이유 | 중앙일보
- 모로코 시장서 쫓겨난 백종원…"다신 오지마" 악플 테러, 무슨일 | 중앙일보
- [단독] "女알몸사진 받았다"…JMS정명석 뒤 봐준 교도관 캔다 | 중앙일보
- "연설 한번 하시라"말에 고민한다…與 흔든 전광훈 뒤 이 숫자 | 중앙일보
- 11년 불륜도 내연녀 음란메일 들켜도 4선 성공…충격의 日 | 중앙일보
- "봉투 10개 준비"…野 전대 불법자금 의혹, 검사 6명 추가 투입 | 중앙일보
- "참 훌륭해" 해놓고 안 간다…낙인찍힌 '코로나 병원'의 눈물 | 중앙일보
- 돌싱남들 재혼 꺼리는 이유…41%가 "이혼으로 재산 반토막" | 중앙일보
- 독도 나타난 시커먼 침입자 정체…유전자 보니 '울릉도 출신' | 중앙일보
- '폴란드 대박'은 잊어라…K방산 위협한다, 日의 중고무기 수출 [Focus 인사이드]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