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생활의 발견] 작디작음이 크디크다는 것
어쩌다 가벼운 수술이 잡혀 근 일주일 입원하게 되었다. 트렁크를 꾸릴 때 내가 우선하여 챙기는 사물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비누다. 닳을 대로 닳은 세안용 비누와 샤워용 비누를 비닐장갑 다섯 손가락 중 잘 들어맞는 데다 밀어 넣고 포개어 담는데 이 과정을 왜 거치느냐 하면 어떤 물건이 제 쓰임을 다할 때 그 끝을 눈으로 꼭 확인하고파서다. 우리가 내버리는 재활용쓰레기 중 다 쓴 물건이 태반일까 안 쓸 물건이 거반일까.
다음날 이른 아침 노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청소노동자 선생님의 방문이었다. 이내 화장실로 들어간 그의 말이었다. “환자분, 제가 세면대 위에 있는 비누 좀 알아서 담아도 될까요?” 아뿔싸! 샤워를 마친 뒤 물에 젖은 검은 비누와 하얀 비누를 물에 젖은 비누장갑 위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채 나온 나였구나. 세면대 위로 잿빛 비눗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걸 보고도 에라 모르겠다 나온 나였구나.
청소를 마친 그가 돌아간 뒤에 화장실에 가보니 버건디 컬러의 뚜껑이 덮인 한 체인 죽집의 네모난 반찬 용기가 세면대 위에 놓여 있었다. 뚜껑을 여니 흑과 백 두 컬러의 비누가 애초 제 곽이 이거라는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서로의 물기가 서로에게 닿을세라 간격을 둔 채였는데 놀라운 건 표면의 마름이었다. 수고를 견디고 그것에 감사한 사람은 복되다 하였지. 수고를 지켜보고 그것에 감사한 사람이니 내 복은 이에 반쯤 가져도 되려나.
퇴원날 이른 아침 청소노동자 선생님의 노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이내 화장실로 들어간 그의 말이었다. “환자분, 비누 다 쓰신 것 같은데 통은 제가 치워도 될까요?” 아니요! 그가 깨끗하게 헹궈 놓은 빈 용기는 에코백에 담아 어깨에 멨다. 순간 MRI 영상을 함께 보던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이 작은 기관이 그 큰일을 하는 겁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에서 빈 용기를 꺼낸 나는 새 비누 하나 거기 담고 씻은 조약돌 몇 개 거기 넣어두었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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