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급소 때리고 싶었다…외국인 가사도우미 필요한 이유 [조정훈이 소리내다]

조정훈 2023. 4. 1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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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제한 없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발의되자 이에 대한 반발도 일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0.78. 정치를 하는 필자에게 가장 두렵고 부끄러운 숫자다. 전쟁도, 전염병도 없는 평시인데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숫자가 0.78명이다. 2017년 출생아 수 35만8000명에서 단 5년 만에 24만9000명이 됐다. 아무리 호화로운 한강의 야경에 K-한류가 세상을 흔들어 대도 대한민국은 소멸하고 있다. 이 두려운 현실은 20여년 전부터 알려졌다. 그 뒤로 2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과 함께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제도와 지원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다 소용없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급속한 저출산ㆍ고령화 추세로 인해 교육, 연금, 국방 등 사회 전반에 심각한 사회문제가 야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적극적 출산장려를 위한 범정부적인 종합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20년 전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이다. 출산수당, 아동 양육수당, 주택청약 우선권 부여 등은 20년 전부터 해 본 정책들이다. 이제 제발 결론을 내자. 그동안 거론된 해결책으로 대한민국을 소멸에서 구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저출산이란 질병의 급소를 제대로 찾지 못한 채 이런 약, 저런 치료를 하면서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기 때문이다.

출산·육아로 불이익 받는 나라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보건복지부, 육아정책연구소, 통계청, 직장갑질 119, 엠브레인퍼블릭]


저출산 급소는 여성의 육아와 가사 부담


그렇다면 저출산의 급소는 어디일까.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단연코 여성의 육아와 가사에 대한 부담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고, 그 이유를 토대로 조금 파격적인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우선, 부모세대와 달리 청년세대는 맞벌이가 기본이다. 기본이 바뀐 것이다. 문제는 기본은 바뀌었는데 문화와 현실은 바뀐 게 없다. 맞벌이로 부모가 모두 일하러 가면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다. 육아휴직 제도가 있다고 말하겠지만, 현실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눈치 보인다. 2019년 통계청에 따르면, 고용이 안정적인 상용직 노동자 중에서도 육아휴직을 사용한 비율은 10명에 1명도 안 된다. 그중에서 3명 중 1명은 직장에 복귀를 못 했다. 출산은 곧 퇴사란 공식이 생긴 셈이다. 정치인으로서 부끄럽고 두려운 것은 지난해 정말 소중히 만들어 온 경력을 중단한 여성의 수다. 140만 명. 그 처절한 숫자 속에서 단절 이유로 꼽힌 게 육아이다.

그렇다고 이에 대한 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에게만 육아와 가사부담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모여 육아휴직을 엄마와 아빠 모두 쓰게 하자는 정책, 단축 근무와 유연 근무 활성화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자는 정책, 이미 유럽에서 성공하고 있다(?)는 정책들이 물 밀듯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제도가 있음에도 실제로 쓰지 못한다는 점이다. 눈치 보인다는 이유, 경력에 대한 걱정 등 문화 자체가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K-문화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는데, 문화강국이란 찬사가 어색해지는 지점이다.

연합뉴스


여전히 세탁기 누르는 건 여성


이런 문제의식으로 보좌진과 대화를 나눴다. 그때 강한 충격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세탁기 발명이 여성의 삶에 큰 혁명이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이런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했더니, 한 보좌진이 “여전히 세탁기 누르는 건 여성”이라고 답했다. 빨래가 좀 더 쉬워졌을 뿐 여성의 가사 부담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짊어지는 짐과 강요되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럼 도대체 무엇으로 기본이 바뀐 세대에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도울 수 있을까. 이미 결혼한 청년세대들, 그리고 결혼과 육아를 고민하는 미래세대들에게 결혼과 육아가 그리 어렵고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이 확신이 바로 0.78명이라는 저출산 문제의 급소인 것이다. 이를 단번에 해결하는 정책을 제안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비록 거칠고 투박하며 금기시되는 것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급소를 때리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그래서 법안을 만들어 조심스럽게 세상에 던졌다. 바로 ‘최저임금 없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다. 현재 내국인과 중국 동포 중심으로만 제한된 가사도우미 시장을 외국인에게도 개방하고, 외국인은 5년간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실험하자는 내용이다.


최저임금 없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필요


이 법안이 건드리고 있는 최저임금, 외국인, 가사노동 모두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인종차별, 국적차별, 가사노동 폄하란 지적도 받았다. 당연하다. 그러나 이상적인 정책들이 작동되지 못했으니 뭐라도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금기시된 단어들을 던지면서까지 여성과 청년들에게만 지어졌던 가사와 육아의 짐을 사회 모든 구성원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단순히 정부의 재정지원으론 해결할 수 없는 청년세대가 직면한 현실과 이 국가적 위기에 대해서.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유니온 조합원들이 지난달 27일 오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사근로자법 개정안 규탄 및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법안 발의 전 3040의 육아하는 청년 그룹에 먼저 이 제안을 했다. 그랬더니 첫 마디가 의외였다. “한국어 할 수 있나요?” 이들에게는 당장 자신의 짐을 덜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들도 대화 중에 결혼 전이었다면, 외국인 차별이란 생각을 먼저 했을 것이라 털어놨다. 이 간극은 무엇일까. 정치인으로서 고민의 지점이다.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발의된 이 법안은 어찌 보면 매우 거칠고 투박하다. 그럼에도 조항 하나하나에 출생과 육아, 가사, 외국인에 대한 문제가 다 튀어나온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곪은 문제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표발의자는 필자이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답이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이야기하고 수정하고 고쳐나갔으면 한다.
법안 내용 자체보단 함께하는 움직임이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법안으로 상처받은 분들이 있다면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덧붙여 이 법안이 더 많은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게 동참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조정훈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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