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TSMC도 먹구름…46개월 만에 월 매출 감소
생산량(웨이퍼 투입 기준)으로 세계 1위인 대만의 반도체 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미·중 갈등의 직격탄까지 맞아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도 진퇴양난에 빠진 모습이다.
TSMC는 지난달 매출이 1454억1000만 대만달러(약 6조3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15.4% 줄었다고 11일 발표했다. TSMC의 월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줄어든 것은 2019년 5월 이후 3년 10개월 만이다. 1분기 전체 매출은 5086억 대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6% 증가했지만, 시장 추정치(블룸버그통신)인 5255억 대만달러를 밑돌았다.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 금융위기 등으로 소비 심리가 급랭하면서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다. 반도체 불황이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로 확산한 것이다. 실제로 IDC에 따르면 1분기 글로벌 PC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9% 줄었다. 특히 애플의 맥 출하량은 같은 기간 40.5% 급감했다. TSMC는 애플 스마트폰과 맥에 상당량의 칩을 공급하고 있다.
부진한 성적표를 받은 건 TSMC만이 아니다. 대만 1위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이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1위인 미디어텍의 지난달 매출은 429억5800만 대만달러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27.41% 감소했다. 1분기 매출도 32.98% 하락했다. 대만 2위 파운드리인 UMC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53% 줄었다. TSMC를 중심으로 설계-생산-후공정 생태계를 형성했던 대만 반도체 산업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대외 여건도 첩첩산중이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400억 달러(약 52조8000억원)를 들여 새 공장을 짓고 있는 TSMC는 최근 미국 반도체 보조금 신청을 앞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조금 지원 조건에 초과 이익 공유와 민감한 정보 제공 등이 들어 있어서다. TSMC는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반도체 지침에 대해 미국 정부와 소통하고 있다”며 규정 축소 협상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과의 관계는 갈수록 꼬이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즈는 최근 사설을 통해 “대만의 제조업 공동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 본토와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TSMC(‘대만(Taiwan) 반도체 제조기업’의 약자)를 USSMC(‘미국(US) 반도체 제조기업’)로 바꾸면서 대만의 칩 산업을 없애려고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앞서 지나 러몬드 미국 상무부 장관이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우리가 최첨단 반도체의 90% 이상을 대만에서 구매한다는 사실은 지속 불가능하며, 솔직히 위험하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맞대응 차원이다.
반도체 업계는 올해 2분기에도 업황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스마트폰·PC 서버 등 수요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아서다. TSMC도 불황 장기화에 대비하고 나섰다. 중국 반도체 전문지 신즈쉰에 따르면 당초 1월 예정이었던 TSMC 가오슝 신규 공장의 장비 도입 입찰이 1년 후로 연기됐다. 가오슝 공장은 7나노미터(㎚·1㎚=10억 분의 1m)와 28㎚ 공장 2개가 건설될 계획이었지만, 수요 부진으로 첨단 공정인 7㎚ 팹 도입 시기를 늦춘 것이다. TSMC는 오는 20일 컨퍼런스콜을 열고 최근 실적과 향후 사업계획을 설명할 예정이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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