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짐칸 탑승' 사라진 뒤 벌어진 일 [김용균재단이 바라본 세상]
[이김춘택]
▲ 하청노동자가 타는 작업장 이동트럭 지난해 6월, 대우조선해양 사내에서 작업장까지 이동하는 트럭 중 하청노동자들이 타는 트럭모습 |
ⓒ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
필자는 지난 2022년 7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매일 아침 트럭 짐칸에 실려 위험하게 작업현장으로 이동하는 현실에 대한 글을 썼다. 특히 정규직노동자가 이용하는 트럭은 철판으로 3면을 덮고 의자를 설치해서 안전하게 운행하는데, 당시 대부분의 하청노동자가 탑승하는 트럭은 간단한 핸드레일이 안전장치의 전부였다. 원하청 차별을 지적했다. 또, 안전 조치를 요구해도 '법규정을 검토 중'이라며 시간만 보내던 노동부의 직무유기를 비판했다.(관련 기사: 대우조선 정규직과 하청, 작업장 이동 트럭도 차별 https://omn.kr/1zvi9).
그 후로 5개월이 2022년 12월 30일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은 '하청노동자 트럭 짐칸 탑승'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고발 사건에 대해 처분을 내렸다. 검찰 측은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에는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을, 우제혁 조선소장과 대우조선해양 법인에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결정문에 쓰인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랬다.
"조선소장 우제혁이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서 대우조선해양 주식회사 및 협력사의 안전보건에 관한 사업주의 권한을 위임받아 이를 행사하는 바...(후략)"
▲ 통영지청 산안법 위반 결정문 고소한 사건에 대한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에서 결정문을 받았다. |
ⓒ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
검찰 불기소 결정문 속 이 한 줄의 문장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처벌할 수 없음을,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대우조선해양의 사업주는 박두선 사장이지만 안전보건에 관한 사업주의 권한은 조선소장에게 위임돼 있으므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발생해도 처벌은 사업주인 사장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조선소장이 받게 되는 구조다.
그렇다면 조선소장과 대우조선해양 법인은 왜 기소유예 처분된 것일까? 기소유예란 위법 사실은 인정되지만, 정상을 참작해 처벌은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검찰은 "동종 범죄전력이 없"고, "'사내 교통안전 관리 규칙', '화물차, 트랙터 및 트레일러 안전운행 기준' 등을 마련해 소속 근로자 및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이를 준수하도록 노력한 점"을 조선소장 기소유예의 참작 사유로 삼았다.
그런데 이같은 검찰의 불기소 이유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노동청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신고 뒤 진행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자료에 의하면, 하청업체들이 하청노동자를 트럭 짐칸에 싣고 다닌 것은 다름 아니라 대우조선해양이 정한 '적재함 인원 탑승용 화물차 운행 기준'(아래 '적재함 탑승 기준')을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우조선해양 측이 상황을 개선하겠다며 현 상황, 개선방안 등을 적어 노동부에 제출한 '적재함 인원 탑습용 화물차 운행기준(안)'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적재함 탑승 기준'에 보면, ①0.5톤 화물차는 6명 이하, ②1톤 화물차는 12명 이하, ③1톤 더블캡은 10명 이하로 '화물칸 사람 탑승 인원'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또한 '사내 교통안전 관리 규칙'의 '화물차 사람 탑승에 따른 안전보호 울(둘러막거나 경계를 가르는 물건) 설치 기준'을 보면 ①적재함 양측면 25A PIPE 강도 이상의 핸드레일 설치, ②화물칸 상단 높이 40cm 이상의 고정식으로 하고, 보호 울 색상은 노란색, ③화물칸 후면은 추락방지 체인설치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정해놨다.
즉, 이제까지 하청업체들이 '사업주는 화물차 적재함에 추락방지조치 없이 근로자를 탑승시켜선 안 된다(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 제86조)'는 법 조항을 위반해 화물차 짐칸 탑승 운행을 한 건 대우조선해양이 정한 규칙과 기준을 정확하고 충실하게 따른 결과였다.
다시 말해, 원청 대우조선해양이 정한 규칙과 기준이 하청업체의 위법 행위를 사실상 강제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규칙과 기준을 마련한 것은 처벌의 근거가 될지언정, 검찰의 주장처럼 정상 참작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 지난해 10월 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의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왼쪽)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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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인가. 기소유예란 위법은 인정된다는 뜻이므로, 이는 앞으로 위법한 트럭 짐칸 탑승을 계속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 사실을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에 알리자, 6개월 넘게 법규정 검토만 하고 있던 노동부도 이제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다.
결국, 지난 1월 10일 통영지청 주관으로 원청 대우조선해양과 하청 협력사협의회 그리고 정규직 노동조합인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와 하청 노동조합인 조선하청지회 이렇게 노동부와 원하청 노사 5자가 만나서 논의해 합의를 만들어냈다.
정규직노동자들이 타고 다니는 트럭과 같이 짐칸 양면과 천정을 함석 또는 방수천 재질의 보호울로 덮고 짐칸 안에는 의자와 손잡이 등 안전장치를 설치하기로 했다. 또한, 여름철 더위에 대비한 환기창 설치, 중량물 및 가연성 물질과 동시 탑승 금지도 합의했다. 다만, 안전장치 설치에 시간이 필요하므로 2023년 2월 말까지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3월 말까지 계도기간을 둔 뒤, 4월부터는 이제까지와 같은 위험한 트럭 짐칸 탑승은 금지하기로 했다.
▲ 노동자들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비용과 안전 모두 하청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겨버리는 원하청 행태에 분노가 인다. 사진은 탈의실부터, 거리가 먼 작업현장까지 이동하는 용으로 쓰고 있다는 한 직원의 세발 자전거 사진. |
ⓒ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
그래도 늦었지만 다행이다 싶었다. 두 달 동안 별다른 사고만 나지 않으면, 하청노동자가 트럭 짐칸에 실려 다니는 위험한 상황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원청과 노동부에 문제제기하고 언론에 알린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약속한 2월이 지나도 짐칸에 사람을 태우고 다니던 트럭 30여 대 중에서 안전장치를 설치한 트럭은, 당시 내가 알기론 3대에 불과했다. 대다수 하청업체는 3월 말이 다 되도록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하청노동자를 싣고 다녔다. 4월이 다가오자 업체들이 안전장지를 하지 않고 여전히 사람을 싣고 다닌 이유가 밝혀졌다. 트럭 짐칸 탑승은 금지했지만,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대신 하청노동자에게 '자전거를 사서 탈의실부터 작업현장까지 타고 다니라'고 한 것이다.
본래도 남성 노동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트럭 짐칸에 탑승해 작업현장으로 이동하는 노동자의 대다수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는 40대 후반 또는 50대가 많다. 트럭 짐칸에 안전장치를 설치하기로 합의해 놓고, 원청은 안전장치 설치를 위한 비용 지원은 나 몰라라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하청업체는 안전장치 대신 40~50대 여성 노동자들에게 사비로 자전거를 사서 타고 다니라고 한 것이다.
그 결과, 여성 노동자들은 졸지에 10만~20만 원 하는 자전거 구입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한다. 자전거를 탈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이제껏 자전거를 타보지 않은 여성 노동자는 당장 두발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특수 제작한 세발자전거를 30~40만 원 가량 주고 사야만 했다는 이야기다.
회사가 부담해야 할 안전 비용을 노동자 개개인에게 떠넘기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해서는 위험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트럭 짐칸 탑승은 사라졌지만, 위험은 사라지지 않은 채 익숙하지 않은 자전거를 타고 작업현장까지 가야 하는 여성노동자 개인에게 옮겨갔다. 그와 더불어, 사고가 나도 회사의 책임이 아닌 자전거를 탄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책임의 주체도 옮겨갔다.
하루아침에 수십만 원을 들여 억지로 자전거를 사게 된 데다, 서툰 자전거를 고생스럽게 타고 다녀야 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이제 위험한 트럭 짐칸 탑승을 문제 삼은 하청 노동조합을 원망하고 있다고 한다. 원망을 들어서라도 하청노동자의 안전이 지켜진다면 기꺼이 원망쯤은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비용과 안전 모두 하청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겨버리는 원하청 자본의 행태에 가슴 깊이 분노가 인다.
대우조선해양에서 하청노동자 트럭 짐칸 탑승은 사라졌다. 그러나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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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용균재단 회원이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으로 활동하는 이김춘택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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