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운드' 단점마저 덮어버린 '두 번째 기회'라는 낭만

원종빈 2023. 4. 1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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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리바운드>

[원종빈 기자]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 (주)바른손이앤에이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농구 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모교인 부산중앙고에서 공익 근무 중인 '양현'(안재홍). 그는 하루아침에 농구부 신임 코치로 발탁된다. 학교 윗선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는 농구부를 해체하는 대신 구색만 갖추기로 했기 때문. 양현은 선수들을 끌어모아 어떻게든 팀 전력을 끌어올리려 한다. 

천재 유망주였지만 슬럼프에 빠진 가드 '기범'(이신영), 부상으로 꿈을 접은 올라운더 스몰 포워드 '규혁'(정진운), 센터 '순규'(김택), 길거리 농구만 해온 파워 포워드 '강호'(정건주)까지. 그러나 급조한 팀은 첫 경기에서 몰수패라는 결과를 마주하고, 해체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농구를 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잡은 코치와 선수들은 포기를 몰랐고, 이들은 새로이 팀에 합류한 '재윤'(김민)과 '진욱'(안지호)과 함께 8일간의 기적을 준비한다. 

스포츠라는 낭만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개인이나 단체끼리 속력, 지구력, 기능 따위를 겨루는 일'.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한 스포츠다.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 경쟁. 곧 공정한 경쟁. 이는 스포츠가 낭만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일이 가능하기 때문. 현실 속 경쟁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대학 입시가 취업 준비로, 다시 승진으로. 경쟁은 끊이지 않는다. 규칙이 의미 없을 때도 있다. 부모의 재력, 사회적 지위 등으로 인해 노력이 무의미할 때도 있다. 

스포츠는 다르다. 규칙을 어기면 곧장 불이익이 주어진다. 경기장 밖의 일은 경기장 안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낭만의 종류도 많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 역전하는 것,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하는 것, 상대를 이기지는 못해도 자기 기록을 뛰어넘는 것... 경기장 밖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모이면 스포츠에는 낭만이 쌓인다. 

이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서사가 있다. '재기'다. 스포츠에서 실패는 그저 실패가 아니다. 기회다. 축구에서는 공을 놓쳐도 '세컨드 볼'을 따내서 다시 공격할 수 있다. 테니스나 탁구에서도 서브 기회는 두 번 주어진다. 농구에서 바스켓에 맞고 튕겨 나온 볼을 다시 잡는 행위인 '리바운드'도 마찬가지다. 실패를 만회하려는 열정, 재기를 독려하는 기회라는 로망이 스포츠의 특성인 셈이다. 

'두 번째 기회'라는 낭만으로 가득한 <리바운드>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 (주)바른손이앤에이
 
그래서일까? 두 번째 기회라는 테마는 스포츠 영화에서 언제나 중요한 소재다.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스포츠 영화 <국가대표>가 대표적이다. 작중 선수들은 하나같이 결함이 있다. 미국 국가대표로 뽑히는 유망주였으나 부상 때문에 한국으로 귀화한 선수. 스키 선수였지만 부상을 입어 종목을 바꾼 선수. 군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경력과 가족 생계가 위기에 처한 선수. 그들에게 스키점프 국가대표는 두 번째 기회였다. 제대로 된 훈련장도 없고 금전적인 지원도 마땅치 않지만, 열정을 불태운 원동력이었다. 원했던 순위와 기록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도전이 감동적인 이유였다.

장항준 감독의 농구 영화 <리바운드>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단 한 번의 기회를 갈구하는 선수들을 나열한다. 슬럼프에 빠져 고등학교 진학조차 어려워진 유망주 기범. 발목을 다쳤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수술받지 못해 농구를 그만둔 규혁. 체계적인 농구 훈련을 받아 본 적 없는 순규와 강호.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를 했지만 한 번도 공식 경기를 뛰어본 적 없는 재윤. 선수로서 실패한 후 지도자로 재기를 노리는 양현. 이들은 '슛이 안 들어가도 리바운드(노력)를 잡으면 된다'는 메시지 하에 의기투합한다. 

낭만적인 메시지는 진한 감동으로 이어진다. 실패를 곱게 바라보지 않고, 두 번째 도전이 쉽지 않은 사회적 현실과 맞닿아 있으므로. 실제로 장 감독은 "엘리트 체육선수를 꿈꾸지만 이 대회가 자기 인생의 마지막 경기가 될지 모르는 수많은 선수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의 젊은 청년들이 조금이나마 위안과 공감을 얻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클리셰의 덫에 걸리다

그런데 감동은 많은 스포츠 영화를 함정에 빠뜨린다. 주제와 메시지가 유사한 것을 넘어서 감동을 주는 방식도 천편일률이기 때문이다. 턱없이 부족한 지원 속에 오합지졸처럼 보이는 팀을 꾸린다. 팀 안에서 갈등을 빚고, 부상자가 속출하며, 처음 호흡을 맞춘 경기에서는 참혹하게 실패한다. 하지만 의지와 깡으로 갈등을 봉합하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기적을 써 내려간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스포츠 영화의 공식이다. 

<리바운드>도 예외는 아니다. 교장은 구색만 맞춘 채 농구부를 방치한다. 팀의 중추가 되어야 할 기범과 규혁은 중학교 시절부터 앙숙이라서 좀처럼 호흡이 맞지 않는다. 에이스가 되어주길 기대한 센터 '준영'(이대희)은 팀을 이탈한다. 에이스가 사라지자 팀의 전술은 완전히 망가지고, 처음으로 농구를 배운 순규와 강호는 경기에 녹아들지 못한다. 중앙고는 고교 최강팀 용산고를 만난 전국 대회 1차전에서는 참패한다. 하지만 각자의 시련을 딛고 일어난 후 이변을 일으키며 끝내 해피엔딩을 쓴다.

익숙함이 죄는 아니다. 클리셰가 많아도 이야기가 짜임새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리바운드>는 클리셰를 제대로 써먹지 못해서 문제다. 익숙한 소재를 깊이 파고들지 못했고, 전반적으로 수박 겉핥는 인상이 짙다. 일례로 영화는 기범과 규혁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이 화해하는 에피소드는 의례적인 전개처럼 느껴진다. 농구부 운영에 대한 교장과 교사의 갈등도 간략한 코미디로 언급될 뿐이다. 순규와 강호의 불안함도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들은 고등학생에 와서 처음으로 농구를 시작한 관계로 대학 진학을 장담할 수 없다. 

클리셰가 너무 많아서 부각되지 않는 대목도 있다. 후보 선수가 없을 정도로 전력이 약한 팀이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준비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데 영화는 중앙고 코치와 선수가 무슨 준비를 했는지 거의 짚어주지 않는다. 양현이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선수들이 세탁실에서 패턴 플레이를 짜는 장면이 스쳐 지나가기는 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객관적인 강팀을 매 경기 무너뜨릴 수 있었는지 전술적인 측면은 끝내 알 수 없다. 선수들의 끈기와 노력, 절실함만 거듭 강조된다. 스포츠 영화로서 입체적인 매력을 더할 기회를 날린 셈이다. 그러다 보니 감동 한쪽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생생한 중계로 위기를 타개하다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 (주)바른손이앤에이
 
다행히도 <리바운드>는 위기를 영리하게 타개한다. 실제 농구 경기를 보는 듯한 생생한 묘사가 원동력이다. 모든 시합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만큼은 11년 전 경기를 재현한 듯 보인다. 선수들의 장비부터 포즈까지 실제 선수들의 것과 일치시켜서 현장감을 살린다. 경기장 효과음과 중계진 멘트를 더해 긴박함을 강조한다. 경기 내적으로도 공들인 티가 난다. 열세와 반격, 위기와 역전을 오가는 농구 경기의 흐름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착실하게 연출했다. 

세밀한 경기 묘사는 매 시합이 스토리텔링과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더 빛난다. 선수들의 위기와 갈등은 농구 코트 안에서만 펼쳐진다. 특히 토너먼트 경기는 선수 한 명 한 명을 위한 쇼라고 할 수 있다. 첫 경기에서 기범은 몰락한 천재의 부활을 알린다. 다음 경기에서 기범이 집중 견제를 당하자 예상치 못했던 대안이 등장한다. 입만 산 줄 알았던 진욱은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순규와 강호도 강한 피지컬로 골밑을 장악하면서 자기 재능을 입증해 보인다.

모든 팀원이 견제 당하자 재윤이 빛난다. 그는 처음 출전한 공식전에서 수없이 연습한 3점 슛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상대에게 일격을 가한다. 규혁도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발목 부상 때문에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던 그가 몸을 던지자 친구이자 앙숙인 기범은 멋진 어시스트로 화답한다. 마지막 순간 양현도 선수들의 사기를 한계까지 끌어올리며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물론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다 보니 경기가 너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 같기는 하다. 경기 묘사가 조금 더 상세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대신 스포츠 영화로서 <리바운드>의 매력은 살아난다. 캐릭터 드라마가 스포츠라는 낭만에 자연스레 녹아들자, 좌절을 극복하자는 메시지와 두 번째 기회라는 소재의 진정성이 제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갈등을 외부에 표출하는 대신 자기 자신과의 경쟁으로 설정한 선택이 후반부에 빛을 발한다. 클리셰의 늪에 빠진 전반의 실책을 만회한 셈이다. 

<리바운드>는 일장일단이 확실하다. 전개와 감성이 뻔한 측면은 있지만, 심장을 뛰게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스포츠 드라마의 매력과 감동도 익숙하지만, 실화를 충실히 재현한 제작진의 진심 덕분에 감동은 남부럽지 않다. 그러나 스포츠 영화 중에 흥미롭고, 독특한 위치를 점한 것도 분명하다. 공들인 티가 역력한 경기 장면은 저절로 주먹을 쥐게 만든다. 청춘의 패기가 자아내는 유쾌함과 싱그러움 덕분에 두 번째 도전이라는 보편적인 주제가 색달라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3인조 밴드 '펀(FUN)'의 'We Are Young'은 신의 한 수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부터 결말까지, 명장면으로 손색없으니까.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 (주)바른손이앤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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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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