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애도 가르친다…게임음악도 섭렵, 30대 지휘자 진솔
학폭 피해 왕따에서 창작·게임음악 스페셜리스트로
19·25일 이탈리아 라파시오나타 초청 공연
7월 30일 롯데콘서트홀서 말러 교향곡 3번 연주
“(이)영애 언니가 제게 의지해 지휘를 잘 배우고 계세요. 전보다 꽤 잘하세요. 얼마 전에는 거장 여성 지휘자의 몰락을 그린 영화 ‘타르’를 함께 보고 얘기도 나눴어요. ‘도덕성과 예술은 별개다’라는 메시지가 읽혔죠. 나는 예술은 도덕성이 어느 정도 담보돼야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소중한 예술을 지키기 위해 참고 절제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지난달 말 만난 지휘자 진솔(35)의 말이다. 그는 여성 지휘자를 다룬 드라마 ‘마에스트라’에서 배우 이영애의 지휘 코치를 맡고 있다. 드라마에서 만나게 될 이영애의 지휘 동작은 진솔의 영향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드라마 바깥에서는 이달 하순 관객들을 만난다. 이탈리아의 체임버 오케스트라인 라파시오나타(L’Appassionata) 초청 공연이다.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자신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앙상블 아르티제와 라파시오나타의 연합 오케스트라 무대를 꾸민다. 도쿄 필 수석 지휘자이자 작곡가로도 활동 중인 안드레아 바티스토니(35)의 플루트 협주곡 ‘기쁨의 정원(The Garden of Delights)’을 벤치올리니와 협연으로 국내 초연한다.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 ‘고전’과 슈만 교향곡 4번의 1841년 초판본도 연주한다. 슈만 교향곡 4번은 대개 1851년 판본이 연주된다. 그에 앞서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라파시오나타가 비발디를 연주한다. ‘올림피아데 서곡’과, 벤치올리니가 협연하는 플루트 협주곡 네 곡과 현악 협주곡 세 곡을 들려준다. 벤치올리니는 지난해 진솔이 네덜란드 테르뇌전과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에서 베를린 심포니를 지휘해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연주했을 때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2번 협연자였다.
"독일에서 석사 논문을 쓸 때 두 판본을 심층 비교했었다"는 진솔은 "말러의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말러의 슈만 편곡 버전은 1851년 판의 아류"라며 "1851년 판에 익숙한 분들이 특히 재미있게 들으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통영 출신 작곡가 진규영(75)의 외동딸인 진솔은 어려서 피아노를 쳤다. 아버지는 딸이 음악가가 되는 걸 반대하면서도 취미로라도 작곡 이론을 배워두라고 권해, 아버지의 제자의 제자에게 이따금 레슨을 받곤 했다.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학폭 피해자가 되기도 했고, 혼자 책을 읽거나 게임(리니지·라그나로크·카트라이더)을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느 날 접한 영상 하나가 인생을 바꿨다.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하는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연주였다.
“오자와는 작은 거인이었어요. 몸을 불사르듯 단원들 각자의 열정을 끄집어내더라고요. 10대 후반이었는데, 지휘자가 되고 싶어졌죠.”
하지만 지휘를 하겠다고 했더니 아버지의 반대가 더욱 컸다고 한다. 집을 나가 방황하다 몰래 입시를 준비했다.
“아는 언니에게 화성학 레슨 두 번 받은 게 전부였어요. 한 달 만에 백병동 화성학을 뗐죠. 내 뜻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밤새워 공부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진학한 한국예술종합학교 합창지휘과에서 진솔은 김성기 교수의 대위법과 고급화성 강의에 빠졌다고 했다. 어렵기로 악명 높은 과목이었다. "곡을 써봐야 작곡가의 마음을 안다. 작곡을 병행하라”는 스승의 조언에 따라 하루 10시간 푸가를 쓴 적도 있다. "3년간 음악 구조를 분석하며 익힌 대위법이 큰 도움이 되더라"고 했다.
“지난 50년간 창작 음악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아버지 세대 때 아방가르드가 유행했다면 우리 세대에게는 후기 낭만과 선법, 컴퓨터 음악 쪽이 강세였죠.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게 생겨나는 시대에 맞춰 최대한 많이 공부하는 게 목표입니다.”
한예종 졸업 후 클라우스 아르프 교수의 명성 때문에 지원한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는 실전에 강한 학교였다. 교내 오케스트라는 물론 불가리아·폴란드 등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휘는 주어진 시간 안에 스케줄을 세밀하게 조율해서 단원들이 지휘자의 음악을 따라오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 많이 배우고 음악성이 빼어나도 끝이 없어요. 결국 사람 다루는 일이라 많은 경험이 중요하구요. 음악 시스템 자체가 지휘 기회를 많이 주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진솔의 지휘는 특히 창작 분야에서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ARKO 한국창작음악제·대구국제현대음악제 등 다양한 창작 오페라를 섭렵해 현대음악 스페셜리스트로 불린다.
새 작품을 준비할 때 특히 지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작곡가에게 조언하거나, 작곡가와 연주자 사이에 기 싸움이 벌어질 때 중재하는 일도 지휘자의 몫이다. 능력 있는 지휘자는 악기가 손상되지 않도록 효과적인 연주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게임음악 전문 지휘자로도 통하는 진솔은 “클래식 업계는 사망한 지 몇백 년이 넘은 작곡가들을 연주하다보니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떨어진다. 사실 편곡해서 공연해도 안 되는 거다. 게임 지휘를 하며 현대음악·작곡가·편곡자 각각의 가치와 악보의 관계에 대해 많이 공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게임음악 전문 플랫폼 ‘플래직’의 대표이사이자 예술감독인 진솔은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엔씨소프트 등 국내외 게임사는 물론 한국게임산업협회, 게임문화재단 등과 정식 계약을 맺고 게임음악 공연 기획하는 일도 한다. "5~10년 뒤에는 게임 음악에 신세계가 열릴 것"이라며 “한스짐머 같은 영화 음악 거장도 게임음악에 투입된다. 작곡과 출신들도 모여들다 보면 이 분야가 정말 좋아지겠구나 하고 생각한다”고 했다.
진솔은 올해 어느 해보다 스케줄이 빡빡하다. 6월 빈 무지크페라인잘에서 슬로바키아 방송교향악단 지휘, 7월 22일 한예종 영재원 오케스트라 정기공연, 7월 30일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3번 지휘가 예정돼 있다. 창작도 손에서 놓지 않겠다며 이런 포부를 밝혔다.
"여성 지휘자를 넘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지휘자가 되고 싶습니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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