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문건 속 "러에 로켓 줘라"…美우방국 이집트 배신 정황

김서원 2023. 4. 1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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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할 계획을 세웠다는 정황이 미국 정부의 기밀문건 유출로 드러났다. 사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두번째),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왼쪽 세번째)이 지난 2014년 8월 12일 러시아 소치 흑해 항구에서 열린 유도 미사일 순양함 모스크바호 선상 환영식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동맹국 도청 내용 등이 담긴 미국의 기밀문건 유출 파문이 확산하는 가운데, 미국의 우방국인 이집트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로켓과 탄약 지원을 몰래 계획한 정황이 문건을 통해 포착됐다. 이집트 측은 이 같은 의혹을 부인했다.

1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이집트군 고위 관리들 간 대화 내용이 담긴 2월 17일 자 극비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알시시 대통령은 러시아에 공급할 4만 개의 로켓포탄을 생산하라고 지난 2월 1일 지시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지원으로 인해 서방과 갈등을 빚지 않도록 로켓 생산과 수송을 비밀에 부칠 것을 관리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알시시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자국의 122㎜ 사크르(SAKR)-45 로켓 생산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일반 물건들을 중국에 판매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로켓은 러시아의 그라드(GRAD) 다연장 로켓포와 호환된다고 WP는 설명했다.

알시시 대통령이 대화한 상대는 이집트 정부의 군사 물자 생산 담당인 모하메드 살라 알딘으로 추정된다. 알딘의 말에 따르면 러시아 측은 이집트에 "무엇이든 살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알딘은 "필요하다면 (군수품 공장의) 교대근무를 명령하겠다. 이는 도움을 준 러시아에 이집트가 보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며 적극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WP는 "문서엔 미국 정부가 이집트 정부의 대화 내용을 어떻게 수집했는지 명시돼 있지 않지만, 통신을 도청하는 방식인 신호 정보(시긴트)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해당 문건은 최초 유포 경로로 알려진 온라인 게임 채팅 게시판 '디스코드'에 지난 2~3월 이미지 파일로 올라왔다고 WP가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지난 2014년 러시아 소치 흑해 항구에서 열린 유도 미사일 순양함 모스코바호 선상 환영식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집트 외무부는 이 같은 의혹을 공식 부인했다. 아흐메드 아부 제이드 이집트 외무부 대변인은 문건 내용 관련 질문에 "우리의 입장은 본래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양측과 동등한 거리를 유지하겠단 약속에 기초하고 있다"며 "교전을 중단하고 협상을 통한 정치적 해결을 이룰 것을 양측에 촉구한다는 내용의 유엔헌장을 존중한다"고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했다.

익명의 미국 정부 관리는 WP에 "이집트의 러시아 로켓 지원과 관련해 실행 여부 등 동태를 파악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 법무부는 국방부와 공조해 기밀문건 유출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이집트는 중동·북아프리카 내 미국의 주요 우방국 중 하나로, 미국으로부터 지난 수십 년 간 국방·안보 목적으로 매년 10억 달러(약 1조3100억 원) 이상의 원조금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집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측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가격이 상승하자 러시아산 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엔 러시아가 이집트의 대규모 철도 인프라 건설 수주를 따고, 지난해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인 로사톰이 이집트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등 경제적으로 밀착 중이다.

압델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월 30일 카이로 대통령궁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가운데 러시아에 대한 무기지원 의혹이 드러난 만큼 미국과 이집트 사이 외교관계가 악화할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크리스 머피 의원(민주당)은 "알시시가 우크라이나에서 사용될 수 있는 로켓을 비밀리에 러시아를 위해 만들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우리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픈소사이어티 재단의 세라 마곤 미 외교정책 책임자는 "미국의 동맹국이 노골적인 전쟁범죄를 저지른 러시아 정부에 로켓을 의도적으로 판매·전달한다는 게 사실이라면, 전 세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자국이 이집트 안보 지원을 지속해야 하는지에 의문이 제기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미국 측은 러시아가 이란과 북한 등 반미 국가들로부터 전쟁 무기를 공급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10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로버트 우드 유엔주재 미국 부대사는 "우리는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군수품을 추가로 획득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며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직접 위반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러시아가 필요한 무기와 맞바꾸는 대가로 북한 측에 식량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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