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 더 극적... 캐롯, 논란 딛고 '기적의 4강행'

이준목 2023. 4. 11. 11: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악재 극복하고 이뤄낸 결과... 4강에서 정규리그 1위 안양 KGC 인삼공사 상대

[이준목 기자]

▲ 캐롯, 4강 진출 환호 10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울산 현대모비스와 고양 캐롯의 5차전에서 승리한 캐롯 선수들이 경기 종료 후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생 구단-전력 열세-구단 매각-임금 체불-PO 박탈 위기-에이스의 부상, 사실상 안되는 게 당연해보이는 모든 악조건들을 보유하고도 이를 모두 극복해냈다. 심지어 플레이오프에서는 시리즈 역전승에 업셋까지 더하며 기적의 4강행을 완성했다. 때로는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4월 10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에서 캐롯이 울산 현대모비스를 77-71로 제압했다. 시리즈 전적 3승 2패를 기록한 캐롯은 4강에서 정규리그 1위 안양 KGC 인삼공사를 만나게 된다.

올시즌 개막전만 해도 캐롯이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캐롯의 운영주체인 데이원스포츠는 대우조선해양건설을 모기업으로 하는 법인으로, 2022년 고양 오리온 농구단을 인수해 재창단했다. 신생구단인 캐롯은 객관적인 전력상 약체로 예상되었고 사령탑 김승기 감독도 '3년 내 우승'을 목표로 제시하며 올시즌은 성적보다 경험과 성장에 더 무게를 뒀다.

막상 뚜껑을 열자 캐롯은 강했다. 특유의 '양궁농구'와 끈끈한 수비력을 앞세워 정규시즌 28승 26패로 5할 승률(.519)을 넘기며 5위로 당당히 창단 첫해 PO 진출 티켓을 거머쥐는 저력을 발휘했다.

슈터 전성현은 압도적인 3점슛 페이스로 시즌 중반까지 유력한 MVP 후보로 거론될만큼 팀을 하드캐리했고, 2년 차 이정현은 올스타급 선수로 성장했다. 캐롯은 리바운드 최하위(34.4개)라는 높이의 열세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3점슛 최다성공 1위(11.5개)-최소 실책(8.7개)이라는 슈팅과 조직력을 앞세워 '골밑이 강해야 이긴다'는 KBL의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위기상황에서 반전 드라마 쓴 캐롯
 
▲ 환호하는 이정현 10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울산 현대모비스와 고양 캐롯의 5차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캐롯 이정현이 승리를 확신하는 듯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캐롯의 발목을 잡은 진짜 걸림돌은 상대팀이 아니라 바로 구단 내부에 있었다. 이미 창단 초기부터 재정 불안 의혹에 시달리며 우려를 자아냈던 캐롯은, 최근 모기업 대우조선해양의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선수단과 프런트 급여 체불-오리온 인수대금과 KBL 가입비 미납 사태 등이 이어지며 위기에 몰렸다. 팬들의 여론도 캐롯이 프로농구를 파행으로 몰아가는 '미운 개구리'가 되었다며 이미지가 급격히 악화됐다.

결국 KBL은 기한 내에 가입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PO 출전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캐롯의 PO 출전이 불발되면 정규시즌 7위팀이 대신 출전자격을 얻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캐롯은 마감일 하루 전에 가입금 잔여분을 완납하여 극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출전할 수 있게 되면서 파행은 면했다.

6강플레이오프를 앞두고도 악재는 이어졌다. 상대인 4위 울산 현대모비스에는 정규시즌 상대 전적 5승 1패로 우위를 점했으나, 에이스인 전성현이 정규시즌 막바지부터 악화된 돌발성 난청 증세로 인하여 정상적인 경기출전이 불가능해지며 전력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캐롯은 1~3차전에서 무기력하게 완패하며 1승 2패로 벼랑 끝에 몰렸다. 역대 6강플레이오프에서 3차전까지 우세를 선점한 팀의 4강 진출 확률은 무려 70%에 이르렀다.

하지만 캐롯은 위기상황에서 또 한 번의 반전을 이뤄냈다. 로슨은 6강 PO 시리즈 후반부로 갈수록 현대모비스 게이지 프림과의 맞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며 4차전 35점 17리바운드, 5차전 30점 13리바운드 7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전성현의 공백을 메운 이정현은 시리즈 평균 24점으로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어엿한 에이스로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4차전부터 복귀한 전성현은 여전히 몸상태가 완전치 않은 상황에서도 중요한 순간마다 한 방을 터뜨리며 '클러치슈터'의 면모를 과시했다. 선수단의 투혼을 앞세워 캐롯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4, 5차전을 내리 잡아내며 KBL 플레이오프 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이변의 업셋을 완성했다.

그간 KBL 역사에서 기적의 4강행을 이뤄낸 대표적인 사례로는 2001-2002시즌의 여수 코리아텐더(현 수원 KT), 2014-2015시즌의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정도가 있다. 코리아텐더는 재정난과 구단 매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환경에서 지금의 캐롯과 자주 비교된다. 전자랜드는 플레이오프 막차인 6위로 합류했지만 단기전에서 명승부 끝에 역대 최다인 무려 12경기 승차를 극복하고 3위 서울 SK에 3-0 스윕승을 거두는 감동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캐롯의 4강신화는 어쩌면 코리아텐더-전자랜드의 사례보다도 더 극적이다. 코리아텐더는 구단은 어려웠지만 최소한 급여도 체불될 정도는 아니었고 PO 출전 자격을 놓고 마음을 졸이지도 않았다. 전자랜드는 플레이오프에서는 별다른 전력누수 없이 최상의 전력으로 임했다.
 
▲ 지시하는 김승기 감독 10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울산 현대모비스와 고양 캐롯의 5차전에서 캐롯 김승기 감독이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농구 역사상 6강 플레이오프 5차전은 총 9번이 있었고 이 가운데 하위 시드 팀이 승리한 경우는 단 2번에 불과했다. 심지어 1차전을 내주고 시리즈를 잡은 사례는 50번 중 단 3번으로 확률은 약 6%까지 떨어진다. 캐롯은 모든 면에서 가장 극악의 조건과 난이도를 극복하고 업셋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프로농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썼다. 만일 캐롯이 가입비를 내지 못 하여 플레이오프에 올라오지 못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면 절대 볼 수 없었을 극적인 드라마다.

김승기 감독은 신생구단 캐롯을 창단 첫해부터 플레이오프로 이끈 데 이어 시리즈 업셋과 4강 진출로 다시 한번 지도력을 증명했다. 이미 KBL 감독 플레이오프 승률 1위(66.7%)였던 김 감독은 이번 승리로 통산 성적 34승 17패를 기록했고, 시리즈 전적으로 치면 10승 3패를 기록하며 승률을 무려 76.9%로 끌어올렸다.

또한 캐롯과 김승기 감독이 앞으로 만들어갈 '스토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4강에서 만나게된 안양 KGC 인삼공사는 김승기 감독과 에이스 전성현이 지난 시즌까지 몸담았던 구단이다

김 감독은 KGC에 두 번이나 우승을 안기며 왕조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한 구단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다. 하지만 지난해 캐롯으로 옮긴 이후로는 KGC 시절 구단의 지원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며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디스'를 한 바 있고, 이로 인하여 KBL에 경고까지 받으며 불편한 관계로 돌아섰다.

KGC는 김승기 감독과 전성현 없이도 올시즌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일궈내며 돌풍을 일으켰다. 정규시즌 상대 전적에서도 KGC가 캐롯에 4승 2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아는 KGC와 김승기 감독인만큼 피차 미묘할 수밖에 없는 흥미로운 대결이다. 하마터면 PO 출전조차 못 할 뻔했던 캐롯은 이제 올해 플레이오프의 화제성을 주도하는 백조이자 진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올라섰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