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마리 앙투아네트 | “중국 황제가 보내온 재스민 꽃차예요” 한 땀 한 땀 장인이 눌러 만든 공예차

김소연 매경이코노미 기자(sky6592@mk.co.kr) 2023. 4. 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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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마리 앙투아네트>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죠.”

이 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그녀. 가장 유명한 프랑스 왕비, 루이 16세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다. 사실 이 문장은 역사상 가장 새빨간 가짜뉴스 중 하나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외국 출신 왕비를 모략하고 음해하는 일이 많았다고. 비난을 퍼부을 희생양으로 프랑스 물정에 밝지 않고 철없어 보이는 외국 출신 왕비가 ‘딱’ 걸린 셈이다. 커스틴 던스트가 마리 앙투아네트로 열연한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도 그런 내용이 가감 없이 그려져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175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황제 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에서 열다섯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의 장녀 마리아 테레지아는 왕가의 유일한 상속자였다. 그러나 여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될 수 없었기에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프란츠 슈테판이 명목상의 황제로 즉위했다. 물론 마리아 테레지아가 실권을 쥔 사실상의 통치자였고 마리아 테레지아는 전성기에 비해 한참 쇠약해졌던 오스트리아 국가 개혁에 성공해 지금까지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국모’로 불린다.

프랑스에서 빈으로 유학 온 9살 연상 프란츠 공에 한눈에 반해 연애결혼을 한 마리아는 그러나 자신의 자녀들은 줄줄이 오스트리아를 위해 정략결혼을 시켰다. 특히 프랑스와의 불화를 종식시키기 위해 프랑스 부르봉 왕가 이사벨라 공주를 며느리로 삼았는가 하면, 막내딸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의 아내로 보냈다.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는 바로 그날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눈에도 고급스럽게 꾸며진 침대에서 세상 걱정 하나 없이 잠들어 있는 금발 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막 잠에서 깨어 아직 제대로 정신도 차리지 못한 그녀에게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로 가라는 명이 떨어진다.

물을 부으면 화려한 꽃이 피어나는 ‘공예차’
녹차나 백차 위에 꽃잎 올려 묶은 후 쪄서 만들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국경에서 “프랑스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가져갈 수 없다”며 애완견마저 빼앗기고 오스트리아 공주에서 프랑스 왕비로 재탄생하는 그녀. 베르사유 궁전에 들어서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사람들은 수군댄다.
“저 촌뜨기 오스트리아 공주가 프랑스 왕궁에서 얼마나 버텨낼 수 있겠어?”

엄청나게 내성적인 남편 루이 16세는 아내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하고, 베르사유 궁전의 예법은 숨이 막힌다. 그뿐인가. 아들을 낳으라는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엄마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랑스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를 통해 수시로 편지를 보내는데 매번 내용은 “네가 아들을 낳아야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관계가 견고해지고… 블라블라…”다. 그럼에도 마리 앙투와네트가 오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자 마리아 테레지아는 급기야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아들 요제프를 마리아에게 보낸다. “네가 아들을 낳아야… 블라블라…” 오빠를 반가워하는 동생에게 오빠가 하는 말도 역시 다를 바 없다.

요제프가 도착한 날 환영 파티에서 마리는 요제프에게 차를 한잔 권한다.

“중국 황제가 보낸 차예요. 꽃을 잘 보세요. 재스민이에요.”

앙투아네트가 오빠에게 대접한 차는 ‘꽃을 피우는 차’다. 동그랗게 말려있다 물을 부으면 화려한 꽃이 피어난다고 해서 ‘공예차’라고도 한다. 중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분은 ‘공예차’에 친숙할 수 있겠다. 중국 면세점에 가장 많이 깔려있는 차가 용정차, 보이차, 재스민차, 공예차 등이니. 차에 별반 관심이 없는 사람도 중국 공항에서 “그래도 중국에 왔는데 선물용으로라도 차 하나 사가야 하지 않을까?” 하며 가장 쉽게 손에 잡는 게 바로 공예차이기도 하다. 꽃 핀 모습이 워낙 화려해 선물용으로 ‘딱’이기 때문이다.

공처럼 동그란 공예차는 어떻게 만들까?

우선 찻잎 여러 장을 모아 밑동을 꽉 잡는다. 찻잎이 펼쳐진 위에 말린 꽃을 올리고 전체를 실로 가볍게 묶는다. 이후 증기로 쪄서 말리면 실을 풀어내도 동그란 형태가 유지된다. 이 동그란 차를 뜨거운 물에 퐁당 빠트리면 차가 물에 젖어 풀어지면서 찻잎 속에 숨겨져 있던 꽃이 피어나는 원리다.

꽃을 감싸는 찻잎은 주로 백차나 녹차를 쓴다. ‘현미녹차’ ‘우전’ ‘세작’으로 유명한 녹차는 알겠는데 백차는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분이 대부분일 터. 백차는 6대 다류(찻잎으로 만든 6가지 다류. 보통 백차, 녹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로 구분한다.) 중 가장 가공을 하지 않는 차다. 열을 가해 덖거나 비비기를 하지 않고 시들게만 한 후 그대로 건조시켜 만든다.

‘1년 묵은 백차는 차, 3년 묵은 백차는 약, 7년 묵은 백차는 보물.’

차 세계에서 가장 흔하게 들리는 문구 중 하나다. 약을 넘어 보물이라고? 백차가 그렇게 대단한 차라고?

가장 비싸고 귀한 차의 대명사는 백차가 아닌, 보이차다. 보이차는 중국에서 투자 상품으로 여겨진다. 보이차 거래소인 ‘동허’에서는 주식처럼 매일 변하는 보이차 종류별 시세를 볼 수 있다. 내가 10만원에 산 보이차 A의 시세가 200만원이 거꾸로 80만원에 구입한 보이차 B의 시세가 50만원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거래소가 있는 만큼 환금성이 높은 보이차는 중국에서 선물을 넘어 뇌물용으로도 많이 활용됐다. 시진핑 정부가 이를 딱 겨냥했다. 시진핑은 중국 국가주석으로 취임하자마자 부패를 척결한다며 ‘공적비용 절감 3대 원칙’을 실시했다. 이와 관련 고급 차관 출입 자제, 보이차 선물 지양 등을 꼬집어 말했다.

이후 보이차 시장이 싸늘하게 얼어붙으면서 반사이익을 본 것이 백차다. 중국 차 관계자들이 보이차 대신 백차를 밀기 시작했고 그렇게 백차의 시장점유율이 올라갔다. 당연히 백차 생산량도 급증했다. 2012년도와 2020년을 비교하면, 중국 차엽 총 생산량이 179만t에서 298.6만t으로 1.7배 늘어나는 동안 백차 생산량은 1.02만t에서 7.35만t으로 약 7.2배나 증가했다.

공예 꽃차를 넣고 100℃ 뜨거운 물을 부으면 2~3분에 걸쳐 꽃이 피어나는 과정이 펼쳐진다. 사진은 백합 공예 꽃차. 금잔화·카네이션·국화 등 다양한 꽃을 넣어 만든다.
시중에서 백차를 자주 볼 수 있게 되면서 ‘1년 묵은 백차는 차, 3년 묵은 백차는 약, 7년 묵은 백차는 보물(일년차 삼년약 칠년보(一年茶 三年藥 七年寶)’이라는 문장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백차를 띄우기 위한 마케팅 문구 정도로 이해한다. 보물까지는 애매하지만, ‘약’이라는 게 아예 없는 말은 아니다.

백차는 6대 다류 중 유일하게 열을 가열해 덖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차의 차가운 성질이 그대로 남아있어, 뜨거운 물에도 우려 마시지만 주로 여름에 냉침(찻잎을 차가운 물에 한나절가량 넣어두었다 마시는 것)해서 마신다. 냉침한 백차는 특히 열 날 때 열을 내려주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이름이 나 있다. 중국에서는 홍역이나 감기에 걸린 어린아이의 해열에 항생제를 먹이는 대신 백차를 마시게 한다. 말 그대로 “해열제가 없으면 백차를 마시면 되죠”다.

그뿐인가. 백차에는 폴리페놀의 일종인 카테킨이 6대 다류 중 가장 많이 들어있다. 폴리페놀에는 항산화 성분이 많다. 당연히 백차는 6대 다류 중 항산화력이 가장 강하다. ‘커피 대신 차를 마시면 노화가 늦게 온다’는 말도 있는데 거기에 가장 적합한 차가 바로 백차인 셈이다. 수백 가지 종류가 있는 녹차와 달리 백차는 몇 가지 없다. 크게 백호은침·백모단·공미·수미 정도로 나뉜다.

백차 중에서도 최고봉 어린 싹으로 만든 ‘백호은침’
하얀 솜털이 송송해서 ‘백호’ 뾰족뾰족해서 ‘은침’
백차 중에서도 최고봉인 ‘백호은침(白毫銀針)’은 어린 싹으로 만드는데 어린 싹은 보통 솜털로 덮여 있다. 백호은침이라는 이름 또한 솜털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얀 솜털이 송송하다 하여 白毫요, 은빛 바늘과 같이 뾰족하다고 해서 銀針이다. 차의 가격을 높이는 요인 중 한 가지가 바로 싹으로 만들었는가다. 당연히 싹으로 만든 백호은침은 백차 중 최고 가격을 자랑한다.

백모단(白牡丹)은 잎과 싹을 섞어 만든다. 수미와 공미는 백호은침과 백모단을 고르고 남은 잎으로 만든다. 예전 백성들이 마시던 수미차를 맛본 황제가 호평을 했다나. 이후 백성들이 수미 중에서도 고급품을 황제에게 바치기 시작했고 그래서 ‘공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공물’ 등에 쓰이는 단어 ‘공(貢)’은 ‘바친다’는 의미다.

재스민차는 녹차에 재스민 꽃을 섞어 재스민 꽃 향기를 입히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을 ‘음화’라고 한다.
다시 공예차 얘기로. 공예차는 녹차나 백차에 말린 꽃을 올려 만든 차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의미의 꽃차는 어떤 차가 있을까. 중국의 대표적인 꽃차는 재스민차다. 중국 식당에 가면 늘 가장 먼저 내어주는 바로 그 차다. 2020년 기준 중국 전체 차 생산량의 3.8%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스민차는 국화차, 매화차처럼 재스민 꽃으로 만든 차가 아니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재스민 향을 입힌 녹차다. 녹차에 재스민 꽃을 섞어 재스민 향을 입힌다. 이렇게 향을 입히는 과정을 ‘음화’라 한다. 재스민 향이 거의 다 빠지면 꽃을 걷어낸 후 다시 새로운 재스민 꽃을 섞는다. (찻잎만 빠지고 꽃은 걸러지지 않는 크기의 채로 거른다.)

고급 재스민차는 이 같은 음화 과정을 7~8번 거쳐 만들어진다. 수많은 음화 과정을 거쳤음에도 고급 재스민차보다 저렴한 재스민차에서 재스민 꽃 향이 더욱 강렬하게 날 때가 많다. 저렴한 재스민차는 재스민 꽃 향기를 스며들게 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 재스민 향을 가향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재스민차 베이스로 백차를 쓰기도 한다. ‘말리은침왕(茉莉銀針王·茉莉花는 재스민의 한자)’이라는 차가 있는데 백호은침을 베이스로 만든 재스민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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