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캐릭터탐구㉟] 브레이킹 배드 월터와 제시 ➁감성적 ‘핑크맨’
[홍종선의 캐릭터탐구㉟] 브레이킹 배드 월터 VS 제시 ➀이성적 ‘화이트’…에 이이서
그런 ‘이성적’ 월터 화이트와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 제시 핑크맨(아론 폴 분)이다. 제시는 매우 감성적 또는 감상적 인물이다. 이성적 인물의 성씨에 하얀색을, 감성적 인물에 분홍색을 부여한 것에서 둘의 대조가 극명하다.
제시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마음이 여려서 사고도 치고, 사고 친 자신을 자책하다 그것이 다시 사고로 이어진다. 나쁜 짓은 하지만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쓴다, 여자와 특히 아이는 보호하려 한다. 그러나 아이를 해하는 자가 있다면 자신의 모든 걸 던져서라도 그를 처단하려 한다.
잠시 거침과 강함이 보이는 듯하지만, 여전히 겁이 많아서 동물 우리와도 같은 곳에 갇혀 노예 생활을 견딘다. 남의 말도 잘 믿고 귀가 얇아서 번번이 속아 넘어가고 이용당한다. 이용당한 걸 알면 분노에 들끓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나를 해한 놈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놈에게 겁먹거나, 더 중요하게는 그놈의 말과 행동에 감정적으로 공감이 되면.
제시는 기본적으로 공감 능력이 크다.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었으나 잘못을 저질렀다. 부모의 실망을 너무 잘 읽어 ‘에이, 부모님인데, 설마’ 하며 비비고 들어가지 못한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했고 새출발하고 싶었지만, 마약 하는 습성으로 함께 망친다. 살아남은 제시는 연인이 죽어가는 순간 뭣 모르고 잠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 자책의 극을 달리고, 자신을 더 망쳐가는 것으로 스스로 벌한다. 한 여자에게 약을 팔려다 아이가 있음을 알고 죄의식과 책임감을 느낀 제시는 모자를 가난으로부터 구해 주려 하지만, 정작 아이에게서 엄마를 뺏는 가장 위험한 인물은 자신이다.
제시는 늘 혼돈에 빠져 있다. 선과 악, 여린 심성과 불법적 행동의 양극단을 오가며 괴로워한다. 착하게 살려는데 인생은 점점 악랄해지고, 선을 지키며 살고 싶은데 선 넘는 악당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인생이 낸 문제, ‘감성적’ 제시는 답을 택하지 않고 각 보기의 사이를 헤매기만 하는 것으로 ‘이성적’ 월터의 눈에는 보일 것이다. 적어도 월터는 답을 고른다, 정답이 아니더라도 최선의 답을 구한다. 그리고 실행한다.
월터의 눈에 제시는 한없이 우유부단하고, 감성이라는 문 뒤에 숨으려는 철없는 아이로 보일 것이다. 제시의 눈에 월터는 지독히 이기적이고, 이성이라는 ‘경마용 눈가리개’로 세상의 진실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리한 어른으로 보일 것이다.
감성과 공감은 내다 버리고 점점 자기합리화의 괴물이 되어가는 월터에 비해 그나마 소년의 감수성을 잃지 않은 제시는 좋은 사람일까. 제시는 그렇게 믿고 싶다, 원치 않은 일이 벌어지면 남 탓을 하고 싶고, 자신은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 그래서 아이를 죽인 인간을 죽이려 하고, 마약으로 번 돈을 길거리에 버리려 한다. 월터는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지만, 제시에게는 자신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느끼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 나는 누구에 가까울까. 한쪽을 고르기 어렵다. 사람이 이성적이기만 하거나 감성적이기만 할 수는 없다.
별다른 감정의 미동 없이 악행을 주도하고 실행하는 월터에게도 피도 눈물도 있다. 값싼 감수성에 휘둘려 남을 망치고 나를 망치는 제시에게도 판단력이 있다. 장기적 안목으로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월터도 자기가 판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앞뒤 가리지 않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제시에게도 일관된 원칙이 있다.
비중의 차이다. 월터가 좀 더 이성적이고, 제시가 좀 더 감성적일 뿐이다. 이성적 월터가 우월한 것도 아니고, 감성만으로 좋은 사람이 되지도 않는다.
드라마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브레이킹 배드: 엘 카미노’까지 보고 나면, 빈스 길리건 감독은 그래도 ‘머리보다 마음’이라고 이야기의 결말로 얘기하는 듯하다. 머리가 시키는 일보다 마음이 하는 말을 따라간 제시에게 내일이 있다.
빈스 길리건은 1990년대를 풍미한, 한국인에게도 크게 사랑받은 미국 드라마 ‘엑스파일’의 각본가이자 제작자로 ‘브레이킹 배드’ 시리즈를 기획하고 공동 집필·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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