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 사흘만에 법무부가 반기...美사회 뒤흔드는 '낙태약'
여성들이 23년간 광범위하게 써온 경구용 낙태약(임신중절약) 사용을 미국 연방 법원이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미국 정부는 10일(현지시간)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미 법무부는 텍사스주 연방법원의 낙태약 미페프리스톤에 대한 FDA 승인 취소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항소장을 이날 제5 순회항소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슈 중 하나인 낙태권을 둘러싼 논쟁은 보수와 진보 진영 간 이념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이 1973년 이래 유지돼 온 전국 단위의 낙태권 보장 판례를 깬 뒤 각 주가 낙태 금지 여부를 정할 수 있게 되면서 50주 중 12주가 낙태를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낙태가 금지된 주에 사는 여성들도 암암리에 미페프리스톤을 배송받아 쓰면서 수요가 급증하자 보수와 진보 진영 낙태 논쟁의 새로운 이슈는 이 약이 됐다. 지난 1월 바이든 정부의 낙태권 보장 방침에 따라 FDA가 일반 소매 약국에서 미페프리스톤 판매를 허용하자, 2월 공화당 성향 주 정부들이 약국 체인에서 이 약의 판매를 막고 FDA 승인을 취소하는 소송을 냈다. 민주당 성향 주 정부들은 이에 맞서는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매슈 캑스머릭 텍사스주 연방법원 판사는 지난 7일 미페프리스톤에 대해 FDA 승인을 취소하는 명령을 내렸다. “FDA가 23년 전 약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미 법무부는 이 법원 명령이 내려진 지 사흘 만에 낸 항소장에서 “기이하고 전례 없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또 “법원의 결정이 FDA의 권위를 약화하고 미페프리스톤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에게 심각한 해를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텍사스 법원의 결정에 성명을 내고 “여성의 자유를 박탈하고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라며 “이 결정을 뒤집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잇따른 낙태 규제에 대항하는 여성들과 중도·진보층의 반감이 내년 대선을 좌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텍사스주에서 미페프리스톤 승인 취소 결정이 내려진 것과 같은 날 진보 성향의 토머스 라이스 워싱턴주 연방법원 판사는 워싱턴DC 등 17개 주가 제기한 별도 소송에서 FDA가 미페프리스톤에 대한 사용 승인을 변경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10주(70일)까지 사용하는 약물로, 미전역의 연간 낙태 건수(약 100만건)의 절반 이상에 사용된다. 원격 처방을 받아 통신판매 약국에서 우편으로 받거나, 일반 동네 약국에서도 탈 수 있다.
CNBC에 따르면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200명의 미국 제약사 임원들은 미페프리스톤 승인 취소와 관련해 “법원이 과학이나 증거 또는 신약의 안전성과 효능을 완전히 검증하는 데 필요한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수민 기자 lee.sumi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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