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폭탄에 기름 붓는 정치 참담"…오영환 '배지' 뗄 결심 왜
“주위에선 ‘배지’를 달면 달라질 것이라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4년 뒤에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이 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소방관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오영환(35·경기 의정부시갑) 의원이 1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4·10 총선을 정확히 1년 남겨둔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제 저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던 저의 사명, 제가 있던 곳이자 제가 있어야 할 곳인 국민의 곁을 지키는 소방관으로 돌아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역 지역구 초선 의원으로선 첫 불출마 선언이다.
오 의원은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1월 민주당에 인재영입돼 경기 의정부갑에 전략공천됐다. 당선 당시 나이 32세로 21대 국회 지역구 당선자로는 최연소였다.
Q : -기자회견에서 국회 입성 이후 순직한 소방관 10명의 이름을 불렀는데.
A : “소방관으로서 마지막 임무는 중앙119구조본부 소속 항공대원으로서 독도 앞바다에 추락한 동료 소방항공대원을 수색하는 일이었다. 늘 한발 늦은 정치 환경에서 선제적으로 법과 제도 개선에 앞장서겠다는 다짐으로 (정치권에) 들어왔다. 그러나 모든 죽음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고, 현장을 떠나 있는 나 자신을 내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Q : -가연성 건축자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건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A : “그 법이 2021년 2월 통과됐을 때가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다. 관련 법이 시행되기 전에 지어진 냉동 물류창고에서 지난해 1월 화재가 발생해 3명의 소방관이 순직한 것도 저로선 잊을 수가 없다. 진작 이 법이 만들어져 위험한 물질을 쓰지 못하게 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희생이니까….”
지난달 6일 전북 김제에서 화재 진압을 하던 30대 소방관의 순직이 그로선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현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라고 한다. 오 의원은 “이틀 전인 4일에 22년전 서울 홍제동에서 주택 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에 진입했다가 순직한 6명의 소방관을 기르는 추모식이 있었다”며 “22년 전과 똑같은 원인으로 젊은 소방관이 희생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 혼자 (현장을) 떠나 있을 자신이 없음을 결정적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오 의원은 ‘초선 오적’으로 불리며 민주당의 강성지지층으로부터 문자폭탄 공세를 받기도 했다. 2021년 4·7 재·보궐 선거 직후 다른 초선들과 함께 민주당의 참패 원인으로 '조국 사태' 등을 지목해서다. 대선 경선에선 이낙연 후보의 수행실장을 지내 ‘수박’으로 분류됐다.
Q : -문자폭탄 등 강성 팬덤 정치가 불출마에 영향을 미쳤나.
A : “과도하게 비난을 퍼붓는 당원에게 문제가 있지만,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 환경을 방치하고, 오히려 그걸 부추기면서 정치에 활용한 정치인이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양극화된 정치, 상대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정치 환경의 책임이 크다. 저 또한 그 책임을 공유한다. 그런 것(팬덤정치)이 불출마 결심의 이유가 된 것은 아니다. 다만 문자폭탄을 이용하는 정치인이나 그런 것에 영향받고 해야 할 말을 못 하는 정치인도 문제가 있다.”
Q : -여의도에서 겪은 현실 정치는 어땠나.
A : “최근 몇 년 사이에 상식이 사라졌다. 정부도 국회도 국민 앞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분이 많다. 문제를 지적하면 지적하는 자를 공격하면서 오히려 우리 편을 비호하고 뻔뻔하게 변명하는 정치 문화가 참담하다.”
오 의원은 불출마 결심과 관련해 “고민의 시작과 끝에 항상 가족이 있었다”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암벽 여제’로 불리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씨가 아내다. 오 의원은 “제가 힘들 때 곁에서 위로해주고 전적으로 제 선택을 존중해줬다”며 “이번에도 제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해줬다”고 밝혔다.
오 의원은 남은 1년 동안의 의정활동을 마친 뒤 소방공무원 시험을 다시 준비할 예정이다. 40세까진 지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 의원은 “많은 이들이 실패하고 떨어지는 어려운 시험인 것 또한 사실”이라면서도 “최대한 빨리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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