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포탄지원 유출, 한국엔 심각…러시아엔 기막힌 타이밍"
우크라이나 전쟁 전황과 동맹국 감청 내용 등이 담긴 미국 정부의 기밀문건이 온라인에 유포된 것과 관련, 유출된 문건 상당수가 '최신 정보'를 담고 있어 미 정부의 피해가 예상보다 더 심각할 것이란 외신 분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이번 기밀문건 유출 논란이 과거와 다른 점으로 '매우 시기적절한(timely) 정보'가 있다는 점을 꼽으며 이같이 보도했다. 과거 사례로는 '2010년 위키리크스 폭로'와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를 들어 비교했다.
미국의 기밀문건이 대규모로 전 세계에 유포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2010년 사건은, 위키리크스(wikiLeaks, 기밀·비리 폭로사이트)가 이라크 전쟁 문서, 미 국무부의 외교전문(외교정보 전자문서) 등을 폭로한 일을 말한다. 북한 붕괴와 이란 핵 개발에 대비한 계획부터 미 정부가 동맹국을 감시한 정황, UN(유엔) 직원의 신체정보를 수집했단 사실까지 드러나 세계가 경악했다.
2013년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이던 스노든이 언론에 유출한 NSA 문서에는 미 정부가 비밀 정보수집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인의 개인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동맹국 정부를 도청했단 사실과 함께 미국이 중국의 기간통신망을 해킹했단 사실 등이 담겨 있어 미 정부가 홍역을 치러야 했다. 문건 20만 여 건을 유출해 '반역자'로 찍힌 그는 그해 러시아로 망명했다.
그렇다면 이번 유출 사건이 앞의 두 사례와 다른 점은 무얼까. NYT는 "이번에 유출된 100쪽가량의 문건은 위키리크스나 스노든이 폭로한 것에 비해 양도 적고 다루는 범위도 좁지만, 이전과 달리 최신 정보란 점에서 매우 치명적"이라고 짚었다. 백악관과 국방부의 우려가 매우 큰 이유도 이런 '타이밍' 때문이란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이 나눈 대화가 담긴 문건을 꼽았다. 지난 3월 초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건에는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 최고위 당국자들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지원하는 문제를 두고 고심하는 내용이 담겼다.
NYT는 "이번 봄 우크라이나의 반격에 절실히 필요한 탄약 33만 발을 제공하려 했던 한국의 '비밀 계획'과 관련된 매우 민감한 자료가 겨우 40일 만에 공개됐다"고 설명했다. 포탄 지원은 한국에서 매우 심각한 안건인데, 문건 유출로 한국 정부가 움직일 여지가 좁아졌단 지적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황을 담은 전쟁 관련 극비 자료 일부도 작성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다음 달 우크라이나에 방공시스템을 투입할 장소를 적시한 자료는 "현재 러시아군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라는 게 NYT의 분석이다. 러시아 측엔 '기막힌 타이밍'인 셈이다.
정보를 어떻게 얻었는지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유출됐단 점도 문제다. 미국 싱크탱크 실버라도 폴리시 액셀레이터를 설립한 드미트리 알페로비치는 "러시아 정부는 이 문건들을 이용해 미국 정부가 러시아 군사 정보기관의 계획과 군부대의 움직임을 어떻게 수집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태생의 알페로비치는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저명한 인사다.
이번 문건 유출로 미 정부가 입을 피해는 어느 정도일까. 이 역시 과거 사례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가령 위키리크스 폭로 이후 많은 국가의 외교관들이 감청 등을 의식해 자기 검열을 일상화하게 됐고, 이는 미 정부가 외교적으로 간접적 손해를 본 것이라는 게 NYT의 설명이다.
신문은 또 "스노든의 폭로 이후 NSA는 수억 달러를 들여 정보수집 프로그램을 수정해야 했으며, 10년이 지난 지금도 문건 유출로 인한 피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 기억속 교생 선생님은..." 김건희 옛 제자가 편지 보낸 사연 | 중앙일보
- 소년에게 입 맞춘 뒤 혀 내밀며 부적절 언행…달라이라마 사과 | 중앙일보
- 여성은 19세, 남성은 40세부터 늙는다…AI가 찾아낸 ‘현대판 불로초’ | 중앙일보
- 둘째 낳으면 더 준다?…100만원 넘는 연금, 남 55만명 여 2만명 | 중앙일보
- 피자보다 싼 마약에 피싱 섞었다...경찰도 놀란 '무서운 콜라보' | 중앙일보
- "문자폭탄에 기름 붓는 정치 참담"…오영환 '배지' 뗄 결심 왜 | 중앙일보
- [단독] "미, 북 ICBM 발사 보름 전에 알았다…시긴트로 파악" | 중앙일보
- 밥값 깎아 MZ마음 잡을까…여야 불 타는 '1000원 아침밥' 경쟁 | 중앙일보
- "1시간 160회 구타" 층간소음 이웃 때려 숨지게한 전 씨름선수 실형 | 중앙일보
- 송파 헬리오시티까지…곳곳이 비었다 '아파트 상가' 굴욕 왜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