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선거제 개편, 국민이 주시하고 있다
외환위기 고통 분담 여론 때문
여당 대표 30명 감축론 뭉갤 일 아냐…
정치 불신과 경기 침체 등에 특권 포기 필요해
전원위에서는 비례성 강화 및 지역구도 완화 대안 도출해야
기득권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 개혁 좌초나 꼼수 개편은 안돼
대표적 기득권 집단인 국회가 국회의원 정수를 줄인 적이 딱 한 번 있다. 2000년 4월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299석이던 의석수를 273석으로 26석 감축했다.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4년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들어가 있을 때였다. 정치권도 외환위기의 책임을 지고 국민적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됐기 때문이다. 98년 3월 야당인 한나라당이 205석으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가 250석으로 줄이겠다고 공언까지 했다가 총선을 코앞에 둔 2000년 1월 여야 모두 이를 백지화하는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여론이 악화되면서 26석 감축으로 결론이 났다. 물론 4년 뒤 국회의원 정수가 299석으로 원위치됐지만 말이다. 그러다 세종시가 생기면서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1석 늘어나 지금의 300석(지역구 253석, 비례 47석)이 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주 불쑥 의원수 최소 30명 감축론을 들고 나와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고 있으나 그렇다 해도 그냥 깔아뭉갤 일은 아니다. 사실 당 지도부의 잇단 설화 등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국면 전환을 노린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의원수 축소의 필요성이 없는 건 아니다. 민생은 내팽개치고 싸움만 벌이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워낙 크다. 미증유의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파고 등으로 경기 침체도 길어지고 있다. 인구 절벽으로 유권자도 가파르게 감소할 게 뻔하다. 국민의 절반 이상(57%)이 의원수를 줄여야 하다는 여론조사 결과(한국갤럽)는 민심을 함축한다. 더불어민주당이 감축론에 대해 전략적 꼼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는데 이게 이렇게 반대할 사안인지 의문이다. 민주당이야말로 반대 이유가 뭔지 국민 앞에 명쾌하게 제시해보라. 오히려 기득권에 집착한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국가적 어려움을 나누는 데 정치권도 동참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누리는 과도한 특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면 아예 의원수를 줄여라. 최근 독일 연방의회가 현재 736석인 의석수를 630석으로 줄인 것을 보고도 느끼는 바가 없는가. 그럼에도 우리 국회의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자기 밥그릇 키우기에 능해 당초 의석수를 300석에서 350석으로 50석 늘리는 내용의 선거제 개편안을 마련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고 물러섰는데 그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어제부터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 개편안을 놓고 난상토론에 들어갔다. 13일까지 나흘간 열리는 전원위에서 정치개혁특위가 마련한 3가지 안을 중심으로 여야 의원 100명이 토론에 참여한다. ①대도시 지역구에서 3∼5명, 농어촌에선 1명을 선출하는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여당 제안) ②지역구에서 1명을 뽑는 현행 유지의 소선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③정당과 후보자에게 모두 투표해 지역구에서 4∼7명을 선출하는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이상 야당 제안)가 그것이다. 각각의 안마다 장단점이 있는데다 정당별 입장이 다르고 국회의원 개개인의 이해관계도 엇갈려 합의점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겠다.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최적의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 현행 소선구제는 승자독식으로 과도한 사표를 양산해 정당 득표율과 실제 의석수 간 괴리를 초래해 문제가 많았다. 사생결단의 대결 정치와 거대 양당의 지역 독점 구조라는 폐단을 낳고, 소수 정당엔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았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고 지역주의 구도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모범 답안을 구해나가야 한다. 21대 총선 때 꼼수로 등장한 위성정당 방지 장치를 제도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복잡하다. 그렇기에 주요 원칙부터 정하라. 핵심은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비례대표제 확대 여부다. 비례대표를 늘리려면 지역구는 그에 상응해 축소해야 한다.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중대선거구제로 변경하려면 거대 양당의 나눠먹기 복수 공천을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 여기에 의원수 감축까지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게 국회의원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혹여 거대 양당이 당리당략을 앞세워 개혁을 좌초시키거나 야합을 통해 꼼수 개편안을 내놓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되겠다. 이번 전원위에서 고차방정식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반드시 찾아내기 바란다. 국민이 의원들의 발언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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