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기요금 현실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2020년부터 유행한 대규모 감염병과 뒤이어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특히 에너지부문에서는 공급망 경색으로 에너지 수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서 급격하게 가격이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세계적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으며 이에 따라 2차 에너지인 전력가격도 가파르게 올랐다. 각 국가의 에너지소비 주체들은 에너지가격 급등의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고통을 겪고 있던 지난 2~3년간 국내 에너지가격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사실 국내 전기요금은 과거부터 국제 에너지시장의 가격 변동과는 무관하게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규제돼 왔다.
생산원가를 적기에 반영하지 않는 현행 전기요금체계의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다.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비효율적으로 전력을 소비하는 것이다. 이는 전력소비자의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전력소비자는 자신에게 적용되는 요금체계에 대응해 적절하게 소비를 조절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제요금으로 왜곡돼 전달된 가격정보는 국가적 측면으로 보면 비효율적 소비를 유도하게 된다. 전력소비를 줄여야 하는 시기에 전력소비를 그대로 유지하기도 하며, 전력보다 타에너지 가격이 저렴한 시기에는 대체가능한 타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 소비임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가격정보로 인해 지속적으로 전력을 소비하게도 한다. 결국 개인은 비용과 자신의 수입을 고려해 극대치의 편익을 발생시키는 합리적·효율적 소비를 하지만 그것은 국가적인 비효율적 에너지소비로 귀결되며 판매(공급)사업자인 공기업의 적자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현행 규제요금의 보다 큰 문제점은 국내 전력소비자에게 에너지가격의 변동성에 상대적으로 노출되는 빈도를 매우 낮게 만들고 결국에는 요금 변동에 대해 경직적 수용성을 가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지난 2~3년간의 에너지 위기 속에서 국내 에너지 요금의 인상폭은 해외 주요국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으며 이마저도 그 수용성은 높지 않았다. 국내 공기업이 감당하던 비효율의 수준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결국 해당 공기업에 대한 법안을 수정하면서까지 부채를 증가시켰다. 엄청난 양의 회사채가 발행됐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자비용은 결국 미래의 전기요금으로 청구될 것이다.
에너지시장에서 발생된 비효율은 에너지부문을 넘어 채권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최고 신용등급 수준의 공기업 회사채가 채권시장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중견기업들의 자금 조달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일 에너지공기업의 재무 상황 악화에 대한 보도가 넘쳐나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의 요금 인상에 대한 수용성은 여전히 낮다. 그러나 누가 국내 소비자를 탓할 수 있을까. 이는 장기간 지속돼 온 규제정책이 빗어낸 결과일 뿐이다. 혹독했던 에너지 위기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다소 안정을 찾은 해외 주요국과 달리 우리는 지금 요금 인상 문제로 사회적 진통을 겪고 있다. 고통을 잠시 미룰 수는 있지만 영원히 외면할 순 없는 노릇이다.
더 이상 전기요금 현실화를 뒤로 미룰 수는 없다. 단기적으론 요금 현실화를 통해 현재 발생한 에너지공기업의 엄청난 적자를 해결해야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이제 전력소비자를 요금 변동성에 노출시켜 효율적 전력소비를 유도해야 한다. 에너지는 상품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안보적 측면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또한 가까운 미래에 더 큰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현실을 고려해보면 요금 변동성에 대한 적응력은 사실상 위기대응 능력이기도 할 것이다. 전기요금 현실화를 통해 요금 변동에 대한 소비자 수용성을 높이고 합리적 소비를 유도하는 정책이 절실하다.
박명덕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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