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에선 상의없이 묘 건드렸나…이재명 흑주술 미스터리 [최민우의 시시각각]
문중 인사가 좋은 취지로 했다는데
10개월 간 이 대표는 전혀 몰랐나
경북 봉화군의 부모 묘소가 훼손됐다고 세상에 알린 건 이재명 대표 본인이었다. 3월 12일 새벽 3시53분 페이스북에 “무덤 봉분과 사방에 구멍을 내고 돌을 묻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라며 사진 2장을 올렸다. 사진 속 돌에는 세 글자의 한자가 적혀 있었는데, ‘생명(生明)'은 명확했지만 마지막 한자는 흐릿했다. 네 시간쯤 지나 이 대표는 “일종의 흑주술(黑呪術ㆍ위해를 가하는 주술)로 후손의 절멸과 패가망신을 저주하는 흉매”라고 했다. “나로 인해 저승의 부모님까지 능욕당하시니…”라고도 했다.
민주당이 득달같이 가세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판독이 어려운 한자를 ‘살(殺)'로 단정하며 “이 대표가 얼마나 두려우면 저주의 글자까지 써놓았겠냐. 배후 세력을 밝혀내야 한다“고 했다. 임오경 대변인은 “테러에 주술적 수단까지 동원됐다”고 했으며, 친야 성향의 황교익씨도 “‘무당의 나라’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누가 봐도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정치 공세였다.
하지만 20여 일 만에 상황은 반전된다. 경찰 조사 등에서 문중(경주 이씨) 인사의 요청을 받은 풍수전문가 이모(85)씨가 이 대표를 돕는다는 취지의 기(氣) 보충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흐릿한 한자는 국과수 감정 결과 살(殺)이 아니라 기(氣)로 판독됐다. 생명살(生明殺)이 아닌 생명기(生明氣)였다. 난감한 결과에도 이 대표는 논란을 자초한 것을 사과하지 않고 대신 훼손자의 선처를 요청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대목이 적지 않다.
①이 대표는 진정 몰랐나=문중 인사 등이 돌을 묻은 건 지난해 6ㆍ1 지방선거 사흘 전(5월 29일)이라고 한다. ‘이 대표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도와주자’는 취지였다. 결과적으로 지난 10개월간 이 대표는 물론 가족ㆍ친지도 해당 묘소를 찾지 않아 훼손을 몰랐다는 얘기다. 추석도 있었고, 설도 있었는데 말이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곳은 1986년 12월 아버님을 모시고, 2020년 3월 어머님을 합장한 묘소”라고 썼다. 부친 기일도 지나친 셈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대선 유세 중 돌아가신 부모 얘기를 하다 울먹였다. 애틋함이 각별해 보였다. 이런 탓에 일각에선 “묘소 훼손은 알고 있었는데, 공개를 뒤늦게 한 거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3월 12일은 이 대표 전 비서실장이 극단적 선택(9일)을 한 직후로 친명-비명 갈등이 극심한 때였다.
②문중 인사는 왜 연락 안 했나=분묘 발굴죄는 반의사 불벌죄가 아니다.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할 수 있다. 벌금형이 없고 5년 이하 징역형이다. 이런 중범죄를, 그것도 대선에 출마한 유력 정치인의 부모 묘소를, 돕겠다는 의도의 문중 인사가 이 대표 측과 아무런 상의 없이 함부로 건드렸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풍수전문가 이씨는 “선거가 임박했고, 함께 간 문중들도 이 대표와 연락할 방법을 몰랐다”며 “나중에 이 대표에게 알려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논란이 불거진 뒤에라도 이 대표에게 사정을 설명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③제거 의식은 왜 하나=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묘소 훼손을 알리면서 “흉매지만 함부로 치워서도 안 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따라 간단한 의식을 치르고 수일 내 제거하기로 했다”고 썼다. 이상하지 않나. ‘흑주술’로 칭한 흉매를 없애기 위한 별도의 의식이라니. 통상 부적을 믿지 않으면 그냥 떼어 버린다. 부적을 떼기 위한 의식을 행한다는 것은 그걸 중시한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도 조상 묘가 훼손됐었다. 정치에 입문하기 직전인 2021년 5월 세종시 조부 묘 위에 인분이 버려졌고, 구덩이엔 식칼과 머리카락 등이 묻혀 있었다. 당시 윤 대통령 측은 “친척들이 발견해 치웠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주술 정권'이라고 하기엔 너무 쿨하지 않은가.
최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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