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가족 사망 비극, 동반 자살 아닌 ‘가족 살해’
얼마 전 인천에서 남편이 세 자녀와 아내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전남 완도항에서 열 살 딸아이를 포함해 세 가족이 수면제를 복용한 상태에서 승용차가 바다로 돌진한 사건도 있었다. 가족 구성원이 동시에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는 사건이 최근 자주 발생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그런데 일가족 사망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아직도 대부분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이 종종 보인다. 이는 법적으로 명백히 잘못된 표현이다. 자칫 함께 사망한 미성년 자녀들까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용어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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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해 후 자살자 53.5%가 무직
위기가정 붕괴 막는 노력 필요
직계비속 살해 법령 정비해야
」
거의 모든 일가족 사망 사건에서 부모 중 한 명이 자녀들을 먼저 살해하고 마지막에 자신도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진다. 이는 각자가 자살하려고 마음을 먹고 극단적 선택을 함께하는 ‘동반 자살’과 전혀 다르다. 일가족 사망 사건의 경우 자녀와 배우자를 먼저 살해하고 마지막에 자신도 세상을 등지는 ‘살해 후 자살’(murder-suicide)이 대부분이다.
만약 일가족을 모두 살해한 부모 중 한 명이 자살에 실패해 살아남는다면, 형법 제250조의 살인죄 또는 아동학대처벌법 제4조 아동학대 살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동반 자살이라면 형법 제252조의 자살방조죄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살아남은 부모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일가족 사망 사건을 가족 살해로 보느냐 동반 자살로 보느냐에 따라 법적 평가가 달라진다.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에는 가부장 문화의 잔재가 엿보인다. 가장이 가족 구성원의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다는 전근대적인 의식의 표현인 셈이다. 부모가 극단적 선택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아이들의 생계와 미래가 걱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처지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부모가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아이들의 생명권을 일방적으로 박탈하는 행위는 명백히 불법이기 때문이다.
처지를 비관해 자살하는 부모에게 남겨진 아이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도 이런 아이들을 위한 복지 시스템과 사회 안전망은 비록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정부·지자체·민간단체가 두루 참여한다. 따라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해 살해하겠다는 발상은 가족주의적 망상일 뿐이다. 그 아이들은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
자녀 살해를 저지른 부모에 대한 법적 평가의 문제도 있다. 형법 제250조 2항을 보면 살인죄로서 그 대상이 부모(직계존속)인 경우 법정 최저형이 7년이다. 일반 살인죄보다 가중처벌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자녀(직계비속)인 경우에는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오히려 형법 제251조에는 영아살해죄를 별도로 규정해 경제적인 어려움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형의 감경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전통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존속살해라는 패륜적인 행위를 가중처벌하는 것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의 생명과 인권의 평등을 이념으로 하는 근대법 정신에 비춰 보면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을 달리 볼 이유는 없다. 처벌의 형평성 차원에서 직계비속 살해죄에 대한 입법 논의도 진행 중이니 지켜볼 일이다.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 등 정책 당국은 직계비속에 대한 살인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주목해야 한다. 대부분의 가족 살해 사건은 가정 경제 파탄으로 자녀를 계속 부양할 수 없다는 구조적인 위기 상황에 기인한다. ‘가족 살해 후 자살’ 가해자의 53.5%가 무직자라는 통계에서 보듯 경제적 어려움이 이런 범죄의 중요한 원인이란 얘기다.
따라서 위기의 가정이 붕괴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촘촘하게 구축해 비극을 사전에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족 살해를 동반 자살로 표현하는 것은 문제다. 직계비속 살해에 대한 가중처벌이 없는 현행 형법은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그릇된 사고의 결과다. 일가족 참변을 예방하려면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고 법체계를 바로 잡는 노력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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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진 법무법인 리버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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