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2023. 4. 1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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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1년 전 즈음에 학교에서 자그마한 화재 사건이 있었다. 불이 났던 곳 바로 위층에 위치한 내 연구실은 새까만 연기가 만들어낸 그을음을 피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마침 공휴일이어서 학교는 한산했고 화재가 그리 크게 난 것은 아니었는데, 문제는 검은 연기가 위층으로 번져 복도를 가득 채운 거였다. 다음 날 언뜻 보기에 별다른 해를 입지 않은 것 같던 연구실이 실은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 온 회색 그을음을 온통 뒤집어쓰고 있었다. 연구실 곳곳에서 잿빛 연기 자국이 묻어났다. 책상과 집기는 물론 책장의 책을 모두 꺼내 먼지처럼 내려앉은 흔적을 지워야 했다.

「 선물받은 노트에 옮겨 쓴 글귀
‘정박도 표류도 아닌 항해하라’
기품과 상냥함은 인생 나침반
건강하고 간결한 삶을 향하여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래도 이득이 있었다. 오랫동안 장식품처럼 꽂혀 있기만 하던 책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책 한 권 한 권 잿빛 먼지를 닦아내며, 옛벗을 다시 만나듯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선 감성으로 책장을 넘겨보았다. 그러다 선배와 함께 책을 냈던 한 출판사에서 오래전에 선물로 보내온 책이 손에 잡혔다. 모양새는 책이지만 노트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

책 제목이 『나의 계로록(戒老錄)』이고, 부제로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가 달려 있다. 책장을 펼쳐보니 그동안 손길이 닿았던 흔적 하나 없이 하얀 도화지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미안한 마음으로 이 책, 아니 이 노트를 꺼내 들고 가장 손이 닿기 쉬운 자리로 옮겨 놓았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기록을 담아 ‘이렇게 나이 들고 싶은’ 나의 계로록을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담긴 글로 이 하얀 지면을 채색해 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다시 일 년여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이 계로록은 절반도 채워지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펼쳐보면 두세 달을 손도 안 대고 마냥 꽂아 두기만 했고, 어떤 날은 뭔 속앓이가 그리도 많았는지 며칠 동안 하루도 안 거르고 끄적거려 놓은 곳도 있다.

하지만 막상 기쁨의 순간을 옮겨놓은 곳은 드물고, 어디서 얻어들은 좋은 글귀나 마음이 편치 않았던 넋두리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저기 펼쳐보다 기억의 우물에서 끌어 올린 소중한 몇 마디에 눈길이 멈춘다. 버젓이 써 놓고도 또다시 언제 그랬냐 싶게 존재조차도 잊힌 채 지냈던 글귀가 새삼스레 마음에 와 닿았다.

계로록에서 다시 마주한 글 가운데 하나는,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우리 집을 다녀가시던 한 어르신께서 배웅 나온 나를 향해 건네주셨던 ‘기품 있고 상냥하게’라는 말씀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독일어 ‘슐리히트 운트 아인파크(schlicht und einfach)’다. ‘한마디로 말해서’라는 뜻이 있지만, 굳이 번역하자면 ‘간단명료’가 좀 비슷할까. 살아가는 동안 늘 마음에 새기고자 했던 그런 말이 이렇게 또다시 잊힌 바람이 되어 있을 줄이야.

그러다 오래전 어디선가 얻어듣고 출처를 찾지 못한 (니체로 생각되는) 인용문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정박하지도, 표류하지도 말고 항해하라!’ 우리의 인생은 곧잘 생로병사의 항로를 지나는 배로 비유된다. 항해를 위해 건조되는 배는 어느 항구에서의 기약 없는 정박을 위한 것도 아니고, 목표점도 없이 거친 바다에서 높은 파고에 휘청대며 표류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표류도 정박도 아닌 내 인생 항로에서 ‘기품 있고 상냥하게’를 나침반 삼아, 되도록 ‘간결하고 단순하게’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사이 부쩍 별것 아닌 일에도 벌컥 화를 내는 나를 보며, 내가 크게 잘못된 방향으로 나이 들고 있음을 언뜻언뜻 확인한다. 잔뜩 화난 표정에서 기품이나 상냥함을 찾아보긴 어렵다. 딱히 해결책도 없는 복잡한 생각에 불편해진 속내로 단순하게 살아가기란 애저녁에 그른 것 같다. 마음에 짐스러운 것을 한 줌 덜어내면서 조금씩 더 너그러워지는 것이 나이 드는 것인 줄 알았는데, 꼬장 부리듯 온갖 못마땅함으로 굳어버린 표정은 바늘이 녹슬어 움직이지 않는 나침반 같다.

내가 새벽 운동 다니는 곳에는 80세를 넘기신 분이 많다. 60대는 아직 젊은 나이다. 30년 넘게 운동을 지속해 오신 터라, 함부로 연세가 가늠되지 않는 자태를 보이신다. 나도 저 나이가 되었을 때 저분들처럼 지낼 수 있을까. 우선 아프지 말아야 할 텐데. 어차피 나이 들면서 신체가 겪는 노화로 젊었던 시절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몸이 아프면 얼굴이 일그러지고 우울함에 괜 시리 서글퍼진다. 크게 바랄 것도 없이 건강하고 간결한 하루하루의 삶에 간혹 기품과 상냥함을 얹을 수 있다면.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소망을 빗댄 나의 나침반은 표류도 정박도 아닌 인생 항해를 위해 제대로 작동하며 항로를 지켜갈 수 있을까.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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