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 읽기] 교황의 흰색 패딩, 가짜인 줄 알았나
얼마 전 교황이 흰색 패딩을 입은 모습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것인 줄 몰랐던 사람이 많다. 물론 모두가 속은 것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 그 사진이 사실인지, AI가 만들어낸 것인지 맞혀보라고 했다면 대부분 가짜 이미지임을 알았을 것이다. 손가락이나 옷섶 부분이 이상한 걸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의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테일을 살피지 않았다. 그러니 관련 기사를 읽지 않고 이미지만 보고 넘긴 이들은 그냥 “교황은 저런 패딩을 입나 보다” 하고 지나쳤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타인의 해석』에서 우리가 거짓말에 속는 이유는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인류 사회의 기본 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기에 사람들이 일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직접 확인해야 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게 된다. 그런데 교황의 패딩처럼 생성 AI가 만든 콘텐트가 쏟아져 나온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일일이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런 세상에 들어와 있을지 모른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지평설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은 가짜가 늘어난 탓에 사람들이 진짜(과학)마저 의심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글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생성 AI’는 완벽하지 않아도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 구성원이 합의하고 공유하는 현실이야말로 그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 기준인데 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 기억속 교생 선생님은..." 김건희 옛 제자가 편지 보낸 사연 | 중앙일보
- 소년에게 입 맞춘 뒤 혀 내밀며 부적절 언행…달라이라마 사과 | 중앙일보
- 여성은 19세, 남성은 40세부터 늙는다…AI가 찾아낸 ‘현대판 불로초’ | 중앙일보
- 둘째 낳으면 더 준다?…100만원 넘는 연금, 男 55만명 女 2만명 | 중앙일보
- 피자보다 값싼 필로폰…거기에 피싱도 섞었다, 무서운 콜라보 | 중앙일보
- "문자폭탄에 기름 붓는 정치 참담"…오영환 '배지' 뗄 결심 왜 | 중앙일보
- "우크라 포탄지원 유출, 한국엔 심각…러시아엔 기막힌 타이밍" | 중앙일보
- [단독] "美, 북 ICBM 발사 보름 전에 알았다…시긴트로 파악" | 중앙일보
- 밥값 깎아 MZ마음 잡을까…여야 불 타는 '1000원 아침밥' 경쟁 | 중앙일보
- "1시간 160회 구타" 층간소음 이웃 때려 숨지게한 전 씨름선수 실형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