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천마도’ 발굴 50돌
국보 ‘천마도’는 1973년 경주 천마총 발굴 과정에서 출토됐다. 옛 명칭은 ‘백화수피제천마도장니’. 장니(障泥·말다래)는 말안장과 연결해 말 옆구리에 늘어뜨려 흙이 튀지 않도록 막아주는 부속품이다. 천마도 장니는 자작나무 껍질을 겹겹이 붙여 편편하게 하고 둘레에 얇은 가죽 단을 덧대어 만들었다. 가운데에는 힘차게 비상하는 천마를, 주변에는 덩굴무늬 등을 그렸다. 삼국시대 벽화고분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 5세기 전후 신라 회화 작품이다.
김정기(1930~2015) 당시 천마총 발굴단장의 생전 증언에 따르면 당초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발굴을 지시한 건 천마총이 아니라 황남대총이었다. 황남대총은 높이 22m, 남북 길이 120m에 이르는 대형 쌍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덩치가 큰 고분을 발굴하는 건 위험부담이 컸다. 상대적으로 작은(높이 12.7m, 동서 길이 60m) 천마총을 시범적으로 발굴하자고 설득했고, 청와대는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1973년 4월 6일 발굴을 시작해 3개월 만에 금귀걸이 등 유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뒤이어 금관·금관모·천마도 등 국보를 포함해 총 1만점이 넘는 유물이 쏟아져나왔다. 천마총의 성과에 힘입어 황남대총 발굴도 시작됐다. 황남대총에서는 금관을 비롯해 5만8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금관총·서봉총 등은 보고서를 발간하지 않아 조사 내용이 누락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해방 후 비로소 우리 손으로 조상의 무덤을 파헤쳤으나 1971년 공주 무령왕릉까지만 해도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무령왕릉은 묘실 개방부터 유물 수습까지 17시간 만에 해치워 졸속 발굴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해방 후 첫 국책 발굴사업이었던 천마총은 한국 고고학 역사상 큰 전환점이 된다. 유물과 유적의 실측 개념을 최초로 도입하는 등 신중하게 진행해 총 8개월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고분 발굴 체계를 확립하고 고고학 전문 연구 인력을 양성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맞아 9년 만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다음달 ‘천마도’ 실물을 전시하는 등 다양한 기념사업이 열릴 예정이다. ‘천마도’는 빛에 약한 유물이라 볼 기회가 흔치 않다. 후대에 오래 전하도록 아껴 봐야겠다.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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