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가 된 ‘람보’…존 람, 그린재킷 소원 풀었다

성호준 2023. 4. 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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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회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기뻐하는 존 람. 불같은 성격을 버리고 ‘돌부처’로 거듭난 그는 위기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4타차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AP=연합뉴스]

존 람(스페인)이 10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벌어진 제87회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마지막 날 3타를 줄인 끝에 합계 12언더파로 역전 우승했다. 람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2021년 US오픈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우승 상금은 324만 달러(약 43억원).

람은 마지막 날 선두 브룩스 켑카(미국)에 2타 뒤진 9언더파로 출발해 4타 차의 역전승을 거뒀다. 람은 4번 홀에서 켑카를 따라잡은 데 이어 6번 홀에서 뒤집었고, 14번 홀에서 5타 차로 벌리면서 승부를 결정지었다.

람은 1라운드 첫 홀에서 4퍼트로 더블보기를 했다. 그러나 그는 평상심을 유지했다. 2, 3번 홀 버디로 잃어버린 2타를 만회했고, 1라운드를 7언더파 65타로 마무리했다. 람은 우승한 뒤 “만약 4퍼트 더블보기 같은 게 나온다면 1라운드 첫 번째 홀이 가장 낫다. 만회할 71홀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면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2번 홀 티샷에 담아 날려버렸다. 그리고 새롭게 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스페인 출신 골프 레전드 세베 바예스트로스(작고)의 기억을 불러낸 게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린 재킷을 2번 입은 바예스트로스도 마스터스에서 4퍼트를 한 적이 있다. 당시 기자들로부터 “어떻게 된 거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넣지 못했고, 넣지 못했고, 넣지 못했고, 넣었다”고 답했다.

그린 재킷을 입고 두 손으로 마스터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존 람. [AP=연합뉴스]

람은 1라운드에서 롱게임이 좋았다. 페어웨이 안착률이 100%였고, 그린을 놓친 건 한 번뿐이었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는 티샷이 말썽이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또다시 바예스트로스를 불러냈다. 바예스트로스는 쇼트게임 천재로 불렸지만, 롱게임이 좋지 않았다. 이를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내가 벙커에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나는 최고의 벙커플레이어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바예스트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람도 숲속에서, 벙커에서 날카로운 쇼트게임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람은 다혈질로 유명하다. 클럽을 부러뜨리거나 주먹으로 나무를 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의 별명이 람보인 것은 이름 때문이기도 하고,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마스터스 첫날 1번 홀에서 4퍼트를 했다면 당장 폭발했을 텐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멘탈이 강한 메이저 사냥꾼 켑카와 벌인 최종 라운드에서도 마치 ‘돌부처’처럼 단단했다. 람은 “일기를 쓰면서 마음의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면서 “내가 좀 더 성숙해졌다면 글쓰기 덕분”이라고 했다. 결혼 후 가족이 생긴 것도 도움이 됐다.

2021년 스페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US오픈에서 우승한 람은 메이저 2승째를 거뒀다. 람은 또 바예스트로스,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 세르히오 가르시아에 이어 스페인 선수로는 네 번째 그린 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올해 PGA 투어에서 4승을 거두면서, 통산 11승째를 기록했다.

람이 우승한 날이 바로 바예스트로스의 생일이었다. 골프에서 가장 개성이 넘치는 경기를 했던 선수 중 한 명인 그가 살아 있었다면 66번째 생일을 맞을 뻔했다. 바예스트로스가 두 번째 그린 재킷을 입은 지 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람은 “타이거와 미켈슨을 보고 자랐지만, 나의 진짜 영웅은 바예스트로스였다”고 했다.

LIV골프 소속인 켑카와 베테랑 필 미켈슨(미국)이 합계 8언더파 공동 2위, 패트릭 리드(미국)가 7언더파 공동 4위에 올랐다. 만 52세의 미켈슨은 이날 데일리베스트인 7언더파 65타를 쳤다. 임성재와 김주형은 2언더파 공동 16위, 이경훈은 1언더파 공동 23위, 김시우는 1오버파 공동 29위로 경기를 마쳤다.

한편 타이거 우즈는 전날 열린 3라운드 경기가 중단된 후 기권을 발표했다. 우즈는 전날 차가운 빗속에서 2라운드 잔여 경기를 치르며 합계 3오버파 공동 49위로 간신히 컷을 통과했다. 그러나 3라운드에서 통증을 호소하다 결국 경기를 포기했다.

오거스타=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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