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에.1st] 결국 고개를 드는 '스팔레티의 고질병'… UCL 새 역사 위해 극복하라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나폴리가 AC밀란 상대로 대패한 데 이어 약체 레체를 상대로도 경기력 열세를 보였다. 간신히 승점 3점은 따냈지만, 불안요소가 연달아 터지며 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폴리는 8일(한국시간) 레체를 상대한 2022-2023 이탈리아 세리에A 29라운드에서 2-1 신승을 거뒀다. 수비수 김민재의 크로스를 받은 조반니 디로렌초의 헤딩골, 그리고 상대 수비수 안토니노 갈로의 자책골에 힘입어 겨우 따낸 승리였다.
표면적으로는 앞선 3일 AC밀란에 당한 0-4 충격패의 여파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도 "평안을 찾았다"며 승리에 큰 의미를 뒀다. 나폴리는 레체전 이후 13일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8강 1차전 AC밀란 원정, 16일 세리에A 엘라스베로나전, 19일 UCL 8강 2차전 밀란전, 24일 세리에A 유벤투스 원정으로 이어지는 힘든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스팔레티 감독은 체력 안배보다 연패를 끊기 위한 주전 총출동을 택했다.
승리에도 불구하고 레체보다 슛 횟수가 적고 빌드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경기력 측면에서 문제가 컸다. 주전 스트라이커 빅티 오시멘이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공격의 에이스인 왼쪽 윙어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는 상대의 집중 견제를 이겨내지 못해 2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가 없었다.
올것이 왔다는 반응도 나온다. 스팔레티 감독은 시즌 막판 뒷심을 받지 못하는 고질병 때문에 AS로마, 인테르밀란 등을 거치며 2위를 무려 5회 기록했을 뿐 우승은 해 보지 못했다.
심지어 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해외 리그 시절에도 뒷심 부족은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의 제니트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두 차례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2010년 우승 당시 시즌 중반까지 무패 행진을 달리다 막판 8경기에서 3승 3무 2패로 비교적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011-2012시즌도 막판 5경기에서 2승 3무로 아슬아슬한 성적을 냈는데, 추격자 CSKA모스크바가 같은 승점에 그쳐 망정이지 조금만 더 추격이 심했더라면 승점 2점차 우승은 없었다.
뒷심 부족은 나폴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팔레티 감독의 1년차였던 지난 시즌, 나폴리는 시즌 초 최강이었다가 갈수록 힘이 빠졌다. 초반 기세만 놓고 보면 지난 시즌이 오히려 더 좋았다. 지난 시즌에는 8라운드까지 전승 행진을 달렸고, 첫 패배를 당하기 전까지 12라운드까지 10승 2무로 이번 시즌과 성적이 같았다.
지난 시즌의 문제는 12라운드부터 20라운드 사이, 즉 11~12월에 주로 찾아왔다. 이 2개월 동안 나폴리는 2승 3무 4패로 크게 부진했다. 하지만 일단 위기를 넘긴 뒤에는 4경기 연승 행진을 달리기도 했다. 24라운드 시점에는 AC밀란과 나폴리의 성적이 16승 4무 4패로 같았다. 하지만 나폴리가 다시 한 번 뒷심 부족을 보이면서, 시즌 종료 시점에는 우승팀 밀란과 3위 나폴리의 승점차가 7점으로 벌어진 바 있다.
이번 시즌 나폴리는 하락세가 다가오기 전 승점차를 워낙 크게 벌려뒀기 때문에 우승에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또한 경쟁팀들이 일제히 몰락한 점이 행운으로 작용하고 있다. 나폴리가 현재 승률을 유지한다면 시즌 종료 시점의 예상 승점은 97점 정도인데, 세리에A 역대 어느 시즌에 갖다놔도 우승을 장담할 수 있는 승점이다.
스팔레티 감독은 지도자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잘 풀리고 있는 시즌을 유종의 미와 함께 마무리하기 위해 현명한 운영을 해야 한다. 그동안 초반에 상승세를 타고 막판에 약했던 이유는 '플랜 A'를 마련하는 능력이 뛰어난 반면 시즌 운영에는 장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팔레티 감독은 2000년대 중반 로마에서 '프란체스코 토티 가짜 9번' 기용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등 선수들의 역량을 끌어내는 공격적인 판 짜기에 능하다. 하지만 자신의 전술이 잘 통하지 않는 경기에서 대처하는 능력은 이탈리아 전략가답지 않게 떨어지는 편이다.
이번 시즌은 2월부터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하고 2진급 선수들의 경기 감각을 유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스팔레티 감독은 그러지 않고 주전 열한 명에게 문제가 없다면 최대 2명 정도 선발 라인업을 바꾸는 데 그쳤다. 그것도 주전이 확실하지 않은 오른쪽 윙어 자리에 두 명을 번갈아 쓴 게 대부분이었고, 멀티 미드필더 엘리스 엘마스 한 명으로 여러 자리를 메우게 하면서 선수 기용폭을 좁게 유지했다. 팀이 잘 나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주전 다수가 체력 고갈 징조를 보이자 대처하기 힘든 상태가 됐다. 오시멘이 이탈하자 라스파도리의 경기 감각이 떨어진 것도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누적된 피로는 부상 우려를 높인다. 아직 이탈한 선수의 숫자는 적지만 스트라이커 오시멘과 조반니 시메오네가 나란히 빠지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미 이번 시즌에만 피로 누적으로 인한 근육 부상을 두 차례 당한 김민재를 비롯, 주전급 선수들이 이탈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주전 의전도가 높은 팀이라 한두 명의 추가 이탈만으로도 타격이 크다.
만약 나폴리가 지금부터 엉망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해도 리그 우승과 UCL 8강은 남는다. 우승은 무려 33년 만이고, UCL 8강은 역대 최초다. 이미 구단 역사에 남을 만한 시즌이다. 하지만 막판 약 2개월 동안 조금 더 현명한 운영을 한다면 UCL에서 4강 이상을 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리그에서도 더 개운한 우승을 하고, 나아가 다음 시즌 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자원들까지 테스트할 수 있게 된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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