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 해외출장 따져 봐야…여행사 ‘짬짜미’ 감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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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연수라는 표현 좀 쓰지 마라. 어차피 세금 들여 떠나는 여행 아니냐.” “부실 출장에 들어간 내 세금, 10원까지 다 토해내라!” “왜 해마다 얘기해도 안 바뀌는지… 이러다 올해도 갔다 오겠네.”
국민일보가 집중 보도 중인 ‘지방의원은 출장 중’ 기사에 대한 대표적인 반응이다. 시민들 사이에선 본래 제도의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지방의원 국외 공무출장 제도가 의원 개인이 누리는 특혜로 전락했다는 비판 의식이 팽배했다. 아울러 수년째, 아무리 문제를 지적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지방의원의 기득권이요, ‘특혜 아닌 특혜’가 되어버린 해외출장 문제를 주민 눈높이에 맞게 뜯어고칠 방법이 없을까.
현재 지방의회의 부실한 출장이나 예산 낭비에 대한 강제력 있는 징계나 처벌 방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행정안전부는 2019년 ‘지방의회의원 공무국외 여행규칙 표준안’을 전면적으로 개선하면서 부당한 해외출장에 대해 환수 조치하고 회기 중에는 해외출장을 제한한다는 내용 등을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했다. 하지만 행안부의 권고 이후 지금까지 환수 조치는 0건으로 확인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권고 이후 지방의회에서 환수조치가 얼마나 이뤄졌는지 파악하고 있지 않다”며 “환수조치는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중앙정부는 권고안이나 공문을 통해 출장 내실화를 유도할 뿐, 실질적인 제재나 관리·감독 등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지자체 차원에서 지방의회 출장비를 환수한 사례가 없진 않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주민들의 감사 청구를 받아 2014년 성북구의회 부당 출장비 환수조치를 결정한 바 있다.
지금처럼 지방의회의 자성과 자정 노력에만 기대서는 주민 눈높이에 걸맞은 변화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전국 지방의회는 공무국외출장에 관한 조례나 규칙을 두고, 심의위원회를 통한 사전심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례의 세부내용이 의회마다 다르고 심의위원회의 심사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는 곳도 있다. 공개를 규정해 놨더라도 각종 예외 사유가 적용돼 실제로 공개되는 회의록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출장 계획을 심사위원에게만 공개할 게 아니라 언론이나 주민을 상대로 브리핑을 하는 등 공개적이고 실질적인 사전 심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며 “의회가 절차를 밟는 데만 집중할 게 아니라 왜 이런 출장을 다녀와야 하는지 주민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드러난 지방의회의 해외 출장 프로그램은 외유성, 패키지 관광 일정 수준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는 지방의회들이 주로 여행사에 외주를 맡겨 진행해온 관행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여행사는 정책 전문성이 떨어져 질 좋은 프로그램을 공급하기 어렵고, 전문 통역이나 교육자료 등을 지원하지 못한다.
게다가 지방의회와 업체 간 계약 내용이나 입찰 방식 정보도 공개되지 않고 있어 의회가 사적 친분을 통해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고 외유성 출장을 반복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동엽 참여자치연대 사무국장은 “의장이 특정한 여행사를 지정해서 수의계약 형태로 계약을 맡기는 지역들도 있다”며 “업체 계약을 감시할 시스템이 없어 문제가 되면 논란이 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잠재워지면서 같은 문제가 매번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주민들이 직접 지방의원 해외출장에 대한 감시활동 수위를 높이는 것이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다. 실제로 직접 감시활동에 나서는 주민 활동도 속속 눈에 띄고 있다. 지난 3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는 시민 6명과 함께 ‘지방의원 해외출장보고서 첨삭놀이’를 진행했다. 빨간펜을 들고 대전시의회 보고서를 보며 부적절한 부분을 직접 점검하는 감시활동을 벌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해외 선진사례를 조사하고 이를 지역사회에 벤치마킹한다는 해외출장 목적에 맞지 않았다. 현지의 관광지를 둘러보고 보고서엔 대전의 유사한 장소들과 연결 짓는 데 그쳤다. 직접 들여다보니 ‘혈세를 이렇게 써도 되나’는 문제의식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시민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사후평가를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전참여연대는 지난 4일 성명을 통해 결과보고서 작성 전 동료의원들과 지자체 공무원, 시민들에게 발표하고 의견을 듣는 과정을 정례화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정혜용 대전참여연대 간사는 “현재는 심사위원회를 통해 사전 심사를 받는 구조이지만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측면이 있다. 대전시의회의 경우 심사위원의 명단조차 공개되지 않는다”며 “사후평가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내실 있는 출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주민이면서 유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평가 과정에 참여한다면 잘못된 관행을 방지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이 직접 사후평가에 참여하면 이를 근거 삼아 적극적으로 출장비 환수 조치를 취하거나 해당 의원에 대한 경고나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또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확인된 의원들 명단 공개 등을 통해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실질적인 제재 방안이 마땅찮은 상황에선 결국 선거를 통해 심판해야 지방의회의 뿌리 깊은 관행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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