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시개발과 쫓겨나는 세입자들
4월 4일(화)부터 4월 15일(토)까지 2023년 차별없는서울대행진이 개최됩니다. 최근의 도시·가스 요금 폭등, 작년 이태원 참사와 폭우 참사를 비롯한 재난 및 기후위기 등 삶의 위기가 노동자 시민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는 이러한 위기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대책을 요구하는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부터 탄압을 뚫고, 위기에 맞서는 실천을 만들어가는 '2023 차별없는서울대행진'의 이야기를 7회에 걸친 기획연재로 전합니다. <기자말>
[지수]
▲ 2023년 4월 5일 서울시티투어 중 방문한 용산정비창 정문 앞이다. |
ⓒ 민달팽이 유니온 |
투어를 함께 기획한 김윤영 활동가가 쓴 책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산책>에는 '도시의 모습이 변할 때마다 사라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투어에 참가한 35여 명의 노동자들은 저자의 표현처럼 '말끔한 도시 서울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88올림픽이 사람들의 집을 빼앗았다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의 강의를 곁들인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 상영으로 투어가 시작됐다. 많은 이들에게 올림픽은 국제적인 '대잔치'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상계동 올림픽>이 보여주는 그 시절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올림픽의 영광 따위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폭력과 차별의 현장이었다.
올림픽을 호재 삼아 재빠르게 추진된 재개발 사업은 도시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살던 집을 부숴댔다. 정부가 민간 개발업자들에게 공권력의 힘을 부여해주는 '합동재개발' 사업이 가난한 이들의 '쫓겨남'을 부추겼다.
도시 곳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던 사람들의 주거권은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상계동에서도 1500세대의 주민들이 쫓겨났다. 이들은 세간살이를 뺏기지 않으려 몸을 던졌고, 용역업체 폭력배들은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휘둘렀다. 공무원들은 전투경찰까지 동원했고, 이에 주민들은 명동성당 앞에 천막을 치고 '철거민의 집'을 지었다.
그렇게 3년을 싸웠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천막 앞에 적힌 '철거민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온다'라는 글귀를 덤덤히 훑는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며, 글자를 적어 내려가던 이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존엄한 삶이란, 가진 돈이 없고 소유한 집이 없는 이에게도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권리다. 하지만 어째서 가난한 이들의 집은 왜 그리 쉽게 빼앗길 수 있는 것으로 취급되는 걸까?
▲ 2023년 4월 5일 진행한 서울시티투어 중 찍은 청계천의 정경이다. |
ⓒ 민달팽이 유니온 |
산업화가 급속도로 이뤄지던 시절, 1960년대 즈음의 한국은 '빨리빨리' 경제 발전을 바라며 아주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반면, 그 노동자들이 살만한 집을 제공해야 할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은 판자촌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1966년 서울시 인구의 38%가 판자촌에 사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였다.
60년대 이후부터 강남 개발 등 대규모 도시 개발 정책과 부동산 투기가 활성화되면서, 청계천과 강남 등 서울 곳곳 판자촌에 살던 이들이 대책 없이 쫓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일자리는 서울에 있는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출퇴근 버스 한 대조차 제대로 다니지 않는 지역에 던져졌으니, 얼마나 울분이 차올랐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눈을 돌려 청계천을 바라보니, 그렇게 사람들을 치워버린 자리 위에 말끔히 서 있는 고층 빌딩과 도시의 어항이 된 청계천의 모습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청계천 지역은 커다란 빌딩숲이 늘어져 있지만, 구석마다 고시원과 쪽방이 숨어 있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는 그중 하나인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했던 화재 참사 당시의 이야기를 전했다. 국일고시원에는 창문 있는 방보다 4만 원 저렴한, 창문이 없는 '먹방'이 있었다.
소방 안전시설을 보강해야 하는 불법 고시원이었지만 건물주가 응하지 않고 있었다. 2018년 11월, 건물 안에서 불이 났고, 먹방에서 탈출구를 확보하지 못한 이들이 돌아가셨다. 7명이 죽고 11명이 다쳤다. 그들은 먹방에 살던 세입자였고, 비정규직 또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아현동, 남일당, 용산정비창, 그리고 두리반
이어서 투어에서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강제퇴거에 사람들이 저항하던 현장을 돌아봤다. 과거 용산역 앞에는 크고 작은 음식점과 가게들이 있었고, 아현역에는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으로 살던 월세방들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고층 아파트와 빌딩으로 변해 있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용산역 상인들의 일터를 밀어낸 자리에는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지어졌고, 매매 호가는 25억 원을 웃돈다. 아현역 바로 옆, 월세 20만 원짜리 셋방들을 부순 자리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신축 매매 호가는 15억 원에 달한다. 더 비싼 집을 지어 더 많은 개발이익과 시세차익을 벌어들이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폭력진압으로 쫓겨났다. 2009년 1월 용산참사와 2018년 11월 박준경 열사의 사망이 그랬다. 세입자를 위한 대책 하나 없는 퇴거 명령이 잇따르고,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강제집행이 벌어지면서, 존엄한 삶을 원했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누군가의 존엄을 훼손하고 쫓아낸 자리에 수십억짜리 집들을 짓는 것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이다. 혹자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 그 비싼 아파트의 주민이 되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이 세입자를 함부로 추방하는 것을 용인하는 구조에서는, 우리는 결코 서울에서 차별을 철폐할 수도, 평등해질 수도 없다.
서울은 누구나 안정적으로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어야 한다. 그 변화의 시작을 도모하기 위해, 투어 참여자들은 용산정비창 정문 앞에 모여 '팔지 마! 공공의 땅!', '내놔라 공공임대'를 함께 외쳤다.
▲ 4월 5일 진행된 주거권 서울시티투어 참가자들이 아현동 부근에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
ⓒ 너머서울 |
투어의 마지막 장소는 두리반이었다. 두리반은 과거 마포구 개발 과정에서 대책 없는 강제퇴거에 저항한 531일의 투쟁을 통해 끝내 평화와 안정을 쟁취한 가게이다. 안종녀 사장님의 따뜻한 환대를 받고 정갈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두리반과 같은 승리와 희망의 현장이 더 많아지길 바랐다.
앞으로도 노동자 시민들과 도시를 꾸준히 걷고 싶다. 이 땅 위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노동자들이 일궈내는 삶을 돌아보고, 서울 도시개발 정책으로 인해 쫓겨난 이들의 투쟁과 용기를 기억하며, 주거권 투쟁을 함께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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