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안 재우고 고문... 부마항쟁 사제총기 조작 강요 받아"

윤성효 2023. 4. 1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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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준 피해자 기자회견 "43년 동안 고통 지속... 10·26 이후 조사 중단"

[윤성효 기자]

 부마민주항쟁 사제총기 조작 피해자 정광준(65)씨가 10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증언하고 있다.
ⓒ 윤성효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하며 일어났던 부마민주항쟁 당시 공안당국이 '사제총기' 사용을 조작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정광준(66)씨는 10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마민주항쟁 당시 사제총기 조작 피해로 고통을 겪었다고 폭로했다.

부마항쟁은 지난 1979년 10월 16일부터 18일 사이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철폐를 위해 부산·마산(창원)에서 전개된 민주항쟁이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최근 공모 과정을 거쳐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이라는 체험수기집을 냈다. 정씨는 당시 겪은 피해를 적은 글 "먼저 떠난 나의 벗 종철아"를 응모해 '민주상'을 받았다.

체험수기에서 당시 상황을 낱낱이 언급한 정씨는 이날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마민주항쟁경남동지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당시 상황을 밝혔다. 이날 증언은 기념사업회가 부마민주항쟁의 기억을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마련했다.

"사제총 제작 시인하라며 고문"

부마항쟁 직후인 1979년 10월 20일, 최창림 당시 마산경찰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시위 현장에서 총기가 발견됐고, 배후에 조직적 불순세력이 개입된 징후가 농후하다"고 발표했다. 이후 사제총기 사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진상조사규명위는 시위 현장에서 발견된 총기는 사제총기가 아니라 해군 함정 조명탄 발사기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위 직후 공안당국은 사제총기 제작자로 정광준씨를 지목했고, 체포해 수사를 벌였다.

결국 부마항쟁 당시 창원공단 내 삼성라디에이터에서 부품 품질 검사원으로 일했던 정씨는 1979년 10월 23일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경찰이 정씨한테 씌운 죄목은 마산시위 중에 발견되었다는 사제총 제작 혐의였다.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2021년 12월 채택된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이 시위자 관련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허위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 폭행 등 가혹행위가 자행됐고, 배후세력을 만들기 위해 마산 사제총기 사건을 조작했다"고 밝혔다.

정광준씨는 수기에서 "직장에서 체포되면서 형사들은 직장 사무실 책상에서 스프링을 증거로 가져갔다"고 기록했다. 그는 당시 부산에 있던 삼일공사로 끌려가 고문을 받으면서 취조를 당했다. 이어 "지하취조실에서 잠도 재우지 않고 뺨을 맞고 구둣발에 차이고 주먹으로 얻어 맏으면서 사제총 제작을 시인하라고 강요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정씨는 사법처리 없이 10·26이 난 2~3일 뒤에 풀려났다. 같은 해 10월 27일 저녁 취조실에서 "국기하강식 나팔 대신 클래식 조곡이 나오는 것을 들었고, 28일께 권정달 보안대장과 성명 미상의 준장에게서 인사와 커피를 대접받고 20여 분 뒤에 풀려났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에 잡혀갔을 때는 보안대, 계엄사령부, 치안본부, 군보안대 관계자들이 나와 있었고, 부산마산 시위 주동자들이 잡혀 와 있었다"며 "입구부터 무장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 심한 공포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처음에는 옷을 다 벗기고 나체 상태로 만들었고, 구멍 난 고무신을 신도록 했다"며 "며칠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고, 계속해서 진술서를 쓰라고 해서 10여장 썼던 것 같다. 그 내용은 분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당시 조사관들은 자기들이 바라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고 다시 쓰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무엇을 쓰라고 하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조사관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니 내가 사제총기를 제작했고, '김종철이 간첩이다'고 증언하라는 것이었다"며 "그 말을 듣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씨는 부마항쟁 참여자인 고(故) 김종철과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고인은 1979년 10월 19일 마산 시위현장에서 붙잡혀 부산 계엄사 합동수사단에서 갖은 고문을 당했고, 고문 후유증을 앓다가 1997년 4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0·26과 관련해 그는 "당시는 국기 하강식이 있었고, 26일 이전까지는 국기 하강에 맞춰 나팔 소리가 들렸는데, 27일에는 나팔 소리 대신에 조곡이 울렸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짐작하고 있었고, 그 뒤부터 조사가 중단되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취조가 중단된 뒤 방을 옮겼는데, 다른 2명과 같이 3명이 있었다. 절대 대화를 못하도록 해서 서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다른 2명은 이전에 만난 적이 없었다"면서 "조곡이 나와서 서로 무슨 일인가 싶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고 밝혔다.

정광준씨는 "대한민국이 올바르게 발전해 나가길 바라고, 정의로운 일이라 생각을 해서 수기를 쓰고 증언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부마민주항쟁 사제총기 조작 피해자 정광준(65)씨가 10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증언하고 있다.
ⓒ 윤성효
  
 부마민주항쟁 사제총기 조작 피해자 정광준(65)씨.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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