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미 감청, 대통령실 졸속이전 탓" 용산 "靑보다 보안 탄탄"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10여일 앞두고 불거진 미국의 동맹국 감청 논란에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관련 문건에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문제 등 대통령실 외교ㆍ안보라인의 민감한 대화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더불어민주당은 10일 “명백한 주권침해”라며 “미국 정부에 해당 보도의 진위와 명확한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한민국은 주권국가고 미국과는 동맹관계다. 동맹의 가장 핵심적 가치는 바로 상호존중”이라며 “일국의 대통령실이 도청에 뚫린다는 것도 황당무계한 일이지만, 동맹국가 대통령 집무실을 도청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객관적 내용을 정확하게 확인해가면서 엄정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대표는 전날 관련 상임위 간사로부터 전화로 관련 내용을 구두 보고받았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9일 “제기된 문제에 대해 미국 측과 필요한 협의를 할 예정”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는 단호한 대응은커녕 ‘미국과 협의하겠다, 타국 사례를 검토해 대응하겠다’는 남의 다리 긁는 듯한 한가한 소리만 내뱉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도 페이스북에 “임박한 한ㆍ미 정상회담 때문에 미지근하게 대처한다면 대한민국을 미국의 바둑판에서 동아시아의 ‘호구’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민주당은 이번 사안이 용산 국방부 부지로의 대통령실 이전 과정과 관련됐을 거란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 소속 국회 국방위ㆍ외통위ㆍ정보위 위원들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상임위 소집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번 보안사고는 졸속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도 관련돼 있을 수 있다”며 “아무런 마스터플랜 없이 대통령실을 국방부로 옮기겠다고 나설 때, 급하게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시스템을 꾸리고 보안 조치를 소홀히 해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닌지 명백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보안 조치 공사나 리모델링 등도 짧은 기간의 수의계약 방식으로 급하게 이뤄졌다. 또 대통령실 담벼락 바로 옆에 주한미군기지가 있어 방첩 조치와 보안이 취약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은 이같은 야당의 주장에 대해 “NSC의 보안이나 안전은 청와대보다 용산이 더 탄탄하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청사의 보안 문제는 이전해 올 때부터 완벽하게 준비했고, 정기적으로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점검이 이뤄지고 있으며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오히려 청와대 시절 ‘벙커’ 구조는 반쯤 지상으로 돌출돼 있어서 대통령이 근무하는 곳의 보안은 용산이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한ㆍ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과장하거나 왜곡해 동맹을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면 많은 국민에게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유출됐다고 주장하는 자료 대부분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내용인데, 미국에서는 자료 일부가 수정되거나 조작됐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며 “특정 세력의 의도가 개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양국의 상황 파악이 끝나면 우리는 필요한 경우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여당도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우선 사실확인이 필요하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도ㆍ감청이 있었는지 자체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대표는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에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까지 갈등이 고조된 걸 고려해보면 이 문제에 대해 국익에 부합하는 조치가 무엇인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제3국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뉴욕타임스는 문건 유출 과정에 러시아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보도하기도 했다.
다만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윤석열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당장 미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기밀 문건에 대한 모든 정보를 요구해야 하며, 미국 정부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며 “대통령실의 반응은 한심하고 비굴하기 짝이 없다. 항의해도 시원찮을 판에 무슨 협의를 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도 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는 주권국가이기 때문에 그 나라가 누구든 간에 따질 건 따지고 사과를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한다”며 “오히려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조금 더 우위에 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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