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들러-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소송 스토리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3. 4. 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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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배상금 무벡스 지분으로 갚는 이유는 [BUSINESS]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이자 글로벌 승강기 업체인 쉰들러홀딩스와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결국 패소하고 엄청난 배상금을 물게 되면서 재계가 시끌시끌하다.

현대엘리 2대 주주 쉰들러 승소

“파생 상품 계약으로 손실 끼쳐”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는 지난 3월 30일 쉰들러홀딩스가 현정은 회장과 한상호 전 현대엘리베이터 대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자를 포함한 총 배상액은 200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당시 현대그룹 계열사였던 현대상선(현 HMM)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2006~2013년 주요 금융사와 현대상선 우호 지분 매입 대가로 연 5.4~7.5% 수익을 보장해주는 파생 상품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5.5%를 보유한 쉰들러홀딩스는 파생 상품 계약 후 현대상선 주가가 떨어져 현대엘리베이터가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2014년 현정은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을 상대로 7000억원대 규모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주주대표소송은 경영진 결정이 주주 이익과 맞지 않을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표해 경영진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1심은 쉰들러홀딩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체결한 파생 상품 계약이 현정은 회장의 정상적인 경영 행위라고 판단했다. 회사에 불리한 내용의 계약으로 볼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2심은 달랐다. 파생 상품 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가 손해를 입었다며 현 회장이 17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현 회장 측이 지배주주의 경영권 유지가 회사와 일반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지, 특별한 사회적 필요가 있었는지 등을 검토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도 원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현 회장은 계약 체결 필요성이나 손실 위험성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거나 이를 알고도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에 자금 지원을 하는 등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었음에도 쉰들러가 소송에 나선 것은 현대그룹 순환출자에서 비롯됐다는 시선이다. 당초 현대그룹은 ‘현대글로벌→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글로벌’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였다. 현대로지스틱스가 엘리베이터를 통해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을 지배하는 구조다. 순환출자 구조에서는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다른 계열사도 연쇄적으로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계열사 지원을 위해 유상증자를 하고, 현대상선 주가와 연계된 파생 상품 투자를 지속하자 쉰들러는 반발하고 나섰다. ‘현대상선 부실을 현대엘리베이터가 떠안아 주주 가치가 훼손됐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현대그룹은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해 현대로지스틱스, 현대증권 등 핵심 계열사를 매각했다. 현정은 회장이 경영권 지키기에 나섰던 현대상선마저 산업은행에 넘어가면서 현대엘리베이터 중심의 중견그룹으로 쪼그라들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쉰들러홀딩스와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재계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현대엘리베이터 충주공장과 현정은 회장. (현대엘리베이터 제공)
현정은 회장 경영권 영향은

현대엘리 실적 순항, 아산 턴어라운드

현대엘리베이터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주주대표소송 손해배상금 관련해 계열사 현대무벡스 주식으로 배상금을 변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내야 할 배상금과 지연 이자를 현대무벡스 주식 2475만463주(약 863억원)로 대물변제(현금 대신 주식으로 갚는 것)하기로 결정했다. 주식 취득 뒤 현대엘리베이터의 현대무벡스 지분율은 32%에서 53.1%로 늘어난다. 현 회장 보유 지분(21.1%)은 정리된다. 현정은 회장 측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담보로 약 300억원의 추가 대출을 받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 회장은 4월 초부터 한국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등에서 총 92억3000만원을 대출받았다. 현 회장과 자녀들이 지분 100%를 소유한 현대네트워크도 보유 중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담보로 하나증권, 한화투자증권에서 200억원을 빌렸다.

이번 판결에도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경영권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 인수를 시도했던 쉰들러가 지분 구도를 흔들기 전에 현대그룹이 배상금 변제에 속도를 내려는 움직임이다. 당초 현대엘리베이터 배당을 늘리는 방식도 거론됐지만 현대무벡스 지분을 활용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싶다”고 귀띔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점유율 40.8%에 달하는 독보적인 1위 업체다. 오티스, 티케이엘리베이터 등 쟁쟁한 외국계 경쟁사를 제치고 꿋꿋이 선두 자리를 유지해왔다. 고정 수요가 탄탄한 덕분에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악재에도 매년 1000억원 넘는 영업이익을 꾸준히 내왔다. 현대엘리베이터 영업이익은 2019년 1362억원에서 2020년 1500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43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도 2조1293억원으로 전년 대비 7.9% 늘었다.

현대엘리베이터를 제외한 현대그룹 계열사 중에서는 현대아산, 현대무벡스가 눈길을 끈다.

현대아산은 1998년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면서 남북 경제 협력 사업 물꼬를 튼 이후 묵묵히 대북 사업을 해왔다. 금강산 관광뿐 아니라 개성공단 개발 사업까지 진행했다. 현정은 회장은 그룹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도 현대아산만은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쳐왔다. 하지만 2008년 7월 박왕자 씨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이 중단된 데다 개성공단 가동까지 막히면서 현대아산 실적은 악화 일로다. 2007년 현대아산 영업이익은 197억원에 달했지만 2008년 이후 매년 적자에 허덕였다.

대북 사업이 중단된 후 자본잠식을 막기 위해 현대아산은 재무 구조 개선에 힘쓰는 중이다. 지난 3월 초 보통주 800만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유상증자 규모는 400억원이다. 조달 자금 200억원은 운영 자금으로, 나머지 200억원을 채무 상환 자금으로 쓸 예정이다. 3월 말에는 3 대 1 무상감자도 진행했다. 주식 수가 3221만8987주에서 1073만9662주로 줄어들면서 자본금이 1610억원에서 536억원으로 감소했다.

대북 사업이 난항을 겪자 현대아산은 건설업에서 활로를 찾는 모습이다. 지난해 새 주택 브랜드 ‘프라힐스’를 선보이고 경기도 부천에서 ‘현대프라힐스소사역더프라임’ 분양에 성공했다. 다행히 주택 사업에서 성과를 낸 덕분에 2021년 영업이익 50억원을 올리며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도 16억원 이익을 내며 흑자 기조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물류 자동화 사업을 해온 현대무벡스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대무벡스는 2017년 현대엘리베이터의 물류자동화사업부를 분리한 뒤 IT 업체인 현대유엔아이와 합병해 설립됐다.

실적은 나쁘지 않다. 현대무벡스는 2021년 매출 2401억원, 영업이익 154억원을 올렸다. 지난해도 122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해 순항 중이다. 유경하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현대무벡스는 기업 물류 자동화 창고와 냉장, 냉동 창고에 강점을 보유한 회사다. 올해 2차전지 물류 자동화 사업에 진출하면서 15% 이상 매출 성장세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현대아산, 현대무벡스 경영 여건이 괜찮지만 워낙 덩치가 적어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현대엘리베이터 역할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대그룹이 오랜 기간 악연을 이어온 쉰들러홀딩스 소송 패소 악재를 잘 이겨낼지 재계 이목이 쏠린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4호 (2023.04.12~2023.04.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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