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정당성과 정통성 취약한 정권, 이념으로 문제 덮으려 해"

고창남 2023. 4. 1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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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범국민위, 8일 추미애 전 장관 등 초청 강연 및 대담 진행

[고창남 기자]

▲ 기념촬영 제주4.3범국민위원회 주최로 '4.3은 통일과 자주독립입니다.'라는 주제로 초청강연과 대담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는 참가자들'
ⓒ 고창남
4월 8일 오후, 제주4.3범국민위원회가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 등을 초청하여 대담과 강연을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제주4.3범국민위원회, 제주바람, 이재명 민주당 대표 팬클럽 잼잼봉사단 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먼저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 '자주독립과 통일운동으로서의 4.3'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양조훈 전 이사장의 강연은 "1948년 4.3에서 왜 대량학살의 광풍이 불었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 정부 진상보고서에 의하면, 1948년 4.3 당시 희생자 수가 2만5000명~3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하면서 당시 제주면 노형리(541명), 조천면 북촌리(448명), 표선면 가시리(422명) 등 제주도 전역에 피해 없는 마을이 없었다고 했다.
  
▲ 양조훈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 고창남
 
그에 의하면, 조선 말기에 빈발했던 제주민란으로 인해 1629년부터 200여 년간 제주도에 출륙 금지령이 내려졌고,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수탈과 폐해는 더욱 심해져서, 제주인들끼리 단결하는 공동체 의식은 더욱 강고해졌다. 1813년부터 1901년까지 제주도에서 6건의 민란이 발생했는데, 그중 1901년 이재수의 난이 가장 컸다.

이는 탐관오리의 세금수탈과 이와 결탁한 천주교민들의 폐단에 저항한 민중운동으로, 민군이 제주성을 장악하고 관덕정 앞에서 천주교민 등 300여 명을 참살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사건의 사후조치로 관련자들을 모두 처벌하지 않고 민란총책 이재수 등 3인만 교수형에 처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훗날 4.3에서도 주동자들이 무장 봉기해도 책임자만 처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특이한 것은, 당시 이재수의 난에 대한 제주 백성들의 반응이, 이재수 등 민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오히려 도민을 위해 희생한 '장두(狀頭)'로 추앙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대정 지역에 '삼의사비(三義士碑)'를 건립해 지금도 추모하고 있으며, 이와 같이 면면이 이어내려온 제주 민중 항쟁의 전통은 4.3 정신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양 전 이사장은 주장한다.

이어서 그는 해방 전후의 제주도 상황을 설명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지만, 미국과 소련이 그은 38선에 의해 한반도의 분단이 시작되었고, 북한에는 소련군이, 남한에는 미군정이 각각 통치를 했다. 양 전 이사장에 의하면, 4.3의 원 뿌리는 38선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 강연하는 양조훈 강연하는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 고창남
 
양 전 이사장의 강연은 계속되었다. 미군정 시기 실정과 미군정 당국에 등돌린 제주민심, 1947년 3.1절을 계기로 분출한 전국민의 민심, 4.3의 도화선이 되었던 1947년 3.1절 경찰의 무모한 발포와 제주도민의 공분, 이념을 초월한 3.10 총파업과 미군정의 강경대응, 경찰총수 조병옥의 강경발언,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규정한 미군정 경무부, 전북 출신 극우파 도지사 유해진 임명, 탄압 일변도 정책으로 넘치는 유치장과 고문치사사건(1948. 3월) 등을 거론했다.

이어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투쟁 선택(1948. 2월), 주도세력의 정세판단 혼선, UN의 5.10 단독선거 드러나자 전국이 요동,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봉기, 미군 대령 브라운을 진압사령관으로 파견, 재선거 시도, 호언장담한 6.23 재선거 실패, 초토화 작전으로 대학살 감행, 초토화의 책임(군 수뇌부와 이승만 대통령), 해방공간에서 제주인들이 꾸었던 꿈은 '자주독립, 분단극복, 통일국가'(마무리), 처참한 죽음과 이념적 누명을 극복하고 과거사 해결의 모델 구현 등의 순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특히, 4.3 대량학살과 관련하여 양 전 이사장은 5.10 단독선거시 전국 200여 개 선거구 중 제주의 2개 선거구만 무효로 되었는데, 당시에는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하면 무효로 되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제주의 2개 선거구는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하여 무효로 되었고, 이는 미 군정에 반기를 든 것이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군사령관이 직접 진압을 하게된 것이고 이는 유혈진압, 대량학살로 이어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당시 미군정 하지 사령관은 브라운 대령을 제주도에 파견했는데, 그는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 뿐이다. 제주도 서쪽에서 동쪽까지 모조리 쓸어버리는 작전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브라운 대령은 제주도 주민의 민심 수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리력을 동원해서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진압작전에 매진했다. 미군이 강력한 진압작전을 전개했지만 재선거를 치를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 미군정은 불가피 6월 10일 행정명령 제22호를 발표하고, 6·23 재선거의 무기한 연기를 선언했다.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양 전 이사장은, "4.3은 '통일운동의 시작'이다"라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고, "4.3을 통하여 제주도민은 세계사에 매우 드문 '과거사 해결의 세계적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추미애 전장관 김종민 위원, '4·3은 통일과 자주독립' 특별 대담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의 강연에 이어,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 초청 대담이 진행되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이날 대담에서 "나라가 어려울 때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 특별대담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 초청 대담
ⓒ 고창남
   
이날 대담은 제민일보에서 4·3특별 취재를 담당했던 기자 출신 김종민 4·3위원회 중앙위원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됐다.

추 전 장관은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4·3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1999년 4·3 관련 수형인 명부를 공개하고 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역할을 맡았다.

추 전 장관은 "이 과정에서 제주인들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이, '당신들 빨갱이야'라고 매도했던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저에게 '4.3의 과제를 풀어보라'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추 전 장관은 이날 대담에서 "사는 시대는 다르지만 제주 4·3을 겪으며 희생당했던 분들이 살았던 시대와 풍전등화에 빠진 나라의 기운을 바로 세우고 제국주의 침략을 막기 위해 몸부림쳤던 안중근 의사의 시대, 그리고 4·3 정신을 훼손시키려고 하는 검찰 권력에 맞서야 하는 오늘날의 시대가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도 이렇게 침묵하고 있으면 (오늘의 상황을) 용납해 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 목소리를 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해 청중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 추미애 김종민 특별대담을 진행하고 있는 추미애 전 장관과 김종민 4.3중앙위원
ⓒ 고창남
 
특히 추 전 장관은 대담의 마지막 부분에서 '위기의 상황에서 저항권 행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추 전 장관은 "우리 헌법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그것은 바로 인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어서 "국가는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 오히려 국가를 하늘 같은 존재로 여기는 세력들이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를 바꿔놓는 것이 바로 헌법 정신이며 이것에 어긋나는 세력은 저항권으로 배척되어야 한다"면서 "헌법을 관통하는 정신을 위험하게 하는 세력이 있으면 연대해서 제압해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대담에서 추 전 장관과 김종민 4·3 중앙위원은 자신들이 직접 밝혀냈던 '4·3 수형인 명부'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추 전 장관과 김 위원은 함께 국가기록원 대전지소, 부산지소를 찾아다니며 수형인 명부를 발굴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4·3 희생자들은 아무런 죄도 없이 끌려가서 죽었는데, 수형자 유족들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형무소를 갔느냐'는 비난 때문에 아예 아무 말조차 하지 못했다.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 등으로 말하기 어려웠다"면서 "그런데 수형인 명부가 발견되면서 이들이 가장 강력한 유족회 집단이 됐다"고 설명했다.

대담을 진행하면서 추 전 장관은 수형인 명부를 찾아낸 이후에도 온갖 반대에 직면해야 했던 일화도 공개했다. 추 전 장관은 "유족이라고 다 '발굴해줘서 고맙다'고 한 게 아니다"면서 "조카는 고맙다고 하는데 공무원 삼촌은 연좌제에 걸릴까 봐 반대"했던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한나라당에는 군, 경찰 출신 국회의원들이 많았는데 제가 국회에서 발언할 때마다 이들은 고함을 치고 시끄럽게 해서 방해했다. 제가 이때 '조용히 하세요!'라고 요망지게('야무지게'라는 뜻의 제주어) 외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도 문제가 많았는데 당시 AP통신이 보도한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은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제민일보가 4·3을 보도하면 인용을 하지 않는 이중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2019년부터는 4·3 당시 불법재판으로 죄인으로 낙인 찍힌 수형인들에 대한 무죄 취지의 공소 기각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다. 추 전 장관은 "수형인 명부 등재자들에 대한 판결 중 제대로 된 판결이 없었다"면서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수형인 유족들이 개별적으로 소송해서 무죄 취지의 공소 기각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이후 유족의 신청이 없더라도 국가가 직권으로 재심해서 수형인의 족쇄를 풀어주는 길을 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마침 제주지검에서 공소기각을 담당하던 검사가 법무부에 와 있어서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제가 그 검사에게 '직권재심'에 대해 제대로 법적 검토를 하라고 지시하여 당시 검사의 검토에 의해 유족의 소송이 없이도 국가가 직권재심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이어서 "국가가 국가폭력에 대해 금전으로 배상을 안 한다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따라서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명시했다"라고 하면서 "그 후 인권의 제주도를 바로 세워 보겠다는 마음으로 꾸준한 노력을 했고 그결과 오늘의 제주 4.3이 있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주의 4.3정신은 나라가 힘들 때 '저항권을 행사하라'는 선구자적 정신이다. 제주의 4.3정신은 시대정신으로 나라가 힘들 때마다 되살려야 하는, 보석처럼 빛나는 정신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한 "4.3을 관통하는 정신을 규명해야 한다. 4.3의 정신은 공동체의 연대정신, 평등을 지향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찾고자 하는 정신이다. 4.3을 통해서 많은 것을 연구하고 정리하여 4.3의 정신을 확산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추 전 장관은 올해 4·3을 앞두고 서북청년단의 이름으로 제주 전역에 현수막이 걸린 일에 대해 "정당성과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일수록 이념으로 문제를 덮고 가려고 한다"면서 "검찰 정권이 정통성과 정당성이 취약해서 폭력적 지향성이 두드러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서 "지금 서북청년단에게 '옛날 서북청년단 활동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한다"면서 "극우적 관점에서 새로운 이념적 시비를 거는 시도"라고 말했다.
  
▲ 청중들 ‘4·3은 통일과 자주독립입니다’ 라는 주제의 초청강연과 대담을 청취하는 참가자들
ⓒ 고창남
 
마지막으로 추 전 장관은 최근의 대일 외교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제주 4·3을 전 국민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광주 5·18도 광주 사람만 외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5·18, 4·3 등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스스로 푸는 힘이 있을 때 일본에도 강제 동원이나 위안부 문제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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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월간 제주와 인물>에도 같은 내용의 원고를 송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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