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돈 있으면 줄 안 서도 된대"…흔들리는 '꿈과 희망'의 나라

임주형 2023. 4. 1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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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프리패스권' 두고 논란 확산
"자본주의상 당연" vs "아이들에겐 일러"
인류사 핵심 소유권 원칙 '선착순' 도마에

누구나 타고 싶어하는 놀이기구. 만일 '웃돈'을 얹어 앞 사람보다 먼저 탈 권리를 판매한다면 정당할까. 일명 '패스권 논란'에 수일째 온라인 여론이 들끓고 있다.

패스권은 인기 놀이동산에서 판매하는 프리미엄 이용권이다. 일반 이용권보다 훨씬 비싸지만, 대신 이 이용권을 끊은 고객은 대기 줄을 우회해 먼저 놀이기구를 이용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패스권 판매가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놀이공원 패스권은 새치기일까

'패스권 논란'은 지난 2일 SBS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정재승 카이스트 뇌과학과 교수의 발언에서 점화됐다. 당시 정 교수는 롯데월드,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 오션월드 등 인기 어트랙션 기업이 판매하는 패스권을 거론하며 "아이들이 어릴 때 그걸 보고 어떤 가치를 배우게 될까"라고 질문했다.

그는 "먼저 줄을 선 사람들이 서비스를 먼저 받는 건 당연하다. 이 경우에는 돈을 더 낸 사람에게 새치기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라며 "우리 사회는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다르게 대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배우게 되는 공간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송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선 누리꾼의 열띤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을 침해한 상품이라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제재할 근거는 없다는 반박도 제기됐다.

세심한 설계로 패스권 논란 피한 디즈니

디즈니랜드. [이미지출처=픽사베이]

사실 패스권의 원조는 세계 최대 어트랙션 기업 디즈니랜드다. 디즈니의 '패스트패스'를 구매한 고객은 제한된 시간에 걸쳐 대기 줄 없이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 있다. 이미 패스트패스는 전 세계 디즈니랜드에 공통으로 적용된 공식 상품이다. 그 종류도 패스트패스, 패스트패스+, 맥스패스 등 다양하다. 하지만 디즈니랜드 이용객 사이에선 패스권 논란이 나오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는 디즈니의 용의주도한 설계에 있다. 디즈니도 처음 패스트패스를 기획했을 때 고객들의 불만을 우려했다. 이에 따라 디즈니는 패스트패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적정 가격이다. 즉 '새치기할 권리'를 일반 고객에 납득시키려면, 그에 마땅한 가격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5일에 걸쳐 디즈니랜드를 아무 대기 줄 없이 이용 가능한 '슈퍼두퍼 패스'의 경우 무려 3000~5000불(약 395~660만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일반 고객과 VIP 고객을 분리하는 것이다. 디즈니는 패스트패스 고객이 일반 고객의 입장 통로를 나누거나, 패스트패스 고객에게는 비상구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두 고객의 동선을 분리했다. 이로써 일반 고객이 느낄 수 있는 '기분 나쁨'을 최소화했다.

'선착순'은 강력한 소유권 원칙…그러나 갈수록 경계 흐려져

예로부터 인류는 선착순에 큰 의미를 뒀다.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 버즈 올드린이 성조기를 꽂는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한국의 패스권 논란, 디즈니랜드 패스트패스 제도 등은 모두 '선착순'을 우회하는 게 인류 사회에서 얼마나 터부시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동시에, 우리 사회는 언제나 대기 줄을 우회하는 관행을 만들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선착순과 소유권의 상관관계는 미국의 법학자 마이클 헬러가 자신의 저서 '마인(Mine)' 한 권을 통째로 할애해 분석한 주제이기도 하다. 헬러에 따르면, 인류는 거의 본능적으로 '먼저 점유한 자가 소유권을 갖는다'는 원칙에 합의해 왔다.

이 원칙은 공공시설의 이용부터 비즈니스 관계에까지 폭넓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선착순으로 놀이터 그네를 타고, 여객기의 좋은 좌석은 먼저 택한 사람이 임자다. 맏이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장자권'도 선착순의 논리가 적용된 사례다. 대기 줄 사이에 끼어들거나 우회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강한 반발에 직면한다.

동시에 인간은 언제나 대기 줄을 우회하는데 골몰해 왔다. 웃돈을 얹어 암표를 사거나, 좋은 비행기 좌석 가격을 더 비싸게 판매하거나, 심지어 대신 줄을 서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기도 한다. 놀이공원에서도 선착순 원칙을 교묘히 비틀어 패스권을 판매한다. 선착순의 원칙은 지금도 강력한 사회적 약속이지만, 이제 그게 반드시 소유권으로 직결되는 건 아닌 셈이다.

헬러는 이처럼 갈수록 모호해지는 '소유권의 획득'을 규명하는 게 주요 난제라고 본다. 그는 "소유권이 정립되지 않은 분야에서 난해한 딜레마를 풀어야 할 때 우리의 과제는 한정된 소유권 논리와 설계 도구를 짜 맞추는 일"이라며 "소유권 획득의 과정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온실가스 배출, 데이터 등, 지구를 살리고 자유를 지키는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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