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애가 아닌 박주원을 봐주세요 [친절한 쿡기자]
그랬던 이씨가 웃어 보인 순간이 있었다. 딸을 보여줄 때였다. 영정 사진이었다. “우리 주원이에요. 여기 사진 앞 초를 보세요. 심지에 꽃이 피었잖아요. 주원이가 예쁜 아이라 초도 예쁘게 타나 봐요.” 타고 남은 심지가 몽우리 져 검은 꽃망울이 됐다. 딸과 연관된 건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의미를 붙이는 평범한 엄마였다.
잔잔한 물살로 시작된 소용돌이가 모든 걸 파괴하고 지나간 후, 학교폭력 피해자 부모와 기자가 만난다. 빠르면 싸움을 시작할 때, 늦으면 싸움마저 끝났을 때다. 언론이 멀리 있어서가 아니다. 문제가 심각해지면, 학교와 척을 지면 아이가 더 힘들까 걱정해 부모는 자구책을 찾는다. 가해자와 그의 부모 또는 학교를 찾아가 부탁하고, 애원도 해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결론이 불행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황과 증언이 휘발한다. 문제를 만들기 싫은 학교는 사건을 외면한다. 불인정과 냉담함은 사람을 금방 지치게 한다. 목표가 분명했던 부모들도 시간이 지나면 “기자님, 더는 못하겠어요. 그만할래요.”라며 전화하기 일쑤다.
이씨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딸을 위해 소송을 시작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을 위해 피해자 모임을 만들었다. 학교 폭력을 주제로 한 국회 토론회에 참석했다. 학교 폭력 피해자 정책 연구회에 가고, 교사들이 모인 학교 폭력 토론회에도 참여했다.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꾸준히 SNS에 글을 써 딸이 겪은 고통을 알렸다.
억울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만났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서명운동을 했다.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거리에서 함께하기도 했다. 슬픔이 무엇인지 그는 먼저 겪어 알고 있었다. 그렇게 8년을 보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이가 관심을 보이지만, 이씨는 여전히 절망하고 있다. 대중의 시선이 딸이 겪은 학교 폭력이 아니라 재판에 불출석해 패소하게 만든 권경애 변호사에게 쏠렸기 때문이다. 9일 오후 경기 과천에서 만난 이씨는 “그렇게 관심을 기다렸는데 변호사 잘못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니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이가 권 변호사 이야기만 묻는다”면서 “주원이가 어떤 폭력을 당했고, 어떻게 고립되어 있었는지는 관심이 없다”며 울었다. 또 “자극적인 보도 끝엔 청소 일을 하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나의 모습만 남았다”고 자조했다. 단단했던 이씨가 무너지고 있다.
고(故) 박주원. 2015년 6월22일 사망했다. 사망 당시 만 16세,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영문도 모르는 상황에서 익명 단체 채팅방에 초대되어 가해자들에게 폭언을 들었다. “네 신상 다 털렸어.” “어디서 쓰레기 같은 ×이 세상에 굴러 들어와서 이 세상 물을 흐리냐.” 등 입에 담기도 힘든 내용이었다. 화장실에서 폭행을 당했다. 물벼락을 맞고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학교에서 박양에게 전학을 권유하면서 인천 강화도 소재 중학교에 다녔다.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로 돌아온 이후 괴롭힘은 다시 시작됐다. “재수 없다”는 말을 일상처럼 들어야 했다.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에 같이 앉을 친구가 없어 학교에 ‘번호순대로 앉게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수학여행 아흐레 뒤 극단적 선택을 했고, 35일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다 세상을 떠났다. 당시 사건을 맡은 서울 수서경찰서는 “신체적인 폭행 여부가 중요하다”며 가해자가 없고, 피해자도 없다고 결론 내렸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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