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세계의 충돌'이 만든 결과... 이유 있는 '길복순'의 도전
[박성호 기자]
▲ 영화 <길복순> 공식 포스터 |
ⓒ 넷플릭스 |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 내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런 작품이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점이 아쉽다는 얘기다. 지난 3월 31일 넷플릭스 신작 영화로 <길복순>(변성현 감독, 전도연&설경구 주연)이 공개되었다. 전도연 배우의 액션 연기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당연히 전도연씨의 액션이 신기했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특이한 영화적 요소들이 눈에 띄었다.
영화 <길복순>은 다양한 이미지들이 섞이면서 작품이 작품 안과 밖의 교묘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관객과 만나고 있다. 싱글맘으로서의 길복순의 이미지를 <일타스캔들>의 싱글맘 '남행선'에게서 찾고, 킬러로서의 이미지를 <협녀, 칼의 기억>에서 킬러 '홍이'를 키운 '월소'의 이미지와 매칭해 본다면 흥미로움을 더해 줄 수도 있다.
파격적이고도 절묘한 캐스팅
▲ 전도연씨의 액션 신은 부드러우면서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
ⓒ 넷플릭스 |
먼저 캐스팅은 화려할 뿐 아니라 절묘하다. 전도연 배우로 액션을 상상하다니, 감독의 도전은 무모하다기 보다는 이유 있는 시도로 해석해도 될 거 같다. 최근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정이>에서 김현주씨가 AI로봇으로 분해 액션 신을 했던 것보다 더 파격적인 캐스팅이다. 국내에서 액션 여배우는 그다지 범주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할 정도다.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액션 영화들이 없었던 탓이다.
비교적 최근에야 정병길 감독의 <악녀>와 박훈정 감독의 <마녀> 등에서 김옥빈씨나 김다미씨가 액션 배우로 눈도장을 찍었었다. 특히 김옥빈씨가 출연한 <악녀>는 촬영기법으로 김옥빈이라는 여성 배우가 하는 액션의 퀄리티를 한층 높였었다. 하지만 액션 여배우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이시영씨다. 실제 복싱선수로 활동했기 때문에 액션에 능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그녀가 액션영화를 찍은 것은 <언니>가 고작이다. 그마저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 액션 배우로서의 이시영을 알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 국내에서 인상적인 액션 연기를 선보인 여배우들의 작품들. |
ⓒ 영화사 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이엔씨미디어 |
변성현 감독은 액션 여주로 전도연씨를 선택했다. 평소 캐릭터가 강하고 확실하여 다양한 감정연기가 중요한 영화들에 주로 등장했던 전도연씨가 화려한 액션을 구사하는 킬러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전도연씨에게 새로운 도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2015년 박흥식 감독의 <협녀, 칼의 기억>에서 의외의 액션 신을 선보였던 배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억은 대중들의 머리 속에서 희미해졌을 정도로 세월이 흘러 버렸고, 바로 얼마 전에 방영된 TV 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 만났던 미혼의 싱글맘 '남행선'을 생각한다면 의외의 캐스팅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전도연이라는 배우 캐스팅에 맞먹는 반전이 있다.
변성현 감독은 <킹메이커> <불한당> 등 전작을 감안할 경우 액션물 전문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액션물을 시도한 것은 조금 의아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액션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결국 내러티브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가 마케팅적으로는 액션을 부각시켜 공개되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변 감독이 직접 썼다고 하는 시나리오의 완성도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또 다른 반전, <길복순>이 보여준 '드라마'
▲ 영화 <길복순>에는 살인청부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형성되어 있다. |
ⓒ 넷플릭스 |
영화의 전개는 단순하다. 살인청부업이 하나의 산업처럼 형성되어 있고 그중에 최대의 청부기업에 에이스로 활동하는 킬러 '길복순'은 싱글맘으로 딸아이 양육과 생업을 병행한다. 하지만 자식 가진 부모의 처지는 결국 자신이 하는 일과 충돌을 발생시키고 이로 인해 균형 잡혀 돌아가던 세상이 흔들리고 깨질 위기에 봉착한다는 스토리다. 하지만 기존 킬러물과 다른 점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길복순에서 전면에 드러나는 소재는 '살인청부업'이다. 단연코 청부 행위가 일어날 때의 액션 신들 그리고 조직 내부의 갈등을 보여주는 액션 신들은 화려하고 맛깔나다. 거기에 살인청부업이 하나의 산업을 형성하여 기업이 존재하고 기업 간의 자율적인 자정활동까지 한다는 발상은 지나치다 못해 웃음이 나오는 설정이다. 하지만 나름 허구의 세계를 하나의 실재 세계처럼 디테일 있게 잘 살렸다고 평가하고 싶다.
가만히 보면 굳이 살인 청부업이 아니라 다른 산업을 치환시켜 넣어도 스토리 전개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러 업종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자기의 산업을 지키기 위해 뭉쳐서 하는 행위들을 보면 영화 속 살인청부업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시나리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 속 세상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결론적으로 평가하자면 절반은 허무맹랑하고 절반은 정말 리얼한 그래서 새로운 세상이 영화 속에서 창조되었다. 통상 리얼리티가 가장 떨어지는 판타지물들은 영화 속 세상의 리얼리티를 강화하기 위해 관습과 제도 등 모든 것들을 새로 구축한다. 구축된 세상이 아무리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하더라고 디테일하고 아귀가 맞게 돌아가면 관객은 현실을 잊고 새로운 세상 속에서 판타스틱한 캐릭터들이 전개하는 스토리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중간하게 실제 세계의 규칙과 관습들이 끼어들면 죽도 밥도 아닌 세상이 탄생하게 되고 그럴수록 관객들은 영화 속 세상의 흠결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 <길복순> 영화에서 전도연씨가 연기한 길복순 역은 밖에서는 냉혹한 킬러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싱글맘으로서 딸의 성장통으로 마음 고생을 한다. |
ⓒ 넷플릭스 |
다양한 업체가 경쟁하고 공생하는 살인청부업이 존재하는 허구적인 세계와 고등학교 다니는 딸애를 혼자 키워가는 싱글맘의 리얼한 세계가 충돌하면서 주요 내러티브가 전개된다. 전자는 지나치게 허구적이다 못해 살인청부업을 둘러싸고 있는 전체 세계가 궁금해지게 한다.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세상이다. 반대로 싱글맘의 세계 혹은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자녀 양육의 세계는 너무 익숙하고, 매일 매일 수많은 부모들이 겪는 세상이라 호기심과는 다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호기심과 공감을 유발하는 세계가 따로 따로 움직였다면 영화는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두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스토리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액션의 화려함에 취했던 관객은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고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해 하면서 액션의 취기에서 풀려나, 드라마에 취하는 관객으로 변하게 된다.
모든 내러티브의 결말은 허무하다. 미스테리한 장르물들의 경우 관객의 허무는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 낸다. <길복순>의 결말 또한 허무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영화 <길복순>은 미스터리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허무가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하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뭔가 스토리가 덜 끝난 느낌을 준다. 허구의 세상에 균열을 낸 복순이 비록 한고비는 넘겼지만 그녀의 위기는 마치 덜 끝난 느낌이다. 그래서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든다. 자신이 무너뜨린 세상을 복순은 어떻게든 다시 균형 있는 세상으로 돌려놓아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녀가 끼고 사는 싱글맘의 삶 또한 균형 잡힌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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