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중 목격한 홍성 산불, 기자의 시점으로 본 시작과 끝

이재환 2023. 4. 1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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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의 홍성 산불 취재기] 52시간만 완진, 소방대원-홍성군청 직원들의 노력

[이재환 기자]

 지난 2일 오후 12시 무렵. 홍성호 앞까지 연기가 도달했다.
ⓒ 이재환
   
충남 홍성 산불이 발생한 지난 2일은 나들이하기 좋은 화창한 봄날 이었다. 기자는 홍성 화재의 발생시점부터 종료 시점까지 산불 현장에 있었다. 홍성 산불의 주요 사건을 취재 동선을 따라 시간대 별로 되짚어 보았다.

[4월 2일 오전 11시] 홍성 산불 발생

화재가 발생한 바로 그 시각. 기자는 홍성호 주변에서 나들이를 즐기고 있었다. 오전 11시 10분쯤 멀리 서부면 중리에서 산불이 목격돼 119에 신고, 화재 발생 사실을 알렸다. 이 과정에서 화재 신고가 접수돼 두 대의 소방헬기가 출동한 상태임을 알게 됐다. 이후 기자는 본격적으로 산불 취재에 나섰다.

11시 40분쯤 불길이 민가 방향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서부면 홍성호 주변에 있던 기자의 휴대폰에는 대피 문자 혹은 산불 안내 문자가 오지 않았다. 충남도에 따르면 산불 안내 문자는 11시 44분에 발송됐다. 

홍성호 임해 도로를 서행하던 차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불길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실제로 산불이 발생한 지 2시간 20분 만인 오후 1시 20분에 산불 대응 3단계가 발령됐다. 산불 진압 지휘권도 홍성군(군수 이용록)에서 충남도(지사 김태흠)로 넘어갔다. 실제로 서부면 일대의 야산 곳곳에서는 연기가 마치 봉화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홍성 산불 ⓒ 이재환

   
[4월 2일 오후 3시] 삽시간에 번진 불로 서부면 초토화
  
이날 오후 서부면 중리 능동마을회관 인근에 현장지휘본부가 설치됐다. 불은 삽시간에 서부면 전체로 번졌고 그 피해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주택이 완소되거나 반소되었다는 소식이 속속 전해졌다.

이날 오후 3시, 현장지휘본부를 방문한 김태흠 지사는 "허둥지둥 대지 말고 체계적으로 일하라. 우선 산불 방어선부터 구축하라"며 "불을 뒤에서 쫓아가지 말고 앞에서 차단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산불 현장에는 초속 15미터의 강풍은 물론 돌풍이 계속됐다. 소방 당국이 산불 진화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그 때문이다.

서부면 중리, 양곡리, 남당리 등을 덮친 불길은 이날 밤 결성면 청룡산 인근으로 번졌다. 청룡산에는 천년 고찰 고산사(대웅전 보물 399호)가 있다. 소방대원 6명을 포함해 홍성군 문화관광과 및 충남 도청 문화재팀 소속 공무원 20여 명은 밤을 새워가며 고산사를 산불로부터 방어했다. 가까스로 고산사를 지켰지만 위기는 그 다음 날인 3일에도 계속됐다.  
 
 홍성 산불로 전소된 농막. 충남 홍성군 서부면 양곡리
ⓒ 이재환
 
[4월 3일 오전~오후] 대기업 음료 공장 주변까지 번진 산불

3일 오전 10시, 홍성군 결성면 청량산 일대의 한 대기업 음료공장 인근에 산불이 옮겨 붙었다는 제보를 받았다. 음료 공장 직원들은 공장에 설치된 자체 소방호수를 동원에 산불이 공장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청룡산 고산사와 음료 공장 사이의 1km(직선거리 대략) 구간에 자연스럽게 방어선이 구축됐다. 소방 헬기들이 수시로 오가며 청룡산 곳곳으로 번지는 산불을 진화했다.

오후 1시, 중리 마을에서 남당항으로 이동한 현장소방본부로 향했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중 불길이 서부면 거차리와 서부초등학교 인근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후 2시, 서부초등학교에 머물고 있던 이재민 20여 명은 갈산중고등학교로 대피소를 옮겼다. 산불이 서부초등학교 근처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오후 2시 30분에는 서부면 중리에 있는 현장지휘본부로 이동하기 위해 서부면사무소 쪽으로 향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산불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서부중학교 인근에서 더 안쪽으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산불이 번지면서 남당항에서 서부면소재지로 가는 길이 전면 통제된 것이다. 실제로 이날 서부중학교 주변은 한치 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다.

오후 4시, 서부면에서 우회해 다시 결성 방향으로 나왔다. 결성 무량 저수지 인근 야산이 불에 타고 있었다. 인근에는 고산사, 한용운 선사의 생가, 대기업 음료공장이 위치해 있다. 불은 오후 5시께 가까스로 진화됐다. 
 
 지난 3일 밤. 홍성군 결성면 고산사 코 앞까지 다가온 불길
ⓒ 한건택
 
[4월 3일 밤] "고산사 방어, 문화재만 지킨 것 아니다"

3일 밤, 고산사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밤 8씨쯤 고산사 인근에 또다시 불길이 번졌다. 불길은 고산사 400미터 앞까지 번졌다. 소방대원을 포함한 50여 명의 인력과 13대의 소방장비가 동원되어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이들이 이날 산불로부터 방어한 것은 고산사만이 아니었다. 이 주변에는 석당산이 위치해 있고 야산들이 즐비하다. 산불이 바람을 타고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로 번져 갈 경우 결성면 전체가 불길에 휩싸일 수도 있었다. 고산사를 방어하기 위해 배치된 소방대원들과 홍성군청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산불 방어선을 구축했고, 고산사와 결성면 전체를 산불로부터 지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4월 4일] 비소식과 함께 산불 진화 '청신호'

비가 내릴 확률이 높다는 소식이 전해 지면서 산불 진화 작업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김태흠 지사는 "비가 오기 전에 산불을 진화하라"고 주문했다. 기자는 이날 오전과 오후에 소방헬기의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4일 오후 3시 무렵, 홍성호를 활발하게 오가던 소방헬기들의 움직임이 뜸해졌다. 산불이 진화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충남도는 이날 오후 4시 "홍성 산불의 주불을 100% 진화했다"고 발표했다. 발표 이후 홍성에는 기다리던 단비가 내렸다. 홍성호에서 시작한 기자의 홍성 산불 취재도 이날 홍성호에서 마무리됐다.

이번 홍선 산불 진화 과정과 관련 "초기 대응 실패", "산불 진화 속도가 더뎠다" 등의 비판 여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보령시 청라면 내현리에서도 지난 2일 13시 45분경 산불이 발생했다. 보령 산불은 21시간 만에 주불을 진화횄다. 하지만 같은 날 발생한 홍성 산불은 주불을 진압하는데 52시간이 걸렸다. 
 
 홍성군 서부면 양곡리의 전소된 주택
ⓒ 이재환
   
"이렇게 빠른 불은 처음, 돌풍으로 불길 잡기 어려워" 

서도원 충남도청 산림자원 과장은 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2일 오전 11시에 산불 신고가 접수돼 두 시간 만에 산불 대응 3단계가 발령됐다"며 "산불 진화 단계가 빠르게 진행됐다. 이렇게 산불이 빠르게 진행된 것은 처음이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보령과 홍성 서부지역의 조건은 달랐다. 홍성 서부지역에는 화재 첫날에 강풍뿐 아니라 돌풍도 불었다"며 "보령과 홍성의 산불의 결정적인 차이는 돌풍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헬기로 진화하고 난 뒤 역풍이 불어서 또다시 불길이 번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도깨비불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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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가 목격한 것을 중심으로 쓴 글입니다. 사건 별 정확한 화재 발생 시간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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