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7분만에 의결된 전세사기방지법

지연진 2023. 4. 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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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약 만료를 석 달 앞두고 집주인의 배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2년을 거주하면 2년간 더 살 수 있도록 개정한 이른바 '2+2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무력화하는 '꼼수'라고 여겼지만, 2년마다 이사가 일상이 된 '전세 난민'은 조용히 새집을 찾기로 했다.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빌라왕'의 전세 사기 사건을 계기로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떼이지 않도록 입법이 강화됐지만, 집주인이 보증금을 담보로 한 '전세갑질'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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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전세사기방지법 사후약방문
빌라왕 사건 재발 방지대책에 초점
보증금 미반환시 지연이자 입법해야

"전세계약 만기 이후 제가 입주해야 하기 때문에 집을 빼주시기를 바랍니다"

전세계약 만료를 석 달 앞두고 집주인의 배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임대인이 직접 거주하기 위해 세입자를 내보낸다는 통보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2년을 거주하면 2년간 더 살 수 있도록 개정한 이른바 '2+2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무력화하는 '꼼수'라고 여겼지만, 2년마다 이사가 일상이 된 '전세 난민'은 조용히 새집을 찾기로 했다. 공인중개사라는 임대인의 배우자는 "계약 만료일보다 먼저 집을 구하면 보증금을 일찍 돌려주겠다"면서 원하지 않는 매물도 계속 추천했다.

임대인이 말을 바꾼 것은 이사를 한 달여 앞둔 지난달부터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임대인 부부가 거주 중인 아파트를 전세 매물로 내놨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와 대형 전세 사기 사건이 겹치면서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보증금 반환 시점을 연기했다. 임차인이 적당한 매물을 찾았지만, 보증금 반환을 위한 대출이자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이사 날짜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빌라왕'의 전세 사기 사건을 계기로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떼이지 않도록 입법이 강화됐지만, 집주인이 보증금을 담보로 한 '전세갑질'은 여전하다. 전세 기간이 만료된 이후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처벌 조항이 없는 탓이다. 올해 들어 두 차례나 전세 관련 법안이 개정됐지만, 임대차 시장에서 실효성이 전혀 없는 이유다.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한 민간임대주택 특별법 개정안은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집주인의 인적 사항을 공개하도록 했다. 공개 대상은 과거 5년간 보증금 미반환으로 '민사집행법'에 따른 강제 집행, 보전 조치 등을 2회 이상 받은 사실이 있어야 한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필연적 사연이 있는 억울한 임대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지만, 전세 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돌려주지 않은 악성 임대인을 겨냥한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지난달 처리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주택 임대차 계약 때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해당 주택의 선순위 보증금 등 임대차 정보와 납세 증명서를 반드시 제시하는 규정이 담겼는데, 이 역시 전세 보증금을 제때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빠졌다.

입법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21년 12월 임대인이 계약기간 만료일까지 보증금 전액을 반환하도록 명시하고,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을 경우 연이율 20%의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런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 심사 제1 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빌라 왕의 전세 사기를 막기 위한 정부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전세 보증금을 떼이지 않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대신, 여론이 들끓었던 빌라완 사건에만 초점을 맞춘 대책만 속도를 낸 것이다. 이마저도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찬반 토론 없이 7분 만에 의결됐다.

최근 5년간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미반환사고 피해액은 2017년 525억원에서 2021년 8월까지 4047억원으로 약 8배 증가했다. 임대차 계약 기간이 만료됐지만, 후속 임대차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을 경우 세입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임대인의 선처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여론에 떠밀린 생색내기식 입법이 아닌 전세 사기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입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지연진 정치부장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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