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치매 정복의 길 '희망'은 있다
‘초고령화 사회’ 대한민국, 갈수록 늘어나는 노인 인구 탓에 건강·복지의 최대 장애물은 치매(알츠하이머)다. 2040년께 우리나라 전체 국가 치매 관리 비용은 연간 63조1000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과연 인류는 알츠하이머를 정복할 수 있을까? 최근 신규 치료물질 승인 등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진전을 보이면서 ‘희망’이 생겼다는 게 국제 의학계의 분석이다.
신기술 등장
우선 새로운 치료제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바이오젠·일본 에자이가 공동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신속 승인을 받은 레카네맙(lecanemab)이 대표적 사례다. 신속 승인이란 아직 개발이 끝나지는 않았더라도 중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치료 효과를 보였을 때 조건부 허가를 내주는 제도다. 이 치료제는 임상 실험에서 뇌세포에 쌓이는 알츠하이머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베타(β) 단백질의 양을 확실히 줄여주고 인지 능력 쇠퇴 속도를 25%까지 늦춰준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중증 환자들에겐 수개월의 수명을 연장시켜줄 수 있는 결과였다. 다만 전문 간호사가 정맥 주사를 통해 투여해야 하는 데다 뇌부종·출혈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앞서 2021년 또 다른 치료제인 아두카누맙(aducanumab)이 FDA 승인을 받기도 했다.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 제거 효과 유무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긴 하지만 이에 불구하고 치매 치료 연구자·환자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준 게 사실이다. 특히 레카네맙의 경우 조기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충분히 투여될 경우 악화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약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 연구자들은 또 다른 원인 물질로 지목된 ‘타우(tau) 단백질’을 타깃으로 하는 치료 물질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복합 치료제 연구 활발
특히 최근 들어 항아밀로이드 치료제·항타우 치료제를 복합 적용해 효과를 살펴보는 연구가 본격적으로 개시되고 있다. 랜달 베이트먼 워싱턴대 신경의학과 교수는 지난 4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아밀로이드-베타가 어떤 식으로든 병원성 타우 단백질의 축적을 유도해 뇌를 통해 퍼지게 하고 있다"면서 "산불 진화 시 불도 끄고 가소성 물질도 동시에 제거하는 것처럼 (아밀로이드-베타와 타우 단백질을) 동시에 치료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실제 베이트먼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부터 ‘타우 넥스젠(Tau NexGen)’이라는 이름의 국제 공동 임상 연구를 시작했다. 알츠하이머 유발 유전적 변이를 갖고 있는 30~50대 168명이 실험 대상자로 참여한다. 연구팀은 이들을 기증상발현자, 10년 내 발현 예상자 등 2개 그룹으로 나눠 레카네맙과 항타우 치료제를 투여하되 순서를 달리하는 방식으로 차이점을 분석할 계획이다. 발현 예상자에겐 항타우 치료제(E2814)를 먼저 1년간 투여하고 이후 레카네맙을 추가로 주사할 예정이다. 반면 기증상발현자에게는 6개월간 레카네맙을 주사한 후 E2814를 추가한다. 연구팀은 이 같은 방식의 실험을 통해 항아밀로이드·항타우 치료제의 복합 처방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와 올바른 투여 방식 등을 연구할 계획이다. 또 E2814 외에 다른 항타우 치료제도 투여해 시험할 계획이다. 2027년 이후 1차 임상 결과를 발표한다.
비슷한 연구는 또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도 수개월 내 공공·민간 제약사가 공동으로 추진 중인 항아밀로이드-항타우 치료제 복합 처방 효과 임상실험(ATP)에 대한 재정 지원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다만 이 같은 복합 처방 방식은 매우 복잡한 데다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ATP 임상의 경우 수억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며, 치료제 자체도 레카네맙의 경우 연간 처방비가 2만6500달러나 들어갈 정도로 비싸다. 투약 방법도 수주마다 주사를 맞아야 하는 방식이라 환자에게 매우 불편하다. 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 병을 예방하기 위해선 평생 맞아야 한다.
다양한 치료법 연구
한때 활발하게 연구되다 실패했던 또 다른 치료 방식인 베타-세크리타제 효소 억제물질 연구도 재검토되고 있다. 베타-세크리타제는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을 생성시키는 원인 물질로 알려져 있는데 2010년대 후반까지 억제 물질이 활발히 연구되다가 임상 실험에서 참담히 실패한 끝에 중단됐다. 미국 알츠하이머협회는 2021년 이 같은 베타-세크리타제 억제 물질 임상 실패 결과를 재검토해보니 해당 약물들이 증상이 너무 진행된 참여자들에게 투입됐을 수 있고, 더 적은 용량을 투입하면 부작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희망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용량을 투입하면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실패 사례인 감마(γ)-세크리타제 억제 물질 연구도 올해 안에 NIH의 지원을 받아 한 민간 제약스타트업이 초기 임상실험을 재개할 예정이다.
이 밖에 독일에선 뇌의 자연 면역 방어 시스템을 개선해 초기 단계에서부터 알츠하이머 발생 여지를 없애자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뇌의 면역 체계에서 전사 역할을 하는 미세아교세포(microglia)를 만드는 유전자 TREM2에서 변이가 발생하면서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이 축적되는 등 문제가 생긴다. 독일 루드비히-막시밀리안대 연구팀은 항아밀로이드 치료제 투입과 병행해 미세아교세포가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찌꺼기를 좀 더 효과적으로 청소하거나 확산되는 것을 막는 방법을 찾고 있다. 크리스티안 하스 루드비히-막시밀리안대 교수는 "쥐 모델에서 TREM2 유전자에 결합해 미세아교세포를 활성화하는 항체를 항아밀로이드 치료제와 함께 주입했을 때 어떤 효과가 나올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치료제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벡터나 혈청을 이용해 만들어지는 예방 백신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2002년 임상에서 뇌 염증 유발이 확인돼 1차 임상이 중단됐던 항아밀로이드 백신 연구가 최근 재개된 것이다. 또 유전자 치료를 시도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레이사 스펄링 하버드의대 교수는 네이처에 "30년 넘게 알츠하이머 치료를 연구하고 있지만 (치료법을 찾지 못해) 좌절스러웠다"면서도 "우리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믿지만 아직까지 충분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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